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한다. 슬픈 소식에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펑펑 울다가도, 몇 시간 뒤에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 웃는 나라는 사람.

 

아침에는 내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워서 어깨를 쭉 펴고 문밖으로 나섰지만, 자기 전 침대에선 ‘아까 왜 그랬을까?’라며 소심하게 움츠러들기도 한다. 열 길 물속보다도 어려운 내 마음속.

 

책 『공부할 권리』를 쓴 정여울 작가를 찾아가 우리가 자주 겪는 감정에 관해 물었다. 슬픔, 외로움, 열등감, 자기애…. 내가 지금 이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마음껏 슬퍼할 권리

 

 

책 『공부할 권리』에서 이렇게 쓰셨죠. “현대인은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슬픔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왠지 촌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죠.”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이것은 현대인만의 문제인가요? 과거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나요?

 

농경 사회에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살 수 없었어요. 평생 동안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비슷했죠. 외교관이나 예술가 말고는 외국에 나갈 일도 없었고요.

 

어떤 동네에 태어나느냐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었죠. 이쪽 마을에 가면 정씨만 살고, 저쪽 마을에는 김씨만 사는 집성촌이 대부분이었잖아요.

 

이런 마을에서는 다들 오지랖이 넓을 수밖에 없겠죠. 서로에 관해 다 알고 있으니까요. 모든 것이 오픈된 사회였기 때문에 내면과 행동의 거리가 멀지 않았어요.

 

슬픔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왜 부정적인 일이 되었지요?

 

현대인은 자기 고향을 떠나와서 살아요. 도시가 고향인 사람들은 고향의 노스탤지어를 느끼기가 어렵고요.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철없이 행동하기가 힘들어진 상황이죠.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수백 개에서 수천 개까지 넘어가는데, 진짜로 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잖아요.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막 판단할까 두려워지고요.

 

내 마음이 못났든, 이상하든, 울퉁불퉁하든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요. 자기 자신도 타인의 감정을 받아주지를 못해요. 그러다 보니 외로움은 더욱 가속화되고, 정직한 자기표현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막을 수 없어요.

 

하지만 자기표현에 솔직한 사람들도 많아요.

 

다들 자기표현을 잘 하죠. 하지만 그것은 주로 홍보나 마케팅을 위한 자기표현이에요. 진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일을 위해서, 자기를 PR하기 위해서 진짜 자기 자신은 소외되어 가는데도요. 그래서 현대인이 훨씬 더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책에는 안티고네의 이야기가 나와요. 그녀는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위협 앞에서도 꿋꿋하게 오빠의 장례를 치르며 슬퍼하지요. 슬픔을 마주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은데,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먼저 개인적인 존엄과 사회적인 존엄이 있어요. 개인적인 존엄은, 내가 나의 존엄을 위해서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이에요.

 

얼마 전 학교 앞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어요. 승차 거부를 두 번이나 당하고 나서 다음 택시를 탔더니, 택시 기사님이 “아가씨는 왜 그걸 따지지 않고 가만히 있었느냐”고 묻더라고요.

 

이렇게 잘못된 것을 계속 묵인하기만 한다면, 내 개인적 존엄을 지킬 수 없어요.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존엄도 지킬 수 없지요.

 

사회적 존엄은 내가 당한 일이 아닌데도 내 일처럼 슬퍼하는 것이에요. 얼마전 강남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포스트잇을 붙이며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감수성이 없다면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겠어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려는 마음이 용기의 시작인 것 같아요.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습니다. “모두들 행복할 권리를 말할 때, 안티고네는 불행할 권리를 지키려 합니다.”

 

행복이 마치 사명이 된것만 같은 요즘인데, ‘불행할 권리’라는 말이 낯선 독자가 많을 것 같아요. ‘불행할 권리’란 무엇인가요?

 

슬픔만이 가진 힘이 있어요. 슬플 땐 마음껏 슬퍼하는 게 좋지요. 인간은 결코 쿨한 동물이 아닌데, 쿨한 척하려다 보니까 자기감정을 왜곡해요. 가족이 사라졌는데 빨리 출근해야 하는 일도 생겨나고요.

 

안티고네는 혈통이 좋아요. 공주로 태어나 왕비가 돼요. 이처럼 탄탄대로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도, 목숨을 걸고 오빠의 장례식을 치르죠.

 

왕은 안티고네에게 오빠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명령해요. 반대파를 단속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지요.

 

‘국민이 될래? 인간이 될래?’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기도 해요. 국민이 되는 것은 왕의 말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진짜 인간다운 권리인지를 생각해 봐야 해요.


혼자가 될 권리

 

 

우리에게 외로움은 왠지 부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학창시절 때부터 혼자 있으면 부모님도 걱정하시잖아요. 내 자식이 따돌림 당하거나, 잘 적응하지 못할까봐서요. 왜 외로움은 나쁜 것으로 여겨질까요?

 

외로움은 분명 어느 시대에나 있었어요. 하지만 외로움 앞에서 가장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현대인 같아요. 혼자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성장하는 시간인데도 말이에요.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자유로운 상상도 많이 하고….

 

사실은 혼자 있을 때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연락이 끊어진 친구라든지, 아니면 세상을 떠난 작가들이라든지.

 

지금 내 옆에 있지 않아도 그 사람을 떠올림으로써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정말 소중한 감정이거든요. 혼자 있을 때 다른 사람 눈치안 보고 가장 나다워질 수 있어요.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겠죠?

 

그럼요. 우리는 지금 내 옆의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는 압박을 겪고 있어요. 이것은 ‘사회 인적 자본’이라고 하죠. 인간도 자본으로 보는 거예요.

 

만약 서로가 서로를 자본이라고 생각한다면 관계가 아닌 착취죠. 직위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효율성이나 나이 차를 뛰어넘어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해요.

 

혼자 지낼 때 진짜 꾸밈없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20대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요. 취업이나 대입 시험을 준비하면서, 무언가를 이루기 전까진 일부러 외부와 단절하고, 친구들도 멀리한 채 혼자 보내죠.

 

하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을 통해 더욱 침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달라요. 외로움은 사람이 없어서 느끼는 것이고, 고독은 사람이 옆에 있어도 느끼는 것이에요.

 

외로움은 누군가 같이 함께하면 치유할 수 있어요. 그러나 고독은 누군가가 곁에 있어도 치유가 안 돼요.

 

다만 고독의 장점은 꼭 치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죠. 고독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많으니까요.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더 잘 해내요.

 

고독함은 외부와의 단절과는 다른가요?

 

다르죠. 단절이 꼭 나쁜 건 아닙니다. 저도 글을쓸 때는 전화도 받지 않고 완전히 몰두해요. 자발적인 단절과 창조적인 단절을 꿈꾸면서요.

 

고독은 나쁜 게 아니라 고독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나쁘다고 생각해요.

 

혼자가 되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휴학을 하고도 혼자 있지 않고, 대외활동 등을 하며 미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혼자가 된다는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네. 바로 그 시간이 가장 힘들어요. 저도 그런 시간을 오래 보냈어요. 하지만 단지 일자리를 구하는 데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짬짬이 하면서 절박한 희열을 느꼈어요. 그때의 고독했던 공부의 기억은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24시간 취직 공부만 할 수는 없잖아요. 하루 한두 시간만이라도 나만을 위한 자발적인 고독의 시간을 갖기를 바라요.

 

그때만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죠. 정말로 나중에 일을 시작하게 되면, 창조적인 자기 공부를 할 시간조차 만들기 어려워져요.


콤플렉스와 친해질 권리

 

 

열등감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자신의 열등감을 타인을 괴롭히는 데 이용하는 방식이야말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고 책에 쓰셨어요.

 

열등감은 마치 무기처럼 자신의 마음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찌르지요.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참 멀고도 지난한 길이에요. 그러려면 먼저 스스로의 열등감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걸 인정하기 싫은 거죠.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을 극복하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해소하려고 해요. 스스로의 마음을 비춰볼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제가 그럴 때도 문제지만, 이런 타인을 만날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솔직하게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게 어려울 때에는, 간접적으로 그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쪽에서 불쾌감을 느낀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하는 것이 낫고요. 문제를 일단 인지할 수 있게 표현하는 것이 극복의 시작이니까요.

 

책에서 “콤플렉스는 암세포처럼 도려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평생 살아가야 할 내면의 동반자”라고도 하셨죠.

 

그러나 저는 아직도 제 콤플렉스를 솔직히 드러내는 것에 걱정이 듭니다. 사람들이 얕잡아 볼까봐서요. 제 걱정은 기우인가요?

 

모든 걸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니까 다재다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남들과 나의 것을 비교한다면, 그때부터 불행은 시작된다고 봐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한두 가지만 집중을 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가 아닐까요.

 

저는 강의를 하려고 나갈 때마다 무대 공포증 때문에 열등감을 느낀 적이 많았어요. 지금은 그냥 ‘글을 쓰는 나’에 집중하려 하지요.

 

가뜩이나 글 쓸 시간도 모자라는데 말까지 유창하게 잘하려고 하고 유머 감각까지 키울 힘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 자신의 콤플렉스와 잘 지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나요?

 

욕망의 가짓수를 줄여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학교 강의도 전보다 더 재미있어졌어요.

 

나를 괴롭히지 않고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돼요. 자꾸 욕망을 가지치기해서 욕심의 분야가 늘어나면 도저히 열등감을 피해 갈 수가 없어요.

 

내게 바라는 내 모습을 간결하게 압축해보는 게 어떨까요. 그것만 집중하기에도 사실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거든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을 드러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은 나를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습니다.(웃음)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진짜 문제예요.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 가혹할 때, 타인의 시선을 확대해석하고 피해 망상에 시달리게 되니까요.

 

콤플렉스를 화끈하게 인정하고 나면 의외로 마음이 편해져요. 남들 앞에서 인정하기 어렵다면 그냥 종이 위에 한번 써봐도 좋아요. 휴대폰 메모장이라도 좋고요.

 

내 콤플렉스를 글로 표현하면 그 상처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감이 생겨요. 겨우 이런 걸로 나 자신을 괴롭혔나, 하고 피식 웃을 수도 있게 되고요.


나르시즘을 털어낼 권리

 

 

나를 사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나르시시즘에 빠지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고 책에서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자기애의 극한까지 걸어간 ‘리어 왕’의 사례가 책에 나옵니다.

 

자기애를 풀어 쓰자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일 텐데, 나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자존감과, 나에게 빠져 지내는 자기애는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떻게 다른지요?

 

완전히 다르지는 않아요. 자기애와 자존감의 교집합도 많죠. 자존감은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죠. 자기애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고요.

 

그러니 자기 존중과 자기 사랑의 차이는 무얼까요. 자존감은 위기에 처했을 때 빛을 발해요. 누가 나를 괴롭히고 무시할 때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죠. 용감하게 저항하기도 하고요.

 

자존감과 자기애는 어떤 순간에 차이점을 드러내나요?

 

자기애는 강한데 자존감이 약할 때 가장 큰 문제가 생겨요. 자기를 스스로는 굉장히 아끼는데 남들은 자기를 아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저는 지나친 자기애를 조금 누그러뜨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나를 존중하는 기준으로 나의 능력이나 외모 같은 외적인 요소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우리가 불행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나에게 빠져 지내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나를 존중하는 마음에는 조건이 없어야 해요. 나를 지금의 모습 있는 그대로 최대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죠.

 

자기애는 노력이 필요 없지만 자존감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요. 자기애는 본능이지만 자존감은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겁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보려면 스스로 무엇을 물어봐야 하지요? ‘활발하다’, ‘내향적이다’ 같은 성격 또는 ‘친절하다’거나 ‘무뚝뚝하다’ 같은 태도로만은 알 수 없는 것이 나라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먼저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보세요. 그 사람들과의 부딪힘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서서히 알아가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과의 충돌 속에서 더 나은 내 자신이 만들어집니다.

 

둘째로, 자신에게 과도하게 에너지를 집중하지 마세요. ‘나를 가꾸다’, ‘나에게 투자하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데 길들어 있어요. 스스로 관리의 대상이 되려 하지 말고 창조의 주체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많이 읽고 많이 쓰기를 바라요. 공부할 권리란 이 세상을 내 방식대로 바라보고 사유하고 느낄 수 있는 권리예요.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깊고 아름다운 존재예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저는 저 자신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소중함을 배우고 있어요. 공부할 권리를 지키는 것은, 남들이 명령하거나 권력이 시키는 대로 세상을 보지 않겠다는 결단이에요.

 

나의 시각과 나의 마음, 나의 열정으로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바로 공부할 권리입니다.

 

Illustrator_유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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