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단어 선택이 쉽지 않다. 독서량의 부족으로 아는 단어의 범위가 제한적이다. 기억력의 감퇴로 알던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자신감이 지나쳐 잘 모르는 단어도 안다고 믿는다. 모르는 건 부끄럽지 않은데 아는 척하다가 틀리면 매우 부끄럽다.
그래서 난 포털 사전을 이용한다. 습관처럼 쓰던 단어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뜻이 숨어 있다. 비 오는 날 들으면 마음이 보송보송해지는 음악을 고르기 위해 ‘보송보송하다’를 검색! (1)살결이나 얼굴이 곱다, (2)잘 말라서 물기가 없고 보드랍다, (3)솜털처럼 매우 작고 부드러운 것이 돋아 있는 상태, (4)잠이 안 와 눈이 맑고 또렷또렷하다.
기본적으로 가사와 멜로디가 예쁘고(곱고), 목소리는 담백하되 메마르지 않고(물기가 없고), 감성이 새싹처럼 자라되 오그라들지 않고(부드러운 것이 돋아 있는), 반복해 듣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올 정도로 몰입하게 만드는(잠이 안 와 눈이 맑고) 노래.
검정치마의 ‘EVERYTHING’ 당첨! 비 오는 날, 거리는 흠뻑 젖지만 방 안의 마음은 더욱 ‘보송보송’해진다. ‘내 모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과 방에 누워 ‘발칙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사전적 의미 따위 더는 중요하지 않겠지.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무슨 신발을 신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몸과 기분은 한없이 쳐진다. 심지어 한 달 전엔 비 오는 날 6중 교통사고에도 휘말렸다.
그래도 하늘이 뿌리는 비를 어찌 내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내리면 그저 현명하게 대처하는 수밖에.
여분의 양말 챙기기, 왁스 조금만 바르기(습하면 쉽게 떡진다) 등 여러 대처법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빼놓지 않는 건 에픽하이의 ‘우산’을 듣는 것.
외출할 때 우산을 펴기 전 이어폰을 끼고 살포시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재생과 동시에 나오는 윤하의 목소리는 자칫 쳐질 수 있는 우울한 기분을 차분한 마음으로 승화시켜준다.
반복 재생으로 5~6번 연속으로 노래를 듣다보면 어느새 쳐졌던 기분은 온데 간데 사라진다. 오히려 비가 와 감성에 젖어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어 감사하단 생각까지 하게 된다.(굉장히 중2스러운 문장이군)
아마 곧 다가올 장마철이 되면 이 노래를 뻔질나게 듣게 되겠지. 그래도 비가 와 마음이 보송해지는 것보단, 아예 비가 안 오는 편이 나을 듯 하다….^^
Editor 이민석 min@univ.me
똑, 똑, 똑. 빗소리가 떨어진다. 건반 위에. 흥겨운 멜로디의 스타카토 뒤엔 고백이 쓱 치고 들어온다. “우리 손잡고 이 길을 걸으면 아무 것도 안 들려요.”
짧은 주말이 끝나가는 시간, 두 사람이 달 밑에서 춤을 춘다. 손을 잡고 폴짝 뛴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쉴 새 없이 흩날린다. 한 연인의 깨가 쏟아지는 ‘달밤댄싱’을 몰래 훔쳐 들으며 나는 우산을 고쳐 든다. 여자의 사랑 노래가 잠깐 멈출 때마다 빗소리가 끼어들어 건반을 누른다. 비의 합주에 화답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까딱까딱.
그 순간, 우산 밑으로 손 하나가 불쑥 들어온다. “많이 기다렸어?” 나는 이어폰을 빼 가방에 넣는다. 이제 내가 춤을 출 차례다. 축축한 공기와 미끄러운 거리 따위 문제없다. 한쪽 어깨가 젖어도 잡은 손은 놓지 않을 거고, 비가 우리의 콧노래를 그치게 할 순 없을 테니까.
Editor 김슬 dew@univ.me
어두컴컴한 밤이 좋다. 전깃불도 가로등도 없는 곳이면 더더욱. 두 달 전 얻은 6평짜리 내 방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서 온전히어둠을 즐길 수 있으니까.
이 방의 가장 큰 장점은 남쪽으로 뚫린 시원한 창 4개. 비 오는 날 창문을 열어놓으면 가지각색의 빗방울 소리가 스테레오로 울려 퍼진다. 사선으로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그러니까 솔직히 어둠이 무섭진 않지.
그런데 그런 날은 있다. 무서운 척하고 싶은 날. 내가 왜 그랬나 싶었는데 10cm 노래를 듣다 보면 왜 그랬나 알게 된다. “오늘밤은 혼자 있기가 무서워요. 저기 작은 방에 무언가 있는 것 같아. 잠깐만요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냐. 잠들 때까지 집에 가지 말아줘요.”
천둥번개 치는 날 벌레 잡아줄 사람이 있다면 비 오는 날 눅눅함은 잊어버릴 듯. 아니면 그런 사람쯤 없으면 어때. 이 노래가 있잖아.
Editor 조아라 ahrajo@univ.com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아볼래?’란 물음은 사실 협박에 가깝다. 난 이 무시무시한 말을 참 많이도 듣고 자랐다. 그것도 엄마한테.
어릴 땐 내가 조금만 까불어도 엄마는 참지 않았다. 기어코 내 입에서 잘못했단 말이 나올 때까지 잔소리를 멈추는 법이 없었다. 그땐 제발 멈췄으면 싶었던 그 잔소리들이 왜 이 나이가 되어서 자꾸만 생각나는 걸까.
역시 잔소리 클리셰가 나에게도 일어난 건가. 이런 진부한 감정은 비 오는 날 눅눅한 원룸에서 청승맞게 라면이나 먹을 때 더 커진다. “왜 이런 걸 먹어!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지!”
엄마의 호통 소리가 유난히 그리운 날. 그럴 땐 이상하게 이 노래가 생각난다. 영화 <스텝업 4>의 주제곡이기도 했는데, 가사가 참 슬프다.
“And now, it’s time to leave and turn to dust.” 사랑한 사람이 떠난 집에 홀로 남겨진 고독이 흐르는 곡이다. ‘나도 한때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았었는데….’
생각하다 보면 축축해진 마음에 폭우가 내린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노래가 멈추면 마음에 내리던 비도 함께 멈춘다. 비 온 뒤의 맑은 하늘처럼 마음도 개는 기분.
먼지가 되어버린 노래 속 주인공이 내 마음의 먼지도 다 가져간 걸까? 젖은 마음이 다 마르면, 전화기를 들고 말해야지. “엄마, 엄마!”
Intern 이유라 ura@univ.me
Editor in chief 전아론 aron@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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