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을 시간
+ 앵무새 죽이기

도덕 시간에 선생님이 물었다. “넌 ‘난 사람’이 되고 싶니? ‘된 사람’이 되고 싶니?” 욕망은 복합적이었지만, 『앵무새 죽이기』을 읽었을 땐 후자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판단할 때 남들의 ‘카더라’ 말고 내 눈을 믿는 사람, 어렵더라도 부당한 것에 맞설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강간죄를 뒤집어쓴 톰 로빈슨을 변호한 스카웃의 아버지처럼. 나 역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새 죄 없는 앵무새를 죽이게 되는 건 아닐까? 늘 마음 한구석에 이 질문이 자기 검열 장치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간혹 ‘삐’ 소리를 내며 날 돌아보게 했던 그 장치는 점점 제 기능을 잃고 침묵하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던지는 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대화에 거부감 없이 합류하고, 남의 일에 고민 없이 입방아를 찧어대는 사람이 되어간 것이다. 삶의 질은 악착같이 챙기는 주제에 사람의 질은 이렇게 흐려질 때까지 방치하다니.

 

스무 살 때 끼적였던 『앵무새 죽이기』의 감상평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언제부터 그 바람을 잃어버렸던 걸까? 오늘은 서점에 가야겠다. 다시 내 안에 무언가를 심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으니.

 

Editor 김슬 dew@univ.me


이건 슬픈 자기소개서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예쁜 사람이 좋다. 어릴 때부터 그 정도가 유난히 심했다. 당연히 ‘외모 지상주의’라는 손가락질을 호되게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 마음이 그런 걸 어떡하겠는가.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책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멀쩡한 남자가 엄청나게 못생긴 추녀를 사랑한다.’ 아니, 어떻게 추녀를 사랑할 수 있는 거지! 란 내 마음처럼 주인공도 처음엔 이 사실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마침내 인정하게 된다.

 

흔히 알려진 우화 속 이야기처럼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보는 눈이 생겨 사랑하게 된 게 아니다. 말투, 성격, 콤플렉스, 웃음소리 그리고 외모까지. 한 인간으로서 가진 모든 점을 매력으로 느껴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남자 주인공에 완전히 몰입돼 소설 말미엔 나도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많이 오그라들지만… 주인공과 나는 소설 속에서 함께 성장했다. 사람을 순수하게 사람으로 보고 느끼는 법을 배웠다. 그 어떤 사람과도 진심으로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지금도 여전히 예쁜 사람이 좋다. 좋은 건 좋은 거다.

 

Editor 이민석 min@univ.me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우리들의 이야기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비극으로 아빠를 잃은 소년에게, 세상은 너무나 불가해한 곳이다. 엉망이 된 소년의 마음을 따라 걷는 동안 알았다. 이제껏 나는 상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갑작스런 죽음이 닥친 순간, 못 산 삶에 대한 미련이나 잘못 산 과거에 대한 후회가 아닌, 오직 한 사람에 대한 걱정만이 남을 때. 그 한 사람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때. 그보다 절박한 마음이 있을까. 그러니 먼 길을 돌아 소년은 마침내 알았으리라. 죽은 이의 절박함이, 남은 이를 살게 하기도 한다는 걸. 그러니 지금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빠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라는 것도.

 

소중한 무언가를 잃고서도 우리는 살아간다. 그것은 일찍이 우리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일러준 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 켜진 빛들이 내 안에 아직도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빛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힘껏, 산다. 때로 그것을 누군가의 몫까지 사는 일이라 부르기도 하면서. 받아들이기 힘든 상실 앞에서 삶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 그것을 성장이라 불러야 하는 것은 여전히 아플지라도.

 

Editor 김신지 sirin@univ.me


이 종이책 속에 나의 절친이 있어요
+ 빙점

내 자식을 살해한 원수의 자식을 사랑할 수 있을까? 『빙점』의 줄거리는 김치싸대기, 아니 여느 아침 드라마 못지않다. 배경은 1950년대 일본 홋카이도. 전쟁이 막 끝난 터라 뒤숭숭한 세상이다. 그러나 젊은 병원장 게이조는 남부러울 것이 없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 나쓰에와 귀여운 남매가 있다.

 

하지만 게이조의 병원에 고용된 안과 의사가 나쓰에와 밀회를 나누는 사이, 세 살배기 딸이 살해당한다. 그리고 살인범의 딸 요코가 게이조의 집에 입양되는… 줄거리만 봐서는 이해가 되지를 않는 폭풍 같은 막장 드라마의 서막이 오른다.

 

사실 요코는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해준 소중한 친구였다. 양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못 받아도, 양어머니가 괴롭혀도 요코는 언제나 꿋꿋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내심 ‘요코만큼만 견뎌보자’, ‘요코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나는 지난해 요코의 고향 홋카이도에도 다녀왔다. 삿포로 역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눈 쌓인 들판을 달려, 요코가 다녔던 대학에도 가봤다. 멋진 일이었다. 현실에서 상상 속 친구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은.

 

Editor 조아라 ahrajo@univ.me


잃어버리기 위한 시간
+ 연을 쫓는 아이

한동안 인생은 ‘얻기 위한 시간’인 것처럼 보인다. 일단 태어나면서 이름과 가족을 얻는다. 근육이 단단하게 자리 잡는 동안 여러 번 넘어지며 지혜를 함께 배운다.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중 몇몇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가 된다. 그러나 삶에는 반드시 ‘잃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한 번 잃은 것을 되찾는 것은 대개 불가능하기에 며칠 밤을 자책하고 후회하다 결국은 그런 자신을 받아들인다. 그제야 우리는 한 뼘 자란다. 그래서 모든 성장은 비극이다.

 

주인공 아미르를 낳으며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바바)는 아들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대신 그의 곁에는 항상 하산이 있었다. 하인 신분의 하산은 아미르를 ‘도련님’이라 불렀지만 같은 젖을 먹고 자란 둘은 친구처럼 지냈다. 아미르는 하산에게 책을 읽어 줬고 하산은 아미르의 연을 쫓아 달렸다. 하지만 둘은 1975년 겨울에 일어난 가슴 아픈 일 이후, 서로를 잃게 된다. 아미르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하산은 그런 친구를 그리워하며 성인이 된다.

 

『연을 쫓는 아이』는 비극이다. 그럼에도 읽으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아미르가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 앞에서 예전처럼 망설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다시 한 번 많은 것을 잃지만 덕분에 한 사람의 ‘얻기 위한 시간’이 무사히 시작된다.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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