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 스무 살 무렵부터 4년 남짓 살았던 동네에 갔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서울에 올라온 열아홉의 가을부터 스물세 살의 여름까지 살았던 동네. 버스를 타고 많이도 변한 동네를 지나치는데, 너무 많은 기억들이 일시에 떠올랐다 차창 뒤로 흘러갔다. 그립기도 하고, 전혀 그립지 않기도 하며,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기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한 번에 밀려와 이내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고작 열아홉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보는 일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는 나이. 학창 시절이 전부였던 이제까지는 다만 어떤 ‘준비 기간’이었고, 내가 기대한 진짜 인생이란 스무 살 이후부터 펼쳐질 것 같았다.
부모님 집을 떠나 처음으로 독립이란 걸 하게 되었고, 낯선 여행지처럼 도착한 서울은 걸어도 걸어도 궁금한 곳이 더 많은 미지의 도시였다. 아,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다 가보게 되겠지. 이곳에서 멋진 추억들을 만들며, 멋진 연애를 하고, 멋진 어른이 되는 것으로 내 20대를 보내게 되겠지. 그렇게만 믿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기다렸던 스무 살의 나날은 장밋빛은커녕 얼룩덜룩하기만 했다. 주량도 잘 모른 채 무턱대고 술을 마시고, 마음 붙일 데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새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려 애쓰다 보니 짧은 봄이 다 가버렸다.
그러자, 제 차례를 기다린 것처럼 우울이 밀려왔다. 그때의 나는 대체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에, 이리저리 쿵쿵 부딪치고 나서야 여기가 길이 아니라 벽이라는 걸 깨닫는 수준이었다.
내겐 없는 것을 남에게서 찾아내며 열등감에 시달렸고, 좋아하는 마음과 그저 기대고 싶은 마음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해야 할 말을 제때 하지 못해 일을 더 꼬이게 만들기도 했다. 그 모든 실수와 우울과 지질함의 기억이 그 동네의 골목골목에, 울적한 밤이면 친구와 접선하던 개천 산책로에, 제일 늦게 문을 닫던 슈퍼 앞에, 구 남친과 울며불며 드라마를 찍고 앉았던 가로등 아래에 뿌려져 있었다.
그러니 내가 그 시절을 살았던 동네를 좀처럼 다시 찾지 않은 것은, 들여다보고 싶은 추억보다 그저 덮어두고 싶은 후회가 더 많았기 때문이리라. 내 잘못으로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 동네엔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예전의 내가 너무 많이 묻어 있었다.
(다행인지) 나만 그런 건 아니어서, 가끔 친구들을 만나 지난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서로의 흑역사가 엉킨 빨래처럼 줄줄이 딸려 나온다. 그때부턴 저마다의 놀릴 만한 역사가 안주거리가 된다. 이십 대 초반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라는 건, 서로의 치명적인 흑역사를 너무 많이 공유하고 있는 사이다. 그 무렵엔 누구 하나 나은것 없이 못났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린 뭘 잘 몰라서, 치기만 넘쳐서, 진심이면 다 되는 줄 알아서, 걸핏하면 오해해서, 하나도 안 멋있는데 멋있는 줄 알거나 하나도 안 괜찮으면서 괜찮은 척하느라—그 밖에도 말도 안 되는 숱한 이유들로—될 일도 망쳐놓기 일쑤였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굴욕적인 이별이 있는가 하면, 친구들한테 지금까지도 사람대접 못받는 나쁜 이별도 있으며, 만취 상태에서 보여준 추태는 어떻게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게다가 더 슬픈 것은, 이런 자리에서 농담으로 결코 말할 수 없는 진짜 흑역사는 각자의 마음속에만 남아 있다는 사실….
그러고 보면 지나간 시절이란 건, 밤새 쓴 편지 같다. 분명 온 마음을 다해서 써내려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단어들만 골라 쓴 편지였는데도 다음 날 보면 볼이 확확 달아올라 찢어버리고 싶어지는. 그 시절 나의 마음이, 나의 최선이 나중에 보니 그랬다.
중요한 것은, ‘나중에 보니’ 그렇더라는 것이다. 어느 시기가 지나야만, 우리는 과거의 나를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누구에게나 있을, ‘그땐 내가 정말 왜 그랬지’ 싶어지는 기억들. 그것은 곧 지금은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안다는 것이고, 지금의 나에게 과거의 내가 저지른 과오를, 서투름을, 비겁함을 알아볼 눈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과거를 돌아보며 부끄러워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뒤집어 보면 그것은 그 시절로부터 우리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이다. 현명해지는 순간 과거의 나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질함이 지질함인 줄도, 비겁함이 비겁함인 줄도 알아보게 되었고, 나 자신을 훼손하지 않는 더 나은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게 되었다.
실수와 후회로부터 매번 배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며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그러니 거칠게 말하자면, 지금의 우리는 후회로 빚어진 인간들이다. 그 모든 실수와 후회들이 우리를 우리이게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스러워진다. 스무 살의 나를 부끄러워하는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기에.
그동안 인터뷰이로 만난 소설가들이나 영화감독들이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해줄 때도 있었다. 지금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초기 작품들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은 선선히 인정하며 말하곤 했다. 그 작품은 지금 보면 부족함이 너무 많이 보여 부끄럽다고. 하지만 그것은 또한 내 작품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뜻이므로, 다행이기도 하다고. 그렇게 말했던 이들은 모두, 이 세상에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보태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우리의 스무 살도 그렇게 여기면 어떨까? 그 시절은, 지금 와서 보면 의욕만 넘쳤을뿐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초기작 같은 거라고. 그때는 누가 말해줘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저절로 보이는 걸 보니, 그사이에 나도 한뼘 정도는 성장했나 보다고.
물론 과거를 부끄러워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 성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은 한가지가 더 필요하다. 과거의 그 못난 나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 그 시절의 내가 고군분투한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낯부끄러운 초기작이라고 해서 내 작품
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그 못나고 지질했던 것이 스무 살의 나였다. 생각해보면, ‘충분히 현명한’ 스무 살이란 게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우리는 단지 충분히 서툴렀고, 그 서투름으로 상처 주고 상처 받았으며, 그 상처가 아무는 동안 고유한 흉터를 지닌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내가 나답다는 것은 결국 구별되는 그 흔적을 말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흑역사 앞에 자주 부끄러워지는 나에게 쿨하게 말해주어야지. 알면 됐어. 그게 너야. 그래도— 부끄러워서 다행이다. 지나간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어서. 삶은 여전히 기대대로 되지 않을 테지만, 내가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것만은 기대해볼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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