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져야죠.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 그의 옳음 앞에서요.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지켜야 할 몇 가지 기준을 세워두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꼬박 꼬박 실천하는 친구입니다. 이를테면 그녀는, 환경을 생각하기 때문에 분리수거를 철저히 합니다.

 

페트병을 버릴 때는 제품명이 적힌 비닐을 벗기고, A4용지를 분리수거할 때는 박혀있는 스테이플러 심을 다 뽑습니다. 택배 박스를 버릴 때는 비닐 테이프를 뜯어내고, 다 마신 테이크 아웃컵도 한 번 헹군 다음에 분리수거 합니다. (잘 내다놓기만 하면 누군가 할 일, 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그런 생각도 친구의 원칙엔 어긋납니다. 내가 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어느 날 친구가 토로합니다. 새 직장의 후배들이 이것을 부담스럽게 느끼기 시작했다고요. 친구는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고 묵묵히 실천할 뿐(그리고 실은 하던 대로 하는 것 뿐) 그것을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배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배인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그녀가 그런 것들을 실천할 때마다 사실은 너무 귀찮은데 같이 하지 않기도 뭐한 상황에 처했나 봅니다. ‘유별난’ 그녀는 어느샌가 후배들에게 ‘예민하고 까다로운’ 선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녀의 옳은 실천이 비단 환경에만 국한된 게 아닌 걸 아는 나로서는 말하지 않은 다른 일들도 짐작이 됩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해주어야 했을까요? 그러게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말? 남들 앞에선 좀 대충대충 넘어가라는 말?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말이 그녀의 행동보다 결코 옳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뭘 또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말은 우리가 쉽게 하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옳은 것을 옳게 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더러, 아니 자주 피곤하게 느낍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 하느냐”,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마라”, “사람이 융통성이 없다” 이런 말들을 마치 충고인 양 쉽게도 하는 것이 우리들 아니던가요?

 

남들은 다 터득한 사회생활의 지혜를 왜 너만 모르냐는 듯, 좀 영리하게 굴라고도 말합니다. 그 말의 바닥엔 실은 묘한 비난도 담겨 있습니다. ‘너만 잘났어?’ 나도 옳은 건 아는데, 다 이유가 있어서 못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누군가의 옳음이 나를 불편하게 할 때, 그것을 너무 유난스러운 포지션으로 치환해 비난하기란 이토록 쉽습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수를 편하게 합니다. 우리는 가끔 옳고 대체로 비겁하며, 삶에는 비겁해져야 편한 순간이 의외로 많으니까요. 한 사람이 포기하면 여럿이 편해진다고, 그러니 좋게 좋게 가자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세상이 좋아진 건 바로 그들 때문입니다. 좋게 좋게 가지않고 불편하게 가더라도 진짜 좋음에 이르려 했던 사람들, 옳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주위의 눈총을 받고 동료의 원망을 받고 부조리한 피해를 입으면서도(좋은 것을 받은 건 하나도 없네요!), 옳은 것은 단지 옳다는 이유만으로 끝내 두 손에 쥐고 있었던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며 사는 많은 일들이 가능해졌습니다.

 

끝까지 옳았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좋아진 세상에 살며 우리는 정작 자주 눈감습니다. 모두의 용인 하에 어느 정도의 옳지 않음이 무마되는 분위기일 때 ‘유난스럽게’ 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잠자코 있는 쪽을 택하곤 합니다. 마음이 조금 부대끼긴 하지만, 그 마음을 못 본 척 하면 상황은 금세 지나가고, 다행히도 나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 ‘모두’ 중의 하나에 들 수 있으니까요. 그 안도감 속에서 무리에 섞여 별일 아닌 듯 누군가의 옳음을 함께 손가락질합니다. 왜 저렇게 유난이야.

 

그러니 이렇게 말해야겠네요. 옳음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인데, 누군가의 옳음을 유난스러움으로 보는 것은 비겁한데다 나쁘기까지 하다고요. 생각해보면 옳은 것이 유난스러운 취급을 받는 것은, 반대로 우리 대부분이 옳지 않게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옳음 앞에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유난스럽다는 피로가 아니라 마땅히도 부끄러움입니다.

 

부끄러워져야죠.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 그의 옳음 앞에서요. 배울 것이 많은 내 친구에게, 네가 옳다는 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 같아 이 글을 씁니다. 그냥 옳다는 말로는 좀 부족한 것 같네요.“네가 백번 옳아.” 그 정도는 말해야 이 마음이 가 닿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전, 앞으로의 내가 비교적 옳게 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시절, 꼿꼿한 마음으로 받아 적었던 이 글을 덧붙입니다. 칼럼니스트이자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 의 발행인인 김규항씨가 딸 ‘단이’에게 쓴 편지의 일부입니다. 언젠가 나의 아이가 생긴다면 그대로 전해주리라 생각하며 담아둔 글인데, 친구에게 먼저 보여주려 합니다. 세상을 조금씩 나아지게 만드는 그의 외로움 곁에서, 나 역시 함께 걸어주고 싶으니까요.

 

단아, 올바르게 산다는 게 뭘까? 아빠 생각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삶’이다. 사람들은 지난 올바름은 알아보지만 지금 올바른 건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가장 올바른 삶은 언제나 가장 외롭다. 그 외로움만이 세상을 조금씩 낫게 만든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서나 늘 그렇다.

 

단이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으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아빠보다 더 많을 거다. 하지만 단이의 거짓없는 성품과 행동이 단이를 외롭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단이가 외롭길 바라지 않지만 단이가 올바르게 산다면 단이는 어쩔 수 없이 외로울거다. 단이가 외로울거라 생각하면 아빠는 마음이 아프다.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든 고통스럽기 때문이야. (…중략…) 내 딸아, 너의 외로움을 사랑한다.

 

– 김규항, 『나는 왜 불온한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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