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면 큰 강이 흐르던 첫 번째 방

두 달간 잠시 집을 떠나는 여정이었지만, 배낭 안에 넣을 짐이 그렇게 적을 줄은 몰랐다. 자주 입던 옷들과 속옷, 양말, 칫솔과 충전기까지 넣고 났더니 나머지 물건들은 대부분 내 것이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이 그동안 집에 묻혀 왔던 흔적들만 보일 듯 말 듯 남아 있었는데, 배낭을 메고 나니 그것마저도 이제 지워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스무 해 동안 내린 뿌리가 이토록 가늘다니, 신기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이 반씩 들었다. ‘이 방에서 나가는구나.’ 단지 두 달을 기약하고 집을 나서는 길이었는데도, 어렴풋한 그 기분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 배낭은 대학에 입학한 해, 여름방학을 강원도에서 보내기 위한 준비물이었다.’

큰 강이 있던 곳, 영월. 나는 거기서 그해 여름이 끝날 때까지 래프팅 가이드 일을 했다. 고무보트에 사람들을 태운 다음, 강을 따라 안전하게 내려오는 일. 막상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때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보다 내가 지내던 공간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함께 간 친구와 나는 작은 컨테이너 안에 짐을 풀고 지냈는데, 얇은 이불 말고 아무것도 없던 그 공간에 우리 둘의 생활이 담기면서부터는 ‘방’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되었다.

 

그리고 방문을 열면 보이던 마당, 길 건너의 큰 강, 주변의 시골집들과 밤마다 지붕 위에 펼쳐지는 별들이 내가 누운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인 6월까진 영락없는 시골 마을이어서, 슬리퍼를 끌고 나가 강을 구경하는 게 반복되는 일과의 전부였다. 그때 가지고 있던 일기장에는 글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이 어설픈 그림으로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처음 여행한 곳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 장소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려고 할 때마다 등장하는 이런 식의 질문들에 나는 언제나 ‘영월’이라고 간단히 적는다. 기억해내기 쉽게 같은 답을 반복한다는 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정말이지 그곳을 고향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보면 어떨까.’ 스무 살의 여름이 끝난 이후에도 다시 여름이 찾아올 때면 나는 영월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한다.

 

화분과 고양이와 함께 살았던 두 번째 방

두 번째 ‘방’을 갖게 된 건 20대가 끝날 무렵이었다. 서울에 직장을 구하면서 또 한 번 짐을 리게 된 것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물건들은 파란 배낭 안에 다 넣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기타와 카메라 같은 물건은 놔두고 가기 싫었고, 좋아하던 이라든지 의자라든지 그런 것들도 배낭 안에 전부 넣고 싶었다. ‘취향’이라는 게 생긴 걸까. 방에 널브러진 짐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내가 나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교동의 한 옥탑방에서 나는 그 짐들을 끌어안고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 방에는 화분이 많았고,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고, 부엌에 짐이 가장 많았다. 화장실에도 큰 화분이 놓여있어서 큰일을 보려고 앉으면 벤저민 잎사귀들이 얼굴에 닿았다. 영월에서처럼 큰 강이나 별이 보이진 않아서 대신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을 찢어 붙여놓아야 했지만, 어쨌든 옥상에 마당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때처럼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내길 좋아했다.

 

가끔 사람들이 찾아오는 밤이면 마당을 쓸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이불을 햇볕에 널고 그랬는데, 그럴 때 마치 내 몸을 치장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손톱을 다듬고 잘 마른 옷을 입는 것처럼. “이 집은 너를 닮았네.” 그런 얘기를 듣는 것은 그래서 가끔은 쑥스럽고 가끔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점점 더 나를 닮아갈 세 번째 방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집이라고 하면 그건 가족들이 있고 따뜻한 밥이라든지 화장지, 비누 같은 게 넉넉히 있는 곳, 다 같이 잠들고 또 함께 일어나서 북적이는 곳을 의미했다. 거실에는 큰 텔레비전이 있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영월에서나 서교동에서 내가 지내던 곳을 집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잠시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서른두 살이 된 지금은 그 질문에 꽤나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분명 집이 맞다고. 차이가 있다면 집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는 것 아니었을까. 한 달을 살아내려면 몇 개의 비누가 필요한지,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들이 없다는 것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예전에 나는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나를 둘러싼 공간은 어설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머물렀던 곳에 분명히 존재했던 것들도 있다. 잘 자라주던 화분들, 자주 데워지던 컵과 그릇, 대충 달아두었지만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커튼과 형광등 대신 달아놓았던 백열전구 같은 것들. 구석구석 작은 방을 메워, 내가 누군지 말해주었다는 걸 알고 있다. 방에서 나와서 또 다른 방을 찾아가는 거. 문득 살아가는 게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방이라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원룸이나 아파트 같은 곳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방에 서 바라보는 풍경과 그곳에 놓인 물건들, 분위기 같은 것도 방의 일부니까 누구에게나 자신과 닮은 방이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 어떤 방이 점점 나와 닮아간다면, 그건 내가 나에게 점점 가까워진다는 소리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 나와 어울리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나를 닮은 방에서 나와 사이좋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또 새로운 집을 구하려고 나는 서울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중이다. 이번 주말이 오면 지하철을 타고서 발음이 마음에 들었던, 하지만 계속 읽어봐도 여전히 낯설던, 긴 산책로가 있다는 그 역에 내려 걸어볼 것이다. 만약 편안한 기분이 든다면 그대로 작은 부동산에 찾아가 여기서 살 거라고 말해야지.

 

이번에는 얼마만큼의 시간과 어떤 모양의 분위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처음 집을 나서며 짐을 챙기던 스무 살 그 여름에, 파란 배낭 속에 좀처럼 채워지지 않던 빈 공간을 기억한다. 그 여백이 점점 커져서 내가 살아갈 공간이 된 게 아닐까. 어딘가 편하게 누워 있으면,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에 빠지곤 한다.

 

 

lllustrator_ 전하은

Freelancer_ 전진우 rolerppp@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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