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아무도 없는 산속에 틀어박혀 캠핑을 해보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게 왜 그러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을 딱히 찾지 못할 것이다. 어릴 때는 걸스카우트도 해양소년단도 아람단도 아니었다. 학교 운동장 끄트머리에 텐트를 쳐본 적도 없고, 지금도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레토르트 소스를 부어 먹는 파스타뿐.

 

마지막 캠핑은 유치원 졸업 기념 소풍이었다.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사진이 남아 있다. 7살짜리 여자애는 치어리더 술로 만든 인디언 치마를 입고, 모닥불 주위를 뱅뱅 돌고 있었다.

 

 

마지막 캠핑 후 약 20년 만에, 혼자 캠핑을 떠나기로 했다. 사실 지금 캠핑을 떠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캠핑이라니, 생각만으로도 귀찮은 일 아닌가. 끙끙거리며 텐트를 치고 가스 버너를 켜고 코펠을 올려야 한다. 물을 붓고 면을 삶고 배를 채우고 나서도 할 일이 없어지면 텐트에 벌러덩 드러눕겠지. 그런 것쯤은 굳이 캠핑이 아니어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물건들을 모두 가방에 지고 움직여야 한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사진이 떠오른다. 이불에 폭 싸인 강아지, 말풍선 속 대사는 “이불 밖은 위험해!”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픽 쓰러지면서 “집 떠나면 고생이야, 맞지?”라고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차도 식당도 카페도 없는 곳에서 혼자가 되고 싶었다.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쓰러져 몸을 파묻는 밤이 아니면, 혼자가 되는 시간은 거의 없다. 날 선 사람들로 꽉 찬 아침 지하철을 잊고 싶었다. 컴퓨터 앞에서 표정 없이 일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싫었다. 나는 혼자서 상상하기를 좋아하던 꼬맹이였다.

 

큰 소리로 만화책 주인공들의 대사를 읊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한 나의 모습은 외면하고 살아온 것만 같았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남에게 하는 만큼의 절반이라도 나에게 잘해줬더라면.

 

짐을 꾸렸다. 장소는 경기도 가평 유명산 자연휴양림. 물론 눈이 튀어나올 만큼 아름다운 캠핑 장소는 많다. 하지만 캠핑에서 자연경관과 안전함은 반비례한다고 한다. 나는 텐트 한번 쳐본 적 없는 캠핑 초보자니까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먼저 인디언 텐트와 침낭 그리고 코펠과 휴대용 버너를 가방에 넣었다. 랜턴과 야외용 의자, 책과 맥주도 챙겼다. 아직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팔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욕심부렸나? 맥주와 간식은 빼기가 어려운데.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쨌든 출발이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쯤 달리면 창밖 풍경이 달라진다. 아파트에서 숲으로, 도로에서 강으로, 잿빛에서 녹색으로.

 

 

표지판보다도, 산새 소리로 도착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았다. 엄지손가락 2개 굵기만 한 쇠기둥 4개에 텐트를 연결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망치질을 하며 텐트를 고정시켰다. 내가 만든 집이라니 신기했다. 그리고 내 몸이 생각보다는 쓸모가 있다는 사실도.

 

 

오래 걸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몸을 움직이면 얼마나 움직였다고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텐트에 누워 위를 올려다봤다. 위가 뾰족한 울긋불긋한 인디언 텐트 때문인가, 나무기둥 위에 오두막을 짓고 부모님 눈을 피해 놀러 온 아이가 된 것 같았다.

 

 

텐트의 열린 문 위로 나뭇가지와 하늘이 보였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진짜로 혼자다. 그라운드 체어를 계곡 쪽에 펼쳤다. 개울 사이에 맥주 두 병을 넣어둔 채, 느긋한 마음 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좋거나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원하다는 것 말고는 어떤 느낌도 없었다.

 

도시에선 가끔씩은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 느낌은 나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넘어지면 뒤처지는 레이스라는 무서운 생각이 떠오른 적도 있다.

 

 

하지만 텐트 안에선, 풀 위의 의자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수영하는 아이들을 구경하거나, 구름을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은 날이었다.

 

 

텐트를 친 것 말고는 한 게 없었는데도 허기가 밀려왔다. 레토르트 파스타와 빵과 맥주로 저녁을 차렸다. 몸을 쓴 뒤에 먹는 음식은 어떤 것이든 맛있다. 혼자가 된 기분이 처음은 아니다. 사막을 여행했을 때, 눈앞에는 모래와 하늘밖에 없었다. 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너는 이런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도 재단하지도 않는 거대한 자연이 내 뒤에 있었다.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기분 좋은 고독감. 사람이 그리워서 미칠 것 같은 외로움과는 달랐다.

 

한숨 자다가 깨니 밖은 어둑어둑했다. 텐트 밖으로 난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주 고요해서 귀를 기울이면 개미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 문득 올려다본 깜깜한 하늘에는 별이 모래알처럼 널려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밤하늘을 둥근 천장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하늘 천장에 구멍을 송송 뚫어놓았고, 바깥에서 쏟아지는 빛이 그 틈새로 들어온 것이 별이라고.

 

밤하늘에 관해서는 옛사람들보다 무지한 나는, 핸드폰을 꺼내 별자리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부엌에 대롱대롱 걸려 있을 법한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서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직녀성, 그리고 처녀자리를 찾았다. 별에 관한 천진한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알퐁스 도데의 『별』 같은.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이상적인 공동체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과 함께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홀로 떨어져있기를 선택한 개인들의 느슨하고 유동적인 모임”이라고. 내가 만났던 어느 미술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사업가는 사업가로, 한량은 한량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좋은 세상 아닐까요?”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를 잊고 지냈던 나를 위해 편지지를 꺼냈다. “별 보기랑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수고했어.” 편지를 쓰다가 잠들었다. 계곡 물 소리는 밤에도 멈추지 않았다. 새소리 덕분에 아침이 온 줄을 알았다. 나와 가까워진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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