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맞닥뜨릴 때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는지? 술을 들이붓는 알코홀릭, 드라마 정주행하며 눈물 쏙 빼는 덕후, 전화통 붙잡고 끊임없이 하소연하는 진상. 가지가지일 테다. 답 없는 고민이 닥쳤을 때,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근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도록 커튼으로 창을 가리고 방바닥에 눕는다. 이불은 깔지 않으며, 시계도 보지 않는다. 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차가움으로 심신을 마비시켜나간다. ‘방구석 동사 테라피(?)’라고 할까?
백수 13개월을 맞이하던 2006년 11월,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OOOOOOOO?” “뭐 아직요.” “OOOOOO OOOOOO!” “열심히 하고 있어요. 죄송해요. 공채 기간이 거의 끝나서요. 요즘은 시험이 많이 없어요.” “OOOO OOOOOO.” “뭔데요?” “OOOOO OOOOO?” “네! 병원 행정직요? 제가요?”
전후 사정을 설명하자면, 나는 졸업 후 기자가 되겠답시고, 신문 훑고 글이나 끼적이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언론인을 꿈꾼다는 허세만 이 불안을 가리는 자기 최면이었다. 아버지 입장으로선 멍청한 아들이 걱정스러웠을 게 분명하다.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아들 일자리를 청하셨고, 친구분은 병원 경영의 미래를 송두리째 포기하며 친구 아들에게 행정직을 제안했다.
“네 성격은 내향적이야. 기자가 맞지 않아(O). 기자도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너 준비도 많이 안했잖아(O). 병원도 전문 경영 시대다. 행정직에도 미래가 있어(?). 행정직 하면서, 너 하고 싶은 공부 하면 좋지 않냐(O).” 아버지가 말했다. 그야말로 ‘리얼’ 이었고, 반박은 불가했다.
1993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 >엔 <인생극장>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매주 이휘재를 주인공으로 새로운 인생 스토리가 펼쳐진다. 드라마 초반이 지나면 A냐 B냐 갈림길이 나오고, 느닷없이 화면이 양쪽으로 나뉘면서 이휘재가 두 명이 된다. 두 명의 휘재가 외친다. “그래! 결정했어.” 빠밤빠 빠밤빠 빠밤빠 빰빠바밤~ BGM이 흐른 후, 서로 다른 두 버전의 앞날이 차례대로 방영된다.전화를 끊고 난 순간 내 머릿속엔 이미 두 버전의 앞날이 꼼꼼하게 그려졌다. 맨바닥에 몸을 뉘었다.
A. 기자 시험을 고수하기로 한 앞날.
자존감은 유지될 것이다. 이제껏 취업 안 한 게 기자를 향한 열망 때문이라고 적어도 스스로 최면 걸 수 있다. “글쎄, 내가 이런 제안이 왔는데 꿈을 위해 거절했다니까.” 술자리에서 호기 부리기도 좋다. 그러나 역시 기자가 될 가능성 은 작다. 나보다 똑똑한 장수생이 수두룩하다. 백수 상태가 이어질 경우 정신이 망가질 가능성도 높다. 13개월도 충분히 괴로웠다.
사실 요즘은 공부보다 게임을 더 많이 하는 처지다. 대륙의 전사들을 이끌고 거친 전장을 휩쓸다가 게임에서 빠져나오면, 상식 교재를 펼쳐 든 남루한 백수를 발견한다. 그게 부끄러워 더 게임에 빠져든다. 뉴스에 나오는 현실도피형 게임 중독의 전형이다. 기자 지망생이 1만명이면 매 년 뽑는 기자는 200명 정도. 여차여차 2%의 확률을 뚫는다 쳐도, 중소 매체 기자가 되면 고생길 다시 시작.
B. 병원 행정직을 택한 앞날
누군가의 덕으로 취업했다는 부끄러움이 있겠지만 꽤 안정적인 삶이 시작된다. 무엇보다 마음을 좀먹는 불안을 당장 끝낼 수 있다. 게임도 끊겠지. 병원 일을 하면서 한가한 시간엔 내가 좋아하는 책 읽고, 일년에 한 번쯤 여행도 떠나는 거다. 주말엔 대학원 준비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봐도 난 학업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원에서 내게 어울리는 소탈한 여성분을 만나 함께 오순도순…
‘그래! 결심했어.’ 방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더니 새벽 6시. 두어 시간 더 기다린 후 아버지께 전화했다. “병원 일은 안 할게요. 저 금방 될 거예요. 감사 하다고 전해주세요.”
응? 지금 이 글은 자기계발서인가요? 주어진 상황에 굴하지 않고, 꿈을 좇아 결국 기자가 되었습니다, 라는 따위? 전혀. 나는 백수를 4개월 더하다가 내가 알지도 못하는 매체(난 대학내일을 몰랐다)에 입사했다. 어쩌다가 붙었다. 일하면서 딴 언론사 시험 봐야지 꼼수를 부렸는데, 만사 귀찮아져 쭉 다니게 됐다.
먹고사니즘과 자존감 중간 어디쯤인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답이 없는 문제에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딱 떨어지는 답이 없다는 당연한 진실이다. 먼저 대시했는데 그 사람이 거부해서 지금 관계까지 망치면 어떡하지? 방송국 PD가 되고 싶은데 채용 문턱이 너무 좁아 몇 년씩 준비만 하면 어떡하지? 사랑은 미스매치가 흔하다. 방송국 PD는 정말로 조금 뽑는다. 거기엔 ‘피치 못할’ 리스크가 있다. 그런 데도 우리는 어떻게든 확률을 따지려고 드는 좀팽이다.
그런데 말이다. 좀팽이인 게 당연하다. ‘고시원을 전전하며 연애마저 사치가 된 가난한 청춘’이 횡행하는 세상에 고민 없이 꿈을 좇는 게 비정상이지 않는가? 우리 ‘정상인’들은 부들부들 떨며 계산기로 마지막 장단점 하나 따지기 마련이다. 놀라운 건 우리가 좀팽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불합리한 선택들을 우리가 충동적으로 저지른다는 점이다. 마음 열지 않는 상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1000명 중 한 명꼴인 방송국 PD에 지원하고.
불합리가 이어질 때 세상은 멋진 말로 바꿔 부른다. ‘마음의 소리를 따랐다’라고.
PS 앞으로 ‘노답’ 상황이 잦을 20대 독자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오래 산 게 아니라 저도 잘 모르지만, 뭔가를 선택했을 때 결과가 실패와 성공, 둘 중 하나로 딱 나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더군요. 힘드실 텐데, 답이 없습니다. 고생 많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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