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생존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피폭된 물질은 사라지지 않죠. 피폭된 자가 죽는다고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고 해도요.

 

마찬가지로 그 참혹한 일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때때로 되살아나곤 합니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같은 방법으로 말이에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하루걸러 한 번씩 일어나고야 마는 세상에서. 아물지 않은 기억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 134p


 

 

작가 한강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그 상처를 다시 응시하고 애도하기로 합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소년 동호를 중심으로,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어요.

 

작가는 소설을 쓰며 “벌 받는 기분으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비슷한 심정으로 책장을 넘겨야 할 겁니다. 곪아 썩어가는 상처를 다시 들여다볼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함께 기억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1. 소년,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다

1장은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소년, 동호의 이야기입니다. 한집에 사는 동호와 정대는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예요. (정대, 정미 남매는 동호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그 일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늘어지게 낮잠을 잔 뒤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을 겁니다.

 

소년들은 잘 몰랐습니다. 왜 군인들이 사람들을 때리고 죽이는지. 그저 정미 누나가 없어져서, 누나를 찾으러 거리로 나와 있었을 뿐이에요. 어른들이 데모하는데 근처는 가지도 말라고, 간밤에도 역에서 총을 쏴서 사람이 죽었다고 했지만, 자신들이 죽게 될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뭘 했다고요.

 

 

그런데 정대가 죽었습니다. 갑자기 울린 총소리에 놀라 거리가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동호는 정신없이 도망가다 정대 손을 놓쳤어요. 총알이 정대의 옆구리를 내려쳤고, 정대는 헝겁 인형처럼 고꾸라졌습니다. 그런 친구를 뒤로하고 동호는 도망쳤습니다. 겁에 질려서 저격수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어디일까 만을 생각하며 집으로 갔어요.

 

집에 도착해 불 꺼진 정대 방을 보자, 소년은 그제야 총에 맞아 죽은 친구를 떠올립니다. 동호는 복받쳐 올라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해요.

 

 


“지금 정미 누나가 갑자기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달려나가 무릎을 꿇을 텐데. 같이 도청 앞으로 가서 정대를 찾자고 할 텐데. 그러고도 네가 친구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정미 누나가 때리는 대로 얻어맞을 텐데. 얻어맞으면서 용서를 빌 텐데.”

『소년이 온다』 36p


 

 

정대가 죽던 날. 어린 소년의 영혼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소년은 친구를 찾으러, 시신들이 모여 있는 도청으로 갑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곳에 남아 잔일을 돕게 됐어요.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처럼 친구나 가족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덮어둔 천을 열어 죽은 몸을 보여주고,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에요.

 

시체 냄새가 가득한 도청에서, 오열하는 유족들을 보며 동호는 다짐합니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2.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2장의 화자는 죽은 정대의 영혼입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피를 많이 흘려 습자지 같이 얇고 투명해진 자신의 얼굴이 보였답니다. 썩어가는 수많은 몸들 사이에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니 무서웠지만, 정대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어요. 눈을 감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죠. 혼이란 그저 썩어가는 자신의 몸뚱아리 주변을 맴돌 수 밖에 없다는 걸 정대는 깨닫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죽인 사람의 꿈에 나타나고 싶다고.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자신의 눈을 봤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혼엔 힘이 없죠. 키가 자라고 싶었던, 팔굽혀펴기를 마흔 번 연달아 하고 싶었던, 언젠간 여자를 안아보고 싶었던, 중학교 3학년 꼬마 정대의 삶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습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중략)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듯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을 생각해.”

『소년이 온다』 57p


3. “오늘 남는 사람들은 정말 다 죽어요?”

다시 동호가 있는 도청으로 돌아옵시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계엄군이 오늘 밤에 도청으로 들어올 것이고, 남은 사람들을 다 죽일 거래요. 형들은 각오가 된 사람만 남고 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호는 가지 않았어요. 엄마가 도청까지 와서 여기 있다간 죽는다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끝까지 남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죽은 정대를 위해서?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아님 죽는 게 두렵지 않다는 초연한 확신으로? 아마 아닐 겁니다. 창문 틈 아래 웅크려 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가, 회의실에서 남은 카스텔라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냐고 묻던 아이가,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어요.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소년이 온다』 114p


 

 

그들이 무슨 마음으로 도청에 남았건, 계엄군은 예정대로 도청으로 들어왔고 시민군은 철저하게 패배했습니다. 총을 들고 경계하던 형들은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어요.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대요. 진압 과정에서 군인들은 항복하는 아이들까지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호는 죽었습니다.

 


4. 그날 이후, “살아남았다는 치욕과 매일 싸웁니다”

소설의 3장부터는 동호가 죽고 시민군이 계엄군에게 패배한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그들은 ‘극렬분자’, ‘빨갱이’라는 딱지를 달고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아요.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년이 온다』 167p

 

“내가 어떻게 대답하든 소총의 개머리판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습니다. 본능적으로 나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벽 쪽으로 뒷걸음질쳤습니다. 내가 쓰러지면 그들은 등과 허리를 밟았습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아 내가 몸을 뒤집으면 군화로 정강이를 짓이겼습니다.”

『소년이 온다』 106p


 

 

끔찍한 고문을 받던 이들은 이듬해 성탄절 특사로 석방됩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십 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고통은 끝나긴 커녕 선명해집니다. 자신을 괴롭힌 이들을 죽을 때 꼭 데려 가겠다며 분노하는 사람, 트라우마에 미쳐서 손목을 여섯 번이나 그은 사람, 살아남았다는 것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지옥에 살고 있어요. 그들에게 광주는 지나간 일이 아닌 겁니다. 비록 더 이상 누구도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소년이 온다』 126p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소년이 온다』 135p


5. 내 친구, 우리 형, 우리 엄마의 이야기

사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와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가 특별한 건 등장인물들이 마치 내 가족, 친구인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사건을 고발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상처를 안고 사는 개개인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서술 방식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독백인 6장을 읽을 땐, 저도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찾아갔을 적에, 네가 그리 순하게 저녁에 들어갈라요, 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으까이. 나는 안심을 하고 집에 가서 느이 아부지한테 그랬어야.
여섯시에 문 잠그고 집에 온다요. 다 같이 저녁 묵자고 약속했소.
그란디 일곱시가 되도록 네가 안 들어온게.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

『소년이 온다』 185p


 

어떤 독자들이 『소년이 온다』를 읽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한강 작가는 “젊은 독자, 어린 독자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광주가 이제 점점 언급이 안 되고 있고, 교과서에도 자세한 정황이 나오지 않고 교육이 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모르게 된다는 거에요.

 

 

얼마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발포 명령을 부인하며 “사실 ‘광주사태’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잊은 사이, 광주는 여러 번 되태어나 살해당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도 오랫동안 광주를 잊고 지냈습니다. 여러 번 책을 덮고 눈물을 닦아야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제라도 읽게 되어, 기억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소년이 온다』 79p


 

 

illustrator 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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