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휴~ 쟤는 또 저러는구나. 결국 이게 다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거라니깐?” 언제부턴가 자존감이란 말이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모든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이 자존감 때문이라고 한다.

 

근데 저 말이 어떤 뜻인지는 정확히 알고 쓰는 걸까? 자존감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건가? 그 자존감이란 게 대체 어떻게 해야 높아지는 건데?

 

여러 의문을 품고 있던 중, 우연히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그 책엔 내 거친 물음에 대한 친절한 답변이 있었다.

 

사회심리학을 공부한 젊은 작가 박진영. 궁금증을 풀고 싶어 다짜고짜 만나달라는 내 요청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응답해주었다.


객관적인 조건이 좋아도 자존감이 낮을 수 있어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시공사, 1만 4500원. 일상의 고민을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박진영 작가의 신작

 

1. 책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는 추상적인 심리학 개념을, 일상적인 사례에 빗대어 설명해서 참 좋았습니다. 심리학에 대해 연구하고 책까지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행복하면 좋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잖아요. 심리학에서도 늘 개인과 행복이란 개념을 강조하고요.

 

하지만 실제 우리 사회는 개인의 행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요. 그걸 보고 심리학이 세상과 이렇게 동떨어져 있으려면 왜 존재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학자들끼리만 공감하고 사회와는 너무 접점이 없잖아요.

 

그래서 뭔가 심리학이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걸 말하고 싶고, 제가 아는 것들을 쓰고 싶단 욕심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러다 몇몇 잡지에서 연재 요청이 들어오고, 나중엔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와 얼떨결에 몇 권의 책을 쓰게된 거죠.

 

2. 작가님 책을 보면 자존감이나, 타인을 의식하는 행위같은 일상의 고민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행복과 관련된 심리학 연구를 보면 한국이 항상 꼴찌예요. 일단 저 자신도 어린 시절에 행복하단 생각을 별로 해본적이 없어요. 저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인생이 원래 이렇게 힘든 건 줄 알았죠.

 

10대 시절에 ‘네가 좋아하는 게 뭐니, 넌 지금 행복하니?’이런 근원적인 질문 자체가 아예 봉쇄되잖아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수능을 치는 단 하나의 길만 제시하니까요.

 

그러다 대학에 와서 자존감이란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땐 이해를 못 했어요. ‘내가 왜 굳이 나를 좋아해야 하지? 좋아한다는 게 뭐지?’란 생각이 들었고, 사실 딱 와닿는 개념도 아니었어요. 한국 사회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행복을 추구하기보단, 사회가 원하는 인재가 되기를 권장하잖아요.

 

또 자존감을 배우면서 자연스레 자아란 개념도 배운단 말이에요. 근데 이것도 뭔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이지?’ 시키는 것만 해 온 사람인데 ‘나’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저는 운좋게 심리학을 공부하게 돼 잘 알게 됐고, 제가 배운 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3. ‘자존감’이란 말과, ‘자존심’이란 말이 있잖아요. 두 단어는 어떻게 다른가요?

 

자존감은 단순히 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감정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자존감 자체가 대단한 개념은 절대 아니에요.

 

내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보니 굉장히 주관적이고 근거 자체가 없죠. 내가 봤을 때 나라는 인간은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아, 만족스러워, 이런 느낌이에요.

 

반면에 자존심은 ‘남’이란 개념과 연결돼 있어요. ‘자존심을 세운다’는 말은 남들에게 보여준단 의미잖아요. ‘내가 남에게 이 정도는 보여야 한다’는 개념이 깊이 들어가 있는 개념이죠. 그러다 보니 자존감이 낮은 사람도 자신감은 높을 수가 있는 거예요.

 

4. 자기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은 어린 시절에 이미 다 형성이 돼버려서,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은 자존감의 높고 낮은 상태가 변하기 어려운가요?

 

자존감은 성격이에요. 유전적으로 일정 부분 타고나는 게 분명 있죠. 막 태어난 갓난아기도 다들 성격이 다르듯이요. 자존감도 애초에 타고나는 정도가 사람마다 달라요.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어떤 상황과 환경을 경험하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부분도 많아요. 보통 30살까진 유동적으로 업앤다운을 반복하죠.

 

자존감은 성격 플러스 나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기 때문에 20살 이후에도 얼마든지 변할 여지가 있어요. 물론 쉽게 변하진 않지만 어떤 중요한 사건을 겪거나 결심에 의해 충분히 변할 수 있는 부분이죠.

 

5. 그래도 출중한 외모, 부모님의 재력 등 객관적인 조건이 좋으면 아무래도 자존감이 높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부모님의 영향은 매우 커요.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부모님과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를 가진 사람이 스타트라인이 유리한 건 사실이죠. 하지만 그외에 것들은 크게 관련이 없어요. 사람마다 물질이나 외모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설령 부모님이 아무리 돈이 많고 학력이 높고 직업이 좋더라도 아이의 자존감은 낮을 수 있어요. 부모님이 자신의 높은 기준으로 아이에게 ‘서울대를 꼭 가야 한다!’, ‘1등 아니면 의미가 없어!’ 이런 식으로 교육을 하면 아이는 오히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죠.

 

그 기대를 충족한다고 해도 그건 외부의 기대에 부응해 안도감을 느끼는 것뿐이에요. 진짜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아닙니다. 게다가 실제로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확률이 훨씬 크고요.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알아야 나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건데, 부모님이 모든 걸 결정해버리면 그럴 수가 없어요. 자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자기를 사랑할 수 있겠어요.


자존감의 높낮이는 중요치 않아요.

 

 

6. 그럼 올바른 자존감을 갖기 위해선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요?

 

선택의 기준이 다양해야 해요. 자존감이라는 게 결국 내가 나를 평가하는 거잖아요.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을 보면 자기 평가의 요소가 굉장히 세분화돼 있어요.

 

‘난 좋은 학교에 다녀, 집에 돈이 많아’. 이런 큰 개념이 아니란 거죠. 나는 꽃꽂이를 감각적으로 잘해, 나는 인사할 때 미소가 예뻐, 손이 커서 물건을 잘 잡을 수 있어. 이런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 작은 부분에서도 자기 평가를 하거든요.

 

부모님의 끊임없는 세뇌로 ‘학벌’ 하나만을 보고 달려온 사람은, 그 학벌이란 목표가 무너졌을 때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반면에 자존감을 형성하는 요소가 다양한 사람은 다른 것 하나가 잘 안 되어도, 내가 잘하는 여러 다른 것들 때문에 무너지지가 않죠. 나는 좋은 학교는 못 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꽃꽂이를 잘하고, 손도 크고, 인사도 예쁘게 해! 이런 식으로요.

 

7. 요즘 부쩍 자존감이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어요. 근데 ‘자존감이 높아서 혹은 낮아서’처럼 모든 행동의 원인을 자존감에 결부시키는 이분법적 접근이 썩 바람직해 보이진 않습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자존감을 무언가의 원인으로 봐요. 근데 사실 자존감은 결과예요. 내가 나란 사람을 충분히 알고, 받아들이고, 세세한 장단점을 파악하고서 느끼는 결과라는 거죠.

 

삶이 너무 불행하고 불만족스럽고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으니 자존감이 낮은 거예요. 자존감이 낮아서 불행하고 불만족스러운 게 아니라요.

 

난데없이 ‘나에 대해 좋게 생각해야지!’ 다짐한다고 갑자기 없던 꿈이 생기고 안 좋았던 인간관계가 좋아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리고 자존감이 높으면 좋은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중요한 건 자존감의 ‘안정성’입니다.

 

8. 안정성이요? 좀 더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자존감을 얻는 원천과 방법이 가장 중요해요. 나에 대한 기준이 내부에 있느냐, 외부에 있느냐로 나눌 수 있는 데요.

 

만약 외모, 스펙, 사람들의 인정 같은 것들만을 통해 자존감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면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어떤 일을 잘못해서 그것에 대해 지적을 당하면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런 모욕적인 소리를 할 수 있냐!’고 필요 이상으로 발끈합니다. 타인의 인정이 나한테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누가 그러지 않는 걸 참을 수 가 없는 거죠.

 

근데 자존감을 내부에서 찾는 사람은 불안할 이유가 없어요. 타인의 인정이나 잔소리는 자존감을 형성하는 수백 가지요소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자존감의 높고 낮음은 별로 중요치 않아요. 자존감을 얻는 원천이 내부에 많이 있어, 안정적인 자존감을 갖는 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죠.

 

9. 한국 사회는 ‘남’이라는 요소가 참 많이 개입되는 문화예요. 안정적인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이런 남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나요?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남을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그 정도가 덜하죠.

 

만약 옷을 A라는 스타일로 입고 나왔어요. 친구가 장난이든 진심이든 “너 오늘 스타일 좀 난해하네~”라고 얘기했을 때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은 “응 그래, 그건 니 생각~” 하면서 넘길 수 있어요.

 

근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화를 내게 돼요. “내가? 너나 잘해 임마!” 이런 식으로요. 침입을 당했다고 느끼니 방어를 하는 거예요.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데 못 받으니 화가 나는 거죠.

 

근데 자존감이 정말 낮은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맞아, 내가 봐도 정말 구리다…” 이렇게 인정을 하게 돼요. 절망에 빠지는 거죠. 아무리 안정적인 자존감이 중요해도 너무 낮은 자존감은 옳지 않아요.


몸도 마음도 자존감도 건강한 게 최고예요.

 

 

10. 많은 연인들이 이별 후 “걔는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사귈 때 힘들었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점들을 두고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까요?

 

그런 사람은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상상 속에서 이미 내가 거절당할 거란 걸 전제로 행동해요. 나도 이런 내가 싫은데, 쟤라고 날 좋아하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상황을 배배 꼬아서 보는 거예요.

 

그러면 상대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를 하게 돼요. 상대가 아무 의도 없이 손을 뒤로 뺐는데 “지금 나 싫다는 거야?” 이런 식으로 발끈하게 됩니다.

 

혼자 분노하고 혼자 상처 받고 그런 모습을 보며 상대방은 힘들어하고. 나는 상대가 힘들어하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또 상처 받고. 그러다 보면 자존감이 더 떨어지게 되겠죠. 엄청나게 악순환이에요.

 

11. 그럼 반대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연애할 때 더 유리한가요?

 

연애할 때 나르시스트가 초반엔 더 유리하다고 해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니 보는 사람 입장에선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근데 자존감이 너무 높은데다가 우월감 같은 것까지 가지고 있으면 결국엔 옆에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요. 계속 박수 쳐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나르시스트는 자존감이 너무 높아서 남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걸 못 견뎌요, 항상 주목 받아야 하거든요. “너 지금 나 안 보고 있어? 이렇게 대단한 나를?” 이러면서 상대를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죠.

 

12. 그럼 말씀하신 바람직한 자존감을 갖기 위해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나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불행하게 살고 있다가도, 어떤 대단한 사건이 빵! 터지면 인생이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에요.

 

고등학교 3년을 희생해서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행복해지셨나요? 대학교 5~6년 동안 스펙 경쟁해서 취업했는데 행복해지셨나요?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는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해요.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다는 건 지금 내 일상과 삶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존감은 결과라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럼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일상을 다시 디자인해야죠. 누가 물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 다섯 가지 정도는 줄줄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해요. 진짜 사소한 것이라도요.

 

이런 식으로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며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그것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며, 작은 행복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나를 진심으로 지지해주고 생각해주는 친구 2~3명 정도는 꼭 곁에 둬야 합니다. 아무리 혼자 나에게 만족해도 관계가 결여된 자존감은 뭔가 허전한 느낌이거든요.

 

13.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이 소위 말하는 ‘멘탈’도 강한가요?

 

멘탈과 자존감은 좀 별개예요. 멘탈은 심리학에서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릅니다. 평형 상태가 무너졌을 때 잘 회복하는 능력인데요. 이것도 성격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타고나는 요소가 큽니다. 근데 결국 단단한 멘탈은 ‘일상을 유지하는 힘’에서 나와요.

 

만약 엄청 슬픈 일이 빵 터진다고 쳐봐요. 제일 안 좋은 태도는 그 안 좋은 일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 몰두하는 거예요. 억지로라도 신경을 분산시킬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인간은 우리 생각보다 강한 존재입니다. 지금 나락으로 떨어져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상 상태로 어떻게든 돌아와요. 그 사실을 아는 것 자체로도 큰 힘이 되죠.

 

내가 지금은 이렇게 힘들어도 조금만 버티고 시간이 지나면 다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게 중요해요.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이 멘탈이 강한 사람인 거죠.

 

14. 마지막으로 자존감 때문에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는 이들을 위해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자아를 발견하고 건강한 자존감을 쌓는 건 사실 10대 시절에 이뤄졌어야 할 일인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잖아요. 대학가기에만 바빴으니까요.

 

내가 누군지 아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나를 발견하고, 나에 대한 매력을 찾고싶다고 마음먹으면 결국엔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나만이 답을 낼 수 있는 문제이니까요.

 

왜 나는 안 될까, 자존감이 높으면 좋다는데 왜 빨리 안 높아지지. 이렇게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계속 벽돌을 쌓아간다는 기분으로 조급하지 않게 나에 대해 고민하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랍니다.

 

Photographer_이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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