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없어요?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말에 기뻤던 적이 있는가? “언제 연애할래?”라는 질문에 불편했던 경 험은? 세상엔 1+1=2처럼 무수한 공식이 존재한다. ‘연애=행복’, ‘비연애=불행’은 잘 알려진 공식 가운데 하나다.

 

공식을 접할 땐 정답을 외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공식이 이상하다는 의심은 들지 않았던가? 계간 「홀로」 편집장이자 책 『연애하지 않을 자유』의 저자 이진송은 뻔한 질문에 의문을 제기한다.


 

혼자이고 싶을 땐 홀로가 될 자유

‘연애 좀 안 한다고 못살게 구는 세상에 카악 퉤 내 맘대로 침이나 뱉어보자’고 시작한 계간 「홀로」. 2013년 2월 창간 이후 3년이 흘러 8호까지 나왔고, 얼마 전엔 책 『연애하지 않을 자유』 를 냈다. 침은 시원하게 뱉었나? 소기의 목적은 이뤘는가?

 

계간 「홀로」를 내면서 세상에 엿을 먹이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화제가 크게 되지는 않았다.(웃음) 그럼에도 잡지를 꾸준히 만드는 과정에서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모였다. 아직은 연약하지만 나름의 정서적인 커뮤니티가 생긴 것 같다. 잡지를 창간한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이젠 큰 담론을 만들고 싶어서 책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내게 됐다. 진짜 제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침을 시원하게 뱉었냐고? 아직은 침을 모으는 단계다.(웃음)

아직은 연약하지만 나름의 정서적인 커뮤니티가 생긴 것 같다

 

책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보니 작가의 스무살 모습이 나와 있더라.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었고, 솔로 탈출을 위해 미팅에도 나갔다. 그런 데 갑자기 ‘연애지상주의’에 환멸을 느끼는 ‘비연애 칼럼니스트’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20대 초반에는 솔로 탈출 시도도 많이 했었다.(웃음) 미팅, 소개팅이나 연합동아리에도 얼쩡거려봤지만 이내 내가 연애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 다. 상대방의 관심을 귀신같이 캐치하거나 낌새를 흘리고 느끼는데 서투른 편이다.

 

모임이 끝나면 친구들이 말한다. “너 아까 걔한테 왜 그랬어?” 나는 대답한다. “내가 뭘?” 돌아 오는 말은 ‘연애고자’다. 연애를 안 하면 다들 짠하게 바라보고 빨리 솔로 탈출하라며 채근한다. 하지만 나 지금 진짜 외로운가? 생각해봤지만 슬프지 않았다. 연애를 안 하는 나 자신이 불쌍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연애를 안 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혼자일 때는 그런 말을 들었다.‘모임에나 가라’, ‘클럽에 가라’, ‘그러다가 큰일 난다’는 말까지 삼단 콤보로.

사람들은 비연애 상태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결점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연애지상주의’는 한 사람의 결점을 무조건 비연애 상태와 연결한다. 연애를 안 하면 “저러니까 연애를 못 하지”라고 말하면서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몰아가는 것이다.

 

연애를 하는 사람에게도 인간적인 문제점들이 있을 수 있는데, 연애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준다. 이상하지 않나? 연애하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한다. 원하지 않으면 소개팅을 거절하거나 클럽에 안갈 수도 있다. 그런데 연애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타박 받는다.

 

나도 예전에는 클럽이나 술자리에 억지로 따라갔지만 즐겁지 않았다. 재미가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됐다. 그러면 어느새 ‘철벽녀’, ‘게으른 사람’, ‘연애세포가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연애? 내가 하고 싶을 때 할게

책에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학창 시절엔 매력을 발산할 수 없는 환경에 있다가, 대학에 들어오면 갑자기 쇼케이스에 들어간 것처럼 매력을 보여주고 연애해야 한다고.

그렇다. 열 아홉살 때까지는 콘돔을 살 수도 없는데, 스무살이 딱 넘으면 갑자기 자유로운 연애를 해야 한다. ‘준비, 땅!’하면 연애 시작. 안 하면 꽉 막힌 사람이 되고, 너무 많이 하면 헤프다는 얘기를 듣는다. 웃긴 일이다. 그러니까 청소년 시기에 성교육도 제대로 받고, 연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하면 꽉 막힌 사람이 되고, 너무 많이 하면 헤프다는 얘기를 듣는다. 웃긴 일이다.

 

‘비연애 칼럼니스트’라는 수식어 때문인가. 처음에는 연애에 반대하는 줄 알았다.

나를 연애에 반대하는 비연애주의자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나의 기조는 내버려두 자는것이다.어찌보면 쉽지 않은 노선이다. 한때 유행했던 ‘커플지옥 솔로천국’ 노선을 타면 굉장히 명쾌해지겠지만.(웃음) 나는 그렇지 않다.

 

연애의 단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연애를 지향하거나 비연애주의를 주창하지도 않 는다. 다만 연애를 안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상태를 받아 들이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살다보면 연애 중일 때도 있고 홀로일 때도 있으니까.

 

연애가 아닌 연애지상주의를 비판한다는 말? 낯설다.

먼저 ‘사랑’이라는 감정과 ‘연애’라는 개념을 구분해야 한다. 1910년대 이전 우리나라에 ‘연애’ 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화가 진행되 면서 ‘연애’ 개념이 수입된 것이다. 신여성이나 모던보이 같은 식자층이 향유하는 문화였다.

 

지금 현대인은 이상형을 꼽을 때 ‘취향 맞는 사람’ 또는 ‘말이 통하는 사람’을 얘기한다. 하지만 남녀가 평등하게 사랑하고 존중하며 만들어 나가는 연애를 통해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은 겨우 100년 남짓된 이야기다. 나도 문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연애는 당연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1910년 이전에는 연애가 없었다고 했지만『물레방아』 같은 소설도 있다. 방앗간에서의 만남은 연애가 아닌가?

당시에는 ‘연애’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남녀상열지사’나 ‘야합’이라는 말을 썼지. 둘이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꽃구경하고, 주막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시면서 짠~ 하는 데이트는 드물었다는 얘기다. 물론 연애라는 개념이 생기기 이전에 사랑으로 만난 사람들이 있다.

 

춘향이와 몽룡이도 서로 좋아해서 만났다. 또한 계급을 뛰어넘는사랑을 한 수많은 커플이 있기 때문에 고전 문학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의 ‘연애’는 무엇을 뜻하나?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만나는 과정에서 자아를 발견하며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 근대적인 개념의 연애다.

저마다의 욕망이 다르기 때문에 관계에서 온도차가 생긴다.

“연애하고 싶다”는 마음엔 ‘문화’를 즐기고 싶은 욕망이 포함됐다는 말인가?

맞다. 연애에 투영되는 욕망은 다양하다. 저마다의 욕망이 다르기 때문에 관계에서 온도차가 생긴다. 누군가는 연애를 섹스로 치환하는 반면, 누군가는 조금 더 감정적인 것을 원하는 식으로. 이런 두 사람이 만날 때 정서적인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오빠는 나 이러려고 만나?”라고 하면서.

 

 

정상적인 사랑이 뭔데?

외부에서 연애하라고 강요하기도 하지만, 연애 못하는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는 문화도 있다.

SNS를 보면 솔로를 자조하거나 자학하는 반응 이 많다. 솔로를 마법사에 빗대는 것도 마찬가지. 예를 들면 내 책『연애하지 않을 자유』나 계간 「홀로」 관련 기사에 친구를 태그해서 “우리를 위한 책이야” 혹은 “왜 눈물이 나지?”라고 댓글을 단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연애하지 않으면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심리. 그것은 ‘쟤는 배낭여행에 가는데 돈 없는 나는 못가니까 불쌍하다’는마음과 비슷하다.

 

굳이 연애만을 도마 위에 쉽게 올리는 이유는 뭘까?

연애 ‘오지랖’을 받을 수 있는 집단은 정해져 있다. “너 왜 연애 안 해?”라는괴롭힘도 아무나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20대에서 30대, 신체적 장애가 없고 어느 정도 표준 체중과 표준 신장 안에 딱 들어가며 사회적으로 연애를 해도 된다는  승인을 받은 사람들이 오지랖에 시달린다. 그러니까 ‘연애를 하라’는 말에도 권력 관계가 함축돼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왜 연애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다. 이럴 경우에는 질문을 받지 못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남자친구 없어요?”라는 말이 마치 재미있는 인사나 무해한 안부로 쓰인다.

 

동시에 “애인 없어요?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말은 칭찬으로 받아들여진다. ‘애인 있을 것 같다’는 말은 ‘매력 있다’는 말의 간접적인 칭찬이라면, ‘없을 것 같다’는 말은 ‘매력이 부족하다’는 욕이 된다.

 

비연애에 대해 얘기하려면 누구보다도 ‘사랑’ 에 관해 많이 생각해봤을 것 같다. 정답은 없겠지만, 나와 주파수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팁이 있을까?

연애에서 주파수가 딱 맞기란 정말 힘들다고 생각한다. 나와 꼭 맞는 사람을 굳이 연애 관계에서 찾아야 할까? 정서적인 충족감은 친구 사 이나 다른 관계에서도 가능하다. 내가 연애를 안 하고도 오래 잘 살았던 이유를 생각해봤다. 취향 공동체가 굳건하기 때문이었다. 학교,  스터디, 모임이나 덕질로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까지 긴밀하게 잘 지낸다.

사회가 승인하는 ‘신체적으로 장애가 없는 이성애 남녀의 연애’에 저항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책에서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는 구조’라는 표현을 썼다. 사랑을 가로막는 구조란 무엇인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를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요즘은 청년 세대를 ‘N포 세대’나 ‘흙수저’로 쉽게 부른다. 청년들의 다양한 선택이나 욕망을 하나로 후려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가로막는 요소는 너무나도 많다. 돈, 불 경기, 신체적 조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만남 등등.

 

이처럼 연애를 할 수 없게끔 몰아가는 이유는 다양하다. 무조건 연애하라고 강요한다 면, 정상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연애를 할 자유만큼이나 하지 않을 자유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계간「홀로」를낼때,“연애를 하게 되면 솔로인 친구를 바지 사장으로 세워서라도 잡지를 이어 가겠다”고 말했었다. 지금도 유효한가?

인터뷰에 실어도 좋고 안 실어도 좋지만 나는 지금 연애 중이다. 배신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 다. “연애? 자기는 이런 책을 내놓고?”(웃음)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무조건 비연애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어서가 아닐까.

 

나도 계간 「홀로」를 낼 때는 솔로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뒤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으로부터 ‘연애’라고 승인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비연애 인구에 속한다. 사회가 승인하는 ‘신체적으로 장애가 없는 이성애 남녀의 연애’에 저항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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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김재윤 Z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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