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에 부러웠던 사람은 수능만점자였다. 지금은 자기 길을 일찍 알고 묵묵히 걷는 사람이 더 부러운데, 김인엽이 그중 하나다. 독립출판물『신도시』 시리즈, ‘혁오’, ‘장기하와 얼굴들’과의 협업, 곧 나올 단행본『두경』까지 그의 커리어는 성실하고 탄탄하다.

 

한편 개인계정에 올라오는 만화 속 그는 과연 이 길이 맞느냐고 끊임 없이 묻는다.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성실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했다.

 

본인의 4컷 만화를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kiminyup)엔 어느덧 3만 9000명이 넘는 팔로워가 생겼어요. 이걸 언제부터, 왜 올리기 시작했나요?
원래 SNS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같은 크루의 이일주란 친구가 한 번 해보라고 해서 시작했어요. 이제 2년 정도 됐네요. 4컷인 이유는 인스타그램 업로드용이라서요. 당시엔 정방형 이미지만 올라갔거든요. 원래 6컷 만화를 그렸어요.

 

계기가 생각보다 단순하네요.
원래 계산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에요. 하하.

 

그 만화의 주인공도 ‘김인엽’이에요. 걔가 실제의 인엽님과 똑같을 필욘 없지만 둘의 느낌이 꽤 달라요. 걘 끊임없이 남에게 “난 글러먹은 놈이지 않을까?” 묻는데, 현실의 인엽님은 묵묵하고 성실해 보여서요.
요즘은 좀 안 성실하긴 한데…. 저희 또래 중엔 고시하는 애들도 많잖아요. 그 친구들의 공부랑, 내가 만화 그리는 거랑 똑같단 생각을 하려고 엄청 노력해요.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마냥 놀거나 자유롭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성실해야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성실해져요.

 

의심은 이런 성실함의 적이고요.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지잖아요. 하지만 또 자신에 대한 고민을 제 안에서 하다 보면 의심은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죠.

 

자신에 대한 고민이라…. 독서가 취미시죠. 군대에서 200권 정도의 책을 읽었는데, 다 비슷한 말을 하는 것 같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고전을 읽다가 창작자의 고뇌나 욕구는 대부분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들도 다 자기에 대해서 엄청난 고민을 했구나.

 

물론 이들의 결과물은 아주 뛰어나지만, 나와 똑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짧은 시간에 다독을 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읽었을 수도 있지만요. 하하하.

 

다시 만화 얘기로 돌아가면, 만화 속 김인엽은 일부러 애처럼 행동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원래 제가 상상초월할 정도로 애 같은 면이 있어요. 아닌 면도 물론 있지만. 아직은 고민의 과정에 있으니까 그런 모습도 나와요.

 

아무래도 이건, 어릴 때부터 열심히 살고 싶어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좀 있던 사람이라 그런 것 같아요. 애 같은 캐릭터가 그리기도 더 편하고.

 

“한평생 나로만 살아야 한다니 지루하다”란 말도 만화에 나오잖아요. 물론 매일 보는 난 똑같죠. 하지만 10대 때 산본에 살던 김인엽과 지금 김인엽은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맞아요, 많이 달라요.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의 김인엽은 지금과는 좀 다른 사람이었어요. 학교에선 활발하고 남자답고, 집에선 온전히 혼자만의 세계에서 푹 빠져 살았죠. 그걸 완벽하게 숨겼어요. 지금은 그것보다 더 어릴 때의 김인엽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자전적인 『신도시』도 몇 권 그리셨잖아요. 이제 자신의 이야기는 정리가 된 건가요?
정리가 다 됐다기보단 여기까진 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할 수 없는 얘기 말고는 이미 다 했다고 생각해요.

 

제 얘기를 아주 나중엔 다시 하겠지만, 만화가로서의 다음 단계를 위해선 저랑 떨어져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7월에 나올 『두경』이 인상적이었어요. 한 여자의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연애사를 다뤘잖아요. 물론 인엽님이 만든 거긴 하지만, 다른 입으로 하는 얘기니까.
사실 완전히 제게서 벗어났다곤 할 수 없는 게, 두경이는 제가 만났던 여성분들의 모습을 갖고 있고, 두경이가 만나는 남자들의 모습에도 제 모습이 많이 섞여 있어요. 그때 왜 그랬을까, 반성도 많이 했어요….

 

한편, 남자 작가가 여자인 척하며 만화를 그려낸 거로 보일까 봐 조심스러웠어요. 사실 저도 27년을 한국에서만 산 남자인데, 여성을 대변해야 하는 부분을 그릴 때 거짓말을 하게 될까 봐 고민이 많았거든요. 떳떳하기 위해 그런 부분은 덜어냈어요.

 

경제학과를 다니다 미대로 가셨잖아요. 뭘 결정하면 뒤를 안 돌아보는 편인가요?
저요? 엄청 뒤돌아봐요. 하하. 작년에도 공무원 준비를 할까 싶었고, 여전히 고민 중이에요. 그땐 학교가 재미없고 답답한 느낌이 커서 그만뒀어요. 새로 간 학교는 재밌었어요.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성실하시네요.
성실한 제가 우리 편이고 의심하는 전 적이에요, 적. 근데 그걸 극복할 길은 결국 성실함뿐이더라고요.

 

창작자라면 알겠지만, 우울하거나 다 때려치우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요. 좋지 않은 결과라도, 일단 결과가 나와야 다음 걸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더라고요.

 

영감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서 참 좋네요.
좋은 동시에 슬프단 생각도 들어요. 스스로 채찍질을 하니까 힘들고 피곤하죠. 주변 사람들도 피곤하고. 여자친구에게 미안합니다…. 잘 해야지.

 

마지막으로, 당연한 질문이에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성실하게 작업하실 거죠?
그럴 것 같아요. 한국에선 쉽지 않은 일일 것 같긴 하지만. 모든 걸 빨리 원하고 좀 보여줘야 하는 것도 있잖아요.

 

아마 1년만 안 해도 아무도 절 기억 못 할지도 몰라요. 연연하지 않을 순 없지만 안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열기는 좀 떨어져도 상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못해서 아무것도 안 좋아하면 문제겠지만. 하하.

 

Photographer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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