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을 한달음에 읽어 내린 밤, 악몽을 꾸었다. 나는 소설 속 포식자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것은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제발 맞닥뜨리지 않길 비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몸이 축축 처졌다.

 

그래서 정유정 작가를 만나자마자 따져 물었다. 왜 자꾸 무서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그녀가 되물었다. 그들 말고, 당신 안의 그 어두운 숲을 두려워해본 적이 있느냐고.

 

※ 이 인터뷰는 『종의 기원』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가마다 고유의 인장이 있다면, 작가님 소설에 묻어나는 특징은 ‘어두움’과 ‘하드코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취향상 감동적인 이야기나 위대한 세계관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인간의 본성, 그중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들이 재밌어요. 그런 면들이 삶에 어떤 식으로 엮이고 영향을 끼치는지요.

 

『종의 기원』은 주인공 유진이 사이코패스, 그 중에서도 상위 1% ‘프레데터’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왜 하필 포식자여야 했을 까요? 일반인들에겐 별로 와닿지 않는 인물일 수도 있는데.

그들은 천상에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들 사이에 숨어 있어요. 전체 인구의 2% 정도밖에 안되지만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어마어마하고요.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그냥 “쟤 사이코패스야. 죄책감 없이 죽인대”라고 피상적으로 말할 뿐이지. 어떤 이유로 살인을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은지 모르죠.

 

우리나라에도 점점 사이코패스나 연쇄 살인, 묻지마 범죄가 많아지잖아요. 그런 징후를 읽어 냈을 때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을 이해해보는 시도가요. 면죄부를 주자는 게 아니라 대체 어떤 사고 기제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들여다 보고 싶었어요.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라면, 공포심 같은 걸까요?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 같은 것도 생기죠. 제가 1인칭으로, 유진이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건 단지 얘 안에 이런 감정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얘가 세상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어떻게 사는지,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여주기 위함이었어요.

 

아마 유진이에게 연민을 느끼는 독자들도 계실 거예요. 이 소설은 악인이 세상에 펼쳐놓는 자기 변론이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합리화예요.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인 거죠.

 

사이코패스의 시선으로 서술해서 그런지 남다른 사고방식이 눈에 띄더라고요. 기억을 되찾기 위해 엄마의 목에 칼을 다시 찔러 넣는 장면이 특히 그랬어요.

그 장면을 다섯 번 넘게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어요.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과 윤리를 깨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소설이라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냐? 계속 고민했어요.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넣었어요. 드라마에서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많이 사용하지만, 내면에 대해 완전히 안에서부터 뒤집어 보여준 적은 없잖아요. 그게 저에겐 도전 과제였어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캐릭터들은 무섭지만 굉장히 매력적으로 그려지는데, 왜일까요? 우리 안에 알게 모르게 악에 매료되는 마음이 있는 걸까요? 

예전에 유영철을 추종하는 팬 카페가 생겼던 거 아세요? 그에 대해 알아보고, 그가 쓴 시를 찬양하고….

 

‘악’이란 게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거거든요. 우리에겐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누군가에게 지배 당하고 싶은 욕망도 있어요. 누군가의 ‘것’이고 싶다는.

 

연애할 때 내가 너무 사랑하면 저 사람의 여자 혹은 남자가 되고 싶잖아요. 누군가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거죠.

 

인간은 정말 복잡한 존재네요.

그러니까 문학의 영원한 재료가 되는 거겠죠.(웃음) 인간의 본성엔 밝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정말 많아요. 시기, 질투, 증오, 혐오, 남이 불행할 때 재미있는 마음….

 

저는 우리 모두 타인의 행복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길을 가다 기분이 나빠서 돌멩이를 발로 툭 찼는 데 누군가의 이마를 딱 깼다고 생각해보세요. 근데 그 사람은 다음 날 중요한 면접을 보러 가야 돼. 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거죠.

 

‘악’ 이 대단한 게 아니에요. 인터넷에서 댓글을 툭툭 달잖아요. 자기는 악플이 아니라 노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용의 당사자가 보면 상처 받는단 말이에요.

 

자숙하고 나온 연예인들이 TV에 출연할 때마다 십몇 년 전 일까지 끄집어내서 상기시켜요.  전 그게 굉장히 못된 취미라고 생각해요. 용서하지 않는 사회, 남의 잘못을 잊지 않는 사회.

 

그러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잘 잊어요. 세월호 사건을 보고 지겹다고 하고, 그 부모들을 괴물로 몰고. 그런 걸 볼 때마다 우리 사회가 타인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사회라는 게 느껴지죠.

 

우리 마음속에 어두운 면이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게 중요한 건가요?

맞아요. 우리 안에 남을 기분 나쁘게 하고 싶고, 나보다 잘나가는 놈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싶은 욕구가 있단 걸 인정해야 해요. 인지하고 그걸 제어할 수 있어야만 타인과의 관계를 잘 이룰 수 있고, 내 인생을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어요.

 

우스갯소리 같지만, 대학에서 팀플을 하다 보 면 ‘소시오패스 아냐?’ 싶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소수의 팀원들이 함께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꼭 있거든요. 자기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더 힘들어질 텐데.

일종의 스펙트럼이에요. 흰색부터 검정색까지 있을 때, 완전한 암흑이 사이코패스라고 쳐요. 은색에서 회색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보통 사람이고요. 아주 흰색은 신의 영역이겠죠.

 

그 색들 의 경계에 있는 사람도 있고, 경계를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치우쳐 있는 사람도 있어요. 타인에게 무신경하고 이기적인 성격은 까만쪽으로 더 치우쳐 있다고 보면 되겠죠.

 

반대로 너무 흰색에 가까운 사람들은 생존 능력이 없어요. 너무 착하고 다 퍼주고 이해하면, 난 언제 살아요. 잡아먹히기 딱 좋은 사람이죠.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이 들면, 중간 정도로 가게끔 노력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최소한 나는 지키고 살아야 하잖아요.

 

예전에 룸메이트와 사이가 많이 안 좋았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너무 미워서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충격적이고 무서웠어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쟤가 나한테 해를 끼치면 나도 똑같이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정상이죠.

 

전 직장 생활을 14년 했는데, 들들 볶는 상사를 보면서 별생각을 다 해봤어요. 화장실 끌고 가서 한 대 패주고 싶고, 너무 화가 나면 진짜 목이라도 졸라버리고 싶고.

 

그런데 실행하진 않잖아요. 상상 속에서나 하지. 참고, 삭이고. 생각까지는 건강한 거라고 봐요. 그런 생각조차 못 한다면 오히려 문제죠.

 

경계 해야 할 건 분노가 불건강한 방법으로 표출되는 거예요. 익명 뒤에 숨어서 남에게 돌멩이 던지는 식으로요.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무섭다고 거부할 게 아니라 본인이 인식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주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술을 한잔한다든지, 야구를 보면서 소리를 지른다든지… 스스로 스트레스 푸는 법 을 연구하면서요.

 

그런데 주위를 보면 스스로의 마음을 풀어줄 줄 알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 능한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면도 있죠. 너무 고도성장을 하다 보니 까 먹고사는 문제 외에는 고민해볼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맨날 공부만 하라고 하고, 자기계발서만 보고.

 

그런 면에서 문학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다양한 인생이나 세계, 어떤 삶의 문제를 접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를 갖는 것.

 

수많은 인생을 살아보는 거예요. 안전거리를 두고. 우리가 아무리 유진이가 무서워도 걔는 소설 속에 있지, 튀어나와서 날 어떻게 할 순 없잖아 요. 내 몸은 안전한 곳에 두면서 불편한 것들 을 경험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다 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도 커지고 자아가 튼튼해져요.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상처 받을 거란 걸 알게 돼요.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의 옳음만 가지고 가면 편협한 인간이 돼요.

 

작가님의 소설이 그런 ‘불편함’을 담당하고 있는 거네요.(웃음)

가끔 제 소설이 힘들고 불편해서 보기 싫다고 하는 독자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인생에는 결코 행복한 부분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둡고 힘든 부분이 분명 있는데 그걸 외면해 버리면 절반밖에 못 보는 거예요. 두 개를 온전히 다 봐야만 삶을 성숙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작가님은 마음에 어둠이 스밀 때, 어떻게 하시나요? 특히 소설 쓸 때 멘탈 관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굉장히 격렬한 운동을 해요. 예전엔 복싱, 달 리기, 헬스를 했는데 3년 전부터 수영을 시작했어요. 유진이가 왜 그렇게 물을 사랑하는지, 물이 어떤 감촉인지 알고 싶어서 배우게 됐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너무 힘든 날엔 수영장을 40바퀴 돌기도 해요. 몸을 혹사시키면 사람이 좀 개운해지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체력이 없으면 소설을 쓸 수가 없어요. 다 제가 살려고 하는 거죠.(웃음)

 

Photographer 박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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