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화 상대’를 꼽을 때 핵심은 ‘말하기’보다 ‘듣기’다. 듣지 않고는 무슨 말을 아무리 잘해도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다. 남보다는 자기를 앞세워야 하는 경쟁 사회에서 대화가 사라지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작가 지승호는 15년 넘게 남의 말을 들었고, 책으로 만들었다. 타고난 소심함을 극복하기 위해 만나기 전에 상대방에 대한 모든 텍스트를 읽었고, 인터뷰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잘 아는 듯한 이 남자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꾸준히 듣고 쓰다 보니 국내 유일무이한 ‘전문 인터뷰어’가 되어 있었다.

 

늘 상대방의 말을 전하던 그가 최근엔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을 출간하며 주연으로 나섰다. 이 책과 다음 인터뷰에는 그의 영업비밀과 함께 ‘좋은 친구가 되는 법’에 대한 힌트가 숨겨져 있었다.


어짜피 답은 없지만

5년 전 「대학내일」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인터뷰한다면 무슨 질문을 던지겠는가?’라는 물음에 뭐라고 답하셨는지 기억나세요?

‘너 행복하니?’ 맞죠? 힘들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가 봐요. 실제로도 저한테 자주 하는 질문이에요. 일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도 과연 지금의 내 삶이 행복한 거냐.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부모님이나 사회적 시선 때문에 대학 가고 취직했다가 뒤늦게 ‘이건 내 삶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봤거든요. 그래서 행복해지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던져야 한다고 봐요.

 

행복하세요?

책이 무사히 나온 것 자체는 안심이 되는데, 허탈하기도 해요. 이 한 권 때문에 그렇게 속을 썩였나 싶어서.

 

배우들이 영화 개봉했다고 마음 놓고 즐길 수만은 없듯이 저도 걱정이 좀 돼요. 영화로 치면 관객이 얼마나 들지, 별점은 몇 개나 줄지. 그런 점에서 이전 책들보다 조금 더 두려워요. 지금까지는 인터뷰 대상에게 주인공 자리를 넘기고 뒤로 빠지면 됐는데, 이 책은 오롯이 저의 책임이니까.

 

15년 넘게 주인공 자리를 남에게 넘겨주고 인터뷰어로서 산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해야 살기 편한데.

손석희 아나운서는 인터뷰를 “‘당신 틀렸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과의 싸움”이라고 했어요. 얘기를 듣다가 의견이 다르면 말을 끊고 싶거든요.

 

하지만 들어야죠, 인터뷰어라면. 인터뷰어가 듣고만 있으면 날로 먹는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게 더 어렵거든요. 얘기가 길어지면 끼어들어서 내 생각을 말하고 싶지만 꾹 누르는 거죠.

 

그러면서도 또 기가 눌리면 안 돼요. 기록하는 사람은 어쨌든 저니까.

 

인터뷰어로서의 테크닉은 누구에게 배우셨어요? 이젠 책을 40권 넘게 내셨으니 인터뷰를 배워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후배들도 있을 것 같아요.

배울 수 없었죠. ‘인터뷰어’라는 것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전 기자도 아니고 아마추어 칼럼니스트였는데 학교 폭력 피해자 측 가족이 취재 요청을 해서 처음 인터뷰라는 걸 하게 됐어요. 해보니 책상에 앉아서 책 보고 글 쓰는 것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가 되더라고요.

 

어찌 보면 근본이 없는 거죠. 따로 교육 받은 적이 없으니 테크닉도 많이 부족하고. 대신 김혜리씨처럼 인터뷰 잘하는 분들의 글을 많이 읽고 연구했어요.

 

사실 인터뷰는 하면서 느는 거지, 답이란 게 없거든요. 그래서 찾아오시는 분들한테도 제가 조언은 해드릴 수 있지만 가르칠 수는 없어요. 이번 책도 마찬가지고요.


고민을 듣고 또 들어요

책에 ‘인터뷰어가 갖춰야 할 자질’이라는 챕터가 있는데, 내용을 보면 ‘좋은 친구의 덕목’과 일치하는 것 같아요.

그렇죠, 인터뷰도 대화잖아요. 우린 어눌하지만 남의 말을 잘 듣고 공감해주는 친구한테 자기 고민을 털어놓게 되어 있어요. 그 태도를 보고 걔를 믿게 되거든요. 그런 친구를 누가 싫어하겠어요.

 

전 지인들을 만날 때도 많이 듣는 편이에요. 술 취하면 떠들기도 하지만.(웃음) 일상적인 농담은 웃어넘기면서도 누가 고민을 얘기 한다 싶으면 귀를 쫑긋 세워요. 힘들게 꺼낸 말일 테니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요. 그럼 그것만으로 그 친구 마음이 많이 풀려요.

 

인터뷰어로 활동하면서 여러 명의 고민을 들어서인지 그만큼 공감하는 힘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이미지를 걷어내고 그 사람 자체를 봐야 한다’는 말이 책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예요.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관심이 생기고, 그만큼 편견이 추가되는 것 아닐까요?

맞아요. 인터뷰하기 전에도 이 사람을 공부하면 할수록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반대로 다양한 측면을 알게 되면서 편견이 걷히기도 해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자료를 보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물론 마음을 열어두는 연습도 필요해요.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끊임없이 생각해야 해요.

 

어릴 때 레드 제플린을 엄청 좋아 했는데 반 친구가 스펠링을 ‘Zeppelin’으로 쓰는거예요. 전 당연히 내가 팬이니까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중간에 ‘e’가 들어갈 리 없다고 우겼는데 집에 가서 앨범 재킷을 보니 ‘e’가…. 그 후로 내기 안 해요.(웃음) 친구가 내기하자고 하면 “아니야, 네 말이 맞을 거야” 그러죠.

 

“대화의 목적은 이기는 게 아니라 원하는 걸 얻는 데 있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어요.

진짜 대화를 하다가 말싸움이 붙으면 본래 하려던 얘기는 잊고 이기려고만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인터뷰할 땐 이 대화의 목적이 뭔지를 생각해요. 이 사람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

 

내 기분을 컨트롤하지 못해서 이 기회를 날려버린다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니까요. 그래서 참는 게 좀 몸에 뱄어요. 가끔씩 인터뷰이가 공격적인 말을 하면 못 들은 척 하고 화제를 돌려요.(웃음) 인터뷰를 잘 마무리 짓고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게 이기는 거예요. 저는 그래요.


그래도 재밌으니까

아무래도 인터뷰를 하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게 될 것 같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더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원래 텍스트나 그분이 만든 콘텐츠를 보고 좋았으니까 인터뷰를 하게 된 건데, 좀 더 진솔한 얘기를 오랜 시간 동안 듣고 나면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 같아요.

 

특히 신해철씨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정말 행복했다”고, 이례적인 소감을 남기셨어요.

정말 나이스한 분이었어요. 스타 의식이 전혀 없었어요. 록스타로서 신해철씨의 이미지는 후배들한테 막 욕하고 자기 맘대로 하고 그럴 것 같잖아요. 근데 기본적으로 굉장히 배려하는 스타일이고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더라고요. 부끄러움도 많아요.

 

진중권씨를 뵙고 싶은데, 저한테 연락을 부탁하더라고요. 제가 인터뷰한 적이 있으니까. 대중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분이었고, 거기 쓴 대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철학자 강신주씨는 작가님과의 인터뷰에 대해 “지승호 선생님은 나의 사유를 자극했고, 말을 하도록 유혹했다”고 하셨던데, 어떻게 하셨기에….

덕담해주신 거죠, 뭐. 사실 인터뷰 분량이 너무 많아서 하마터면 천 페이지짜리 책이 나올 뻔 했거든요. 서로 많이 원망했어요. 처음 만나는 날 잠을 잘 못 자서 3시간 정도만 해야겠다 싶었는데 계속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약간 친해진 뒤에 왜 그렇게 길게 얘기하셨냐고 물어봤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듣고 있으니 얘길 안 할 수가 없었다고….(웃음) 그렇게 다섯 번을 만났는데 매번 밤을 샜어요. 원래 인터뷰는 4시간 넘어가면 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지치기 마련인데, 그땐 그래도 재밌었어요.

 

딱 한 명만 인터뷰할 수 있다면 누굴 하겠냐는 질문에 “재미로 따지면 김어준”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닥치고 정치』는 가장 많이 알려진 책 중 하나잖아요.

저랑 코드가 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김어준은 정말 재밌어요. 그 친구를 인터뷰하면 제가 굉장히 발랄해져요. 서로 반말해가면서. 인터뷰 첫날에 이 양반이 딱 앉자마자 그러더라고요. “나 요즘 뭐에 꽂혔는지 물어봐줘.”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된 거예요.(웃음) 책이 잘 팔린 거야 뭐, ‘나꼼수’ 덕을 많이 봤죠.

 

 

 

예전부터 작가님 책을 재밌게 읽으면서도 아쉬움이 있었는데, 인터뷰 대상이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분들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난해『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라는 책이 나왔더라고요.

사회적으로 소외된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측면에서 ‘대자보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그 중 한 권이에요. 성노동자 인권운동은 페미니스트 진영 안에서도 논란이 되는 사안이라, 취지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섭외했죠.

 

조금 있으면 의사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의 ‘메르스 사태’를 돌아보는 책도 나올 예정이에요. 어찌 보면 의사 분들은 일반 국민들보다 더 큰 충격을 받으셨겠더라고요. 의료계가 이 정도로 허술했나, 하는 걸 현장에서 더욱 체감하셨을 테니까.

 

1차적으로는 기록으로 남겨두겠다는 거고, 나아가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대처할 수 있도록 개선책을 얘기해보자는 거예요

 

인터뷰어가 쓴 책답게, 후반부에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 질문을 하고 싶네요. 살 날이 3년밖에 안 남았다면 개인적으로, 직업적으로 뭘 이루고 싶으세요?

계속 이걸 하겠죠. 다른 걸 생각해본 적이 딱히 없는데…. 저에겐 인터뷰라는 게 나름대로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이니까요. 다른 분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마지막 순간에야 가족과 함께 한 달 정도 여행을 간다든가 할 수 있지만 그전까지는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못했던 책을 기획해서 3년 내에 완성하면 좋겠네요. ‘이건 하고 죽어야지’ 싶은 인터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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