지난 주, 가인과 주지훈의 이름이 검색어에 올랐다.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루머가 포털 사이트까지 퍼진 데는 기사의 힘이 컸다. 무려 ‘단독’을 달고 나온 그 기사는 일파만파 퍼졌다. 가인과 주지훈 만큼이나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기사에는 온갖 악플이 달렸고, 가인의 소속사 측은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섰다. 기자의 지난 기사 목록까지 올라왔다. 대부분이 자극적인 소재였고, ‘결국’, ‘충격’, ‘000했다가….’ 등의 제목이 난무했다. 네티즌들이 한 목소리로 조롱하며 욕을 퍼붓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도 그들이 욕하던 기레기였으니까.

 

1. 연예부 기자가 되다.

 

어쩌다 보니 연예부 기자가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가량 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취업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연봉도, 복리후생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디 한 군데 엉덩이 비비고 앉아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평소 TV도 자주 보고, 연예인도 좋아하니까 재밌을 거라 생각했다. 친구들도 잘 어울린다며 축하해줬다.

 

녹록치 않았다. 연예부 기자가 일을 잘 한다는 건, 많은 기사를 빠르게 뽑아내는 것, 남들보다 먼저 기사를 내보내는 것,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휴대폰은 늘 손에 쥐어져 있어야 맘이 편했다. 혹시라도 급한 연락을 못받을까봐 매일 밤 불을 켠 채 새우잠을 잤다.

 

작은 가방을 메 본 적도 없다. 24시간 내내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했으니까. 한 달에 한 두 번 겨우 남자친구를 만날 때도 노트북을 지참했다. 밥을 먹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기사거리가 뜨면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켰다. 이별의 원인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별의 슬픔 따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차라리 혼자인 편이 홀가분했다.

 

2. 최대한 빠르게, 자극적으로

 

연예 매체의 수익 구조는 간단하다. 광고. 사이트에 들어가면 지저분하게 뜨는 그것들 말이다. 그런데 광고를 하려면 사이트 유입률이 높아야 하고, 그러려면 많은 사람을 우리 사이트에 들어오게 해야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제목 낚시’다. ‘충격’, ‘헉’, ‘알고보니’, ‘….(말줄임표)’는 훌륭한 미끼였다.

 

기사를 쓰는 시간보다 제목을 정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때도 있었다. 기사 내용과 상관이 없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기도 했다. 내용이 잘못돼도 일단 빨리 내보낸 후 수정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해서 포털 사이트 메인에 내 기사가 많이 올라가면 위에서 칭찬을 해줬다. 나에게는 그게 실적이었고 실력이었다.

 

물론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다. 하루 종일 연예인들 SNS를 훑을 때, 노출이 심한 비키니 화보를 서칭할 때, 커뮤니티에 떠도는 걸 아이템이라고 내밀 때, 소속사 보도자료를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할 때….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수도 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점점 무뎌졌다. 악플로 받는 상처도 마찬가지였다.

 

일이니까. 그리고 자극적인 기사인만큼 클릭률이 높았으니까. 실제 ‘노출’, ‘배드신’ 등 자극적인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가 매 주 최고 트래픽을 찍었다. ‘결국 니들도 이런걸 보고 싶어 하잖아.’,  ‘앞에선 욕하지만 뒤로 좋아하는 그들이 이중적인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까지 했다. 그렇게 버텼다.

 

3. 못할 짓인걸 알면서도

 

아무리 감정이 무뎌져도, 정말 하기 싫은 일들이 있었다. 병원과 장례식장을 가는 일이었다. 내가 일하던 때는 유독 연예계 사건 사고가 많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전해들을때마다 심장이 발끝까지 덜컥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고인에 대한 슬픔보다는 취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주말에 간만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당장 장례식장을 가란다. 연락을 받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장례식장에는 이미 수많은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멀리서 선배가 왜 이리 늦었냐며 나무랐다. 그리고 당장 유가족과 연예인 조문객 인터뷰를 따오라고 했다.

 

모두가 슬픔에 잠겨 있는 그 곳에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헐레벌떡 달려 온, 눈이 퉁퉁 붓고 목소리 조차 잘 나오지 않는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인터뷰를 어떻게 딴단 말인가. 그럼에도 해야 했다. 다른 매체에서 먼저 기사를 쓰기 전에 내가 뭐라도 써야 하니까. 정중히 거절하는 사람들을 끈질기게 붙잡고 말을 붙였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의 부고 기사를 쓰기도 했다. 병실에 누워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연예인 소식을 듣고, 미리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써야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 곧바로 기사를 내보낼 수 있도록.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스스로가 가장 싫었던 순간이었다.

 

4. 결국 나는 일을 그만뒀다.

 

연예부 기자가 된 지 2년이 지났을 때, 일을 그만뒀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스스로 기레기로서 자괴감이 들어서’는 별로 큰 이유가 아니었다. 그만큼 ‘기레기’라는 칭호는 이미 상처도 뭣도 아니었다. 오히려 밖에서 “난 기레기야”라고 떠들고 웃을 만큼 뻔뻔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기레기’라는 단어를 보면 괜히 마음이 좋지 않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이 업계와 사회가 문제라고, 기레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했던 약발이 점점 떨어지나보다. 기레기가 아닌 기자가 되지 못한 게 후회된다.

 

가인과 주지훈 기사를 쓴 매체는 결국 사과 기사를 올렸다. 기사에는 ‘고소 해야한다’, ‘처벌을 받아야 한다’, ‘무책임하다’는 댓글이 가득하다. 목 언저리가 갑갑하다. 괜시리 물만 꿀떡꿀떡 삼키며 인터넷 창을 껐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가해자였을테니까.

 


Writer_전직 연예부 기자 A씨
Illustrator_배진희

 

한때 연예부 기자였던 A씨는 말했다. “2년 간 연예부기자를 했고, 몸이 축나고 정신이 피폐해져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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