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꽤 똑똑하단 얘기를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집 주소랑 전화번호를 정확하게 기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 내 나름의 생존본능이었다. 엄마와 함께 걷다가도 길을 잃고, 아파트 내에서도 길을 잃는 나를 위한…….
그래, 나는 길치다. 길치인 주제에 방향치까지 있어서 툭하면 길을 잃기 일쑤다. 가끔 sns를 보면 과장인가 싶을 정도로 심각한 길치 이야기가 올라온다. 하지만, 그 콘텐츠를 보고도 웃을 수 없는 건 그게 내 이야기이기 때문. 남들 다 웃을 때 웃지 못했던 길치들은 드루와! 이 험한 세상, 길치가 살아남는 법을 공개한다.
난 길치고, 널 귀찮게 할 거야.
어리니까 길을 잃을 수 있지 하던 시기도 잠깐. 지도상으로 도서관에서 9분 거리였던 집을 찾아가는데, 1시간 30분이 걸리자 더 이상 내 상태를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약속 장소를 찾아가다가 길을 헤매는 나. 그런 나를 찾아 헤매는 친구들. 내가 어디 있는지 제대로 설명조차 못 한다. “나 길을 잃었어. 여기가 어디냐면 사람이 많고, 방금 개가 지나갔어.”
나는 친구 없이 낯선 곳을 갈 수도 없는 그런 어른으로 성장했다. 내 나이 스물다섯. 더는 이렇게 민폐로 살고 싶지 않았다. “나 이제 길치 극복할 거야!”
길치 극복을 위해 가장 처음 시작한 일은 길 보는 눈을 키우는 것.
1) 주의력 키우기
사실 나는 산만한 편이다. 멍때리기를 잘하고, 걷는 중에 휴대전화를 보는 등 딴짓을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분명히 아는 길인데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엉뚱한 곳에 와 있기 일쑤다. 혹시 걸으면서 땅만 보거나, 딴짓을 하는 습관이 있다면 이제부터 고개를 들고 길을 직시하자. 길치 주제에 길을 찾는데 멍을 때리다니. 당치도 않다. 긴장하자!
2) 길 외우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하기)
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하자. “아 이 길을 걷다가 오른쪽으로 빠지면 맥도날드가 있고 쭉 가면 내가 찾는 카페가 있구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자주 하다 보면 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동안 학교에서 맥도날드, 학교에서 카페 가는 길만 알았다면, 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학교에서 맥도날드를 거쳐 카페까지 가는 방법을 훈련해 보자.
3) 건물 확인하기
길치가 민폐인 이유는 매번 길을 잃고 친구에게 help를 요청할 때마다 중요 포인트를 모른다는 거다. “도로가 넓어.”, “애들이 많아”와 같이 그냥 눈에 보이는 걸 대충 막 말하지 말자.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큰 건물, 유명한 건물을 외치자. 그 정도만 돼도 친구는 당신을 어떻게든 찾아낼 거다.
익숙한 길은 곧잘 찾는데, 낯선 길에만 들어서면 멘붕이다. 살다보면 종종 낯선 곳에 가야 할 일이 생길텐데 어쩔텐가. 매번 사전 답사를 할 수도 없고. 다행히 세상은 우리 편! 나 대신 길을 기깔나게 찾아주는 지도 앱들이 이미 많이 나와있다.
나는 길을 나서기 전에 늘 로드뷰로 예행연습을 한다. 도착지와 목적지 설정 후 로드뷰를 누르면 내가 찾아가야 할 길을 미리 볼 수 있다. 길을 미리 봐두면서 처음보는 낯선 길과 친해지는 거다. 그래야 실제로 길을 찾을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건물에서 우회전 해야 하는 지, 버스 정류장은 어떻게 생겼는지 미리미리 봐 두자.
길치 극복 팁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길 찾기는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행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차원이 다르다. 언어(해외여행시)도 안 통하는 데다 낯선 숙소, 맛집, 관광지까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숨돌릴 틈 없이 계속 길 찾기다. 따라서 여행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처음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미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PPT를 만들었다. ‘해외여행에는 구글 지도!’ 라고 하지만 길치에게 지도는 무용지물. 지도로 길을 찾을 정도라면 그건 길치가 아니란 말씀.
지하철 노선도부터 지도, 맛집 등 다양한 길에 대한 정보를 여행 서적, 블로그 등 다양한 곳에서 긁어모았다. 여행 서적은 관광지 위치 같은 기본 정보를 알 수 있다. 정보를 모았다면 그다음은 디테일! 블로그는 실제로 여행을 다녀온 블로거의 길 찾는 노하우와 최신 사진까지 찾아볼 수 있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나는 올해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감행했다. 하지만, 역시나 길 찾기는 실패. 또다시 길을 잃었지만 대신 길 찾기 앱의 GPS 사용법을 배울 수 있었다. GPS를 키니까 정말 친절하게도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다 알려 주더라.
혼자 여행까지 와봤지만 난 여전히 길을 잃는다. 그래도! 다음 여행에서는 좀 더 나은 길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오늘도 길을 잃었지만, 결국엔 내 힘(+GPS의 도움)으로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는가. 남들보다 느리고 더딘 길치 동지들. 우리 존재 화이팅이다!
illustrator liz
director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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