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고양이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길에서 우연히 고양이를 만났을 때. 눈이 마주친 그 순간 후다닥 도망가지 않고, 묘한 눈빛으로 날 응시하는 고양이를 보며 항상 떠올리는 소설이 있어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화자는 고양이입니다. 마치 사람처럼 관찰하고 생각할 줄 아는 고양이. 그가 중학교 영어 교사의 집에 눌러 살기 시작하면서 소설이 시작돼요.

 

 

그런데 이 고양이가 보통이 아닙니다. 자신을 ‘이 몸’이라고 부르는 이 거만한 친구는, 기본적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를 자기 아래로 봐요. 냉소적인 데다가, 통찰력도 있어서 하는 말 하나 하나가 독설명언이죠.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혹시 우리 고양이도 이런 생각 하는 거 아니야?”하며 흠칫할 거예요.

 


1.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 읽으세요

이 소설은 일본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데뷔작입니다. 500 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에요. 게다가 일정한 스토리도 마땅한 결말도 없습니다. 애초에 작가가 소설을 쓸 생각으로 쓴 글이 아니에요. 그의 집에 드나들었던 길고양이 모티브로 쓴 글을 묶은 것인데, 형식으로 치면 (고양이의) 일기에 가깝죠.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본에 살던 고양이가, 자신의 집에 오는 사람들을 관찰해 남긴 일기를 묶은 책. 시대 차이가 나서 이해 안 가는 구절이 있고, 곳곳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거야!”하고 덤볐다간 몇 장 읽다 말고 포기하기 딱 좋은 책이죠.

 

 

완독해야만 의미 있는 소설도 있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훌훌 넘겨 가며 재미있어 보이는 부분만 쏙쏙 골라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고양이가 좋아서 읽기 시작한 독자는, 고양이가 나오지 않는 부분은 건너뛰고, 고양이가 나오는 장면들만 따라가며 읽으세요. 이번 베스트 셀러 겉핥기에서는 ‘고양이 눈에 비친 인간은 어떤 모습인지’. 그 풍자와 해학을 중심으로 읽어 볼게요.

 


2.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고양이는 알고 있다

흔히 고양이를 요물이라고 말합니다. 평소엔 아는 척도 안 하다가, 주인이 우울해 하면 귀신같이 알아챈대요. 그럴 때 보면 사람 마음을 읽나 싶죠.

 

소설의 주인공 고양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친구는 아예 대 놓고 이야기해요. 자신이 ‘독심술을 터득한 고양이’라고. 털을 인간의 배에 대고 살며시 비비면, 찌르르 전기가 통하면서 그의 심중에 들어 있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나 뭐라나.

 

 

죽을 때까지 이름을 지어 주지도 않았고, 딱히 친밀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지만, 소설 속 주인은 이 고양이를 꽤나 사랑했음이 분명합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는 슬픈 소리를 읽을 줄 아는 고양이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어요.

 

사실 주인인 영어 선생은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모델로 창작된 인물이에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했던 작가는, 실제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고양이로부터 큰 위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3. 인간들은 대체 왜 그래?

독심술을 익힌 고양이지만, 그는 인간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너무 복잡하다는 거예요. 고양이가 본 인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내 스스로 괴로워하는 존재.”

 

날것으로 먹으면 될 것을 굳이 굽고 익히고. 생존과 상관없는 잡다한 것을 피부 위에 걸치고. 가만히 두어도 될 털 모양을 굳이 바꾸고. 그렇게 일을 만들면서 항상 바쁘다고 투덜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고양이는 비난합니다. 자기처럼 단순하게 살 수는 없느냐고요.

 

 

이 고양이님(?)의 기준에서 보면 인간이란 참으로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존재에요. 분한 건 그가 하는 말이 따지고 보면 다 맞는 말이라서 반박 불가하다는 점이죠.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한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는 죄가 없다고 자신하면 당사자의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남이 처한 공경이 그 편한 마음 덕에 소멸되지는 않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84P


 

소설은 별 볼 일 없는 고양이의 의미 없는 넋두리처럼 가볍게 서술되어 있지만, 인간의 부조리함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도 곳곳에 숨어 있기도 해요. 농담 속에 숨은 통찰. 그것을 찾는 것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는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4.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 뭐든지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마지막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스포일러 하나를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주인공 고양이는 맥주를 훔쳐먹고 얼큰하게 취해 휘청거리다 물독에 빠져 죽어요. 재미있는 건 죽음을 앞두고도 이 고양이가 참 한결같다는 거예요.

 

우선 맥주를 훔쳐 먹으면서, 고양이는 이것이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챕니다. 하지만 이내 단순하게 생각해버려요. “인간은 이걸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던데! 고양이라고 그러지 못하란 법은 없지!” 참 그다운 생각이죠.

 

처음엔 “이 맛없는 것을 인간은 뭐하러 먹나”고 투덜대더니, 좀 취했는지 맥주 두 잔을 싹싹 비워요. 그리곤 거나하게 취하죠. 졸고 있는 것인지, 걷고 있는 것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그만 커다란 물독에 빠져요. 물이 턱 끝까지 차서 숨이 막히고 괴로운 와중에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다리는 10cm도 안 된다. 뜬 곳에서 있는 힘껏 앞발을 뻗는다 해도 10cm가 넘는 항아리 아가리까지는 발톱이 닿지 않는다. 1백 년 동안 몸이 바스러져라 애를 써 봐야 나갈 수 없다.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나가려 하는 것은 억지다. 억지를 부리려 하니까 괴로운 것이다. 무모하다. 자청하여 괴로워하고 즐겨 고민을 당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514p


 

그러곤 허우적거리기를 진짜로 그만둡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발버둥 치는 대신에 죽음을 택한 거에요.

 


5. 우리도 고양이처럼 살 수 있을까?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고양이 독백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고양이처럼만 살면 편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처럼 단순하게 사는 건 보통 내공이 아니면 이룰 수 없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시니컬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내공!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면서 산다. 다만 그렇게 살다가 언제 어떻게 죽어도 상관없다. 그 정도 배짱은 되어야 고양이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안 되는 저 같은 사람은, 앞으로 이제까지처럼 살 겁니다. 사소한 일에 연연하고,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 내 스스로 괴로워하면서. 그래도 이제부터는 낮잠 자는 고양이를 부러워하진 않으려고 합니다. 마음 가는 대로 살 배짱도 없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억지고. 억지를 부리려고 하면 괴로울 테니까요.

 


illustrator 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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