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이 늘어간다. 식당 메뉴판이나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도, 휴학 후의 계획과 일정을 정하면서도. 돈이든 진로든, 모든 상황과 조건에서 선뜻, 보다는 자꾸만 머뭇, 이 앞선다.

 

사는 게 힘이 든다.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쉽지 않아서 공기는 텁텁하기만하고, 침을 삼킬수록 나는 초라한 존재가 된다.

 

어린 게 뭐 벌써 그러냐, 아빠는 생각하겠지만. 하지만 아빠, 그 어린것이 벌써 그렇게 아파하고 행복해하고 울고 웃으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살아내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아빠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별로 닮지도 않은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면, 그러고 보니 아빠도 쉬이 앞장서지 못하고 주변을 한참 서성거렸구나, 아빠도 나처럼 많이 흔들렸구나, 문득 기억이 나서.

 

수십년 세월 동안 아빠가 이룩해온 빛의 세계와, 미처 성취하지 못한 그림자의 세계. 사실 빛인지 그림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빛이든 그림자든 모두 아빠의 것이니까. 어떤 동기와 과정과 결과를 가졌든 결국은 아빠의 흔적을 구성하는 것들이니까.

 

중요한 건 아빠가 걸어온 길, 그 자체다. 그래서 고백한다. 그 모든 아빠의 세계를 나는 존경한다. 당신이 지금까지 온몸과 마음으로 끝끝내 버텨 온 시간을, 아들은 진심으로 존경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빠의 삶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완전한 동의도 드릴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타인의 삶을 다 이해한다, 공감 한다 확신하는 사람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그가 겪은 시대와, 존재의 고민과, 그로 인한 삶의 무게 같은 것들을 감히 내가 헤아리고 거기에 동참할 수 있다고?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그건 이해나 공감이 아니잖아. 어쭙잖은 위로를 가장한 오만한 판단과 단정이지.

 

아빠는 위대하고 훌륭한 위인으로 나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회자될 것이다. 당신의 존재와 삶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존경하는 세계 속에서.

 

아빠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 공평과 정의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서. 원칙과 상식이 무너지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흐려지는 시대를 아빠는 분노했고 슬퍼했다.

 

아빠는 스스로에게 자랑스럽고 당당한 국가를, 나를 비롯한 미래 세대에게는 창피하지 않은 사회를 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선거에서 낙선하고 또 낙선 했다. 세상은 아빠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푼 기대로 그려왔던 길은 실패했다.

 

때문에 우리 집은 힘들었다. 다들 많이 아팠다. 가끔은 원망도 했었지. 짧지 않은 시간을 힘겹게 살아온 이에게 그저 이해해보라는 말은, 다른 어떤 말보다 잔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리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인정하는 것. 아빠가 의지와 선택에 따라 걸어온 길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아빠는 견뎌냈으니까. 아빠 때문에 아프고 힘들기도 했지만, 아빠는 그 먼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으니, 자기 자신과 가족을 기어이 지켜냈으니, 이쯤은 참을 수 있다. 아주 자랑스럽게 말이다.

 

모든 이유와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고 그 마음에 온전히 동감할 수 없어도,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받고 존중 받을 만한 자격과 가치가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뒀는지 여부나 타인의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세상의 기준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아빠가 스스로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지나온 시간들이라면 그걸로 된 거다.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가고 등허리는 점차 굽어 갔지만, 아빠는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나는 고백하고 싶었다. 아빠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고 분석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아빠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 들어차는 감정을 뱉어내고 싶었다. 당신을 인정한다고. 미완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아빠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단단한 사람이다. 그의 처진 어깨와 움푹 팬 주름을 보는 내 눈가를 뜨겁게 만드는 건, 이해나 공감이 아니라 인정과 존중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이루는 존경일 것이다.

 

역사 속에 아빠의 이름은 없다. 세상이 기억하고 말하는 역사 속에 당신의 자리는 희미하기만 하다. 대신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당신 이름 석 자를 써두었다.

 

아빠는 위대하고 훌륭한 위인으로 나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회자될 것이다. 당신의 존재와 삶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존경하는 세계 속에서.

 

그러니까 아빠는 그냥 걸어가면 된다. 나는 옆에서 응원해야지. 당신을 바라보며 응원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 온갖 애를 써야지. 나 역시 나의 길을 나만의 걸음으로 걸어가면서 말이다. 우리의 그 작고 느린 걸음들을 나는 있는 힘껏 사랑한다.

 

Freelancer_김정현 jhjm5631@hanmail.net

Illustrator_전하은


Who

+김정현은?

별일 다 벌어지는 세상에서 참 별일 없이 삽니다. 그래도 아름답고 싶어요. 아름다움에 가려진 그늘을 늘 떠올리고 떠올리면서.

 

20대라면 누구나, 칼럼 기고나 문의는 ahrajo@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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