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일이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 가운데 원하는 짝을 골라 앉으라는 선생님의 명령이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이끝나기가 무섭게 남학생들은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기 바빴다. 나를 비롯한 여학생들은 혹시나 마지막까지 옆자리가 빌까 노심초사하며 이 거사가 빨리 끝나길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 방식인가! 하지만 이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어린 난 가위바위보 꼴등으로 내 옆에 앉게 된 한 남자아이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돌이켜 보면 참 수치스럽고 자괴감이 드는 기억 중 하나다.

 

어릴 적부터 난 늘 놀림의 대상이었다. 키가 작아서, 주근깨가 있어서, 눈이 작아서. 놀림의 이유는 갖가지였지만, 결국 모든 건 외모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춘기가 오기 전까진 이 작은 말들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뒤늦게 열어본 내 마음은 온갖 상흔으로 가득했다.

 

그래서일까? 남들도 다 겪는다는 사춘기는, 나에겐 유난히 진하게 다가왔다. 피를 다 뽑아버리고 싶다는 말로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적이 있다. 부모님 노후 보험으로 공부 시키느냐는 말로 아빠를 서운하게도 했다.

 

날 서운하게 하는 친구들 앞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너는 떠들어라, 나는 간다” 혹은 “거울이나 보고 지껄여라!”였다. 무시하거나 받아치거나. 지금은 내가 그 누구보다 잘하는 일들이다. 이 쉬운 말들이 그땐 왜그리 어려웠을까.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날아오는 비수를 유연하게 피하는 법을 전혀 몰랐으니까. ‘말’은 너무도 쉬웠다. 그리고 그 말에 영혼이 잠식되는 일 또한 너무나 쉬웠다.

 

무섭게 던져대는 또래들의 말 속엔 ‘못생긴 사람은, 아니 못생긴 여자는 사람이 아니다’란 교훈이 있었다. 허무했다. 내가 예뻐지지 않는 한 결코 끝나지 않겠구나! 나는 왜 나인가, 너무도 억울했다.

 

스스로를 무던히도 미워하며, 그렇게 난 20대 중반의 여성이 되었다.지금도 그때를 돌이킬 때면 스물다섯의 내가 아닌 열다섯의 나로 자꾸만 돌아간다. 지금의 나라면 가볍게 넘겼을 사소한 말들에도 열다섯의 난 또 다시 무너진다.

 

날카로운 파편들로 조각난 기억들은 마음속을 유영하며 언제든 상처를 낸다. 한 장면 한 장면 꺼내다보면 어느새 나를 놀리던 친구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 애쓰는 어린 내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때의 난 이런 심정이었겠지, 그때의 난 이런 표정이었겠지. 그들은 기억의 장면 속에서 삭제된 채 여전히 날 괴롭히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들은 20대 중반의 남자로 성장했을 것이다. 좋은 아들이자 멋진 남자, 훌륭한 동료로 기억되며. 열다섯에 성장이 멈춘 건 그들이 아니라 나일 것이다.

 

20대 정 가운데에 서 있는 지금, 여전히 난 내가 밉다. 여전히 내 키는 작고, 여전히 난 미인이 아니다. 여전히 사방엔 내 상처를 후벼 파는 놈들이 있고, 여전히 내 상처를 가볍게 보는 ‘어른’들도 있다. 아마 10년 전 그놈들도 지금의 이놈들도 살면서 큰 업보는 안 쌓았다 합리화하며 살아가겠지….

 

하지만 난 그들을 잊기로 했다. 가끔씩 그 기억에 사무쳐 소리 내 엉엉 울곤 하지만, 그럼에도 지우기로 했다. 나를 위해, 내게 예쁘다 말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내가 지켜낼 성숙한 사랑을 위해.

 

난 못생기지 않았다. 세상에 ‘못’생긴 사람이 어디 있나. 이제 난 날 그저 못생긴 여자로 평가해버리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해지려 한다. “떠들어라, 나는 내가 좋다.”

 

스스로를 거부하는 철없는 사춘기 소녀에 멈춰 버렸던 내 시간은 이제 겨우 다시 흘러간다. 열다섯, 멈춘 시간에 갇혀버린 어린 나에게 이제는 떠나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팠지만 잘 견뎠다. 그때 넌 충분히 예뻤다”라고 토닥여주면서.

 

Freelancer 이유라 ztoa888@gmail.com

Illustrator 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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