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선택한 무기는 전쟁터에 입성한지 얼마 안 된 뉴비들을 격파하는 데 유용하다. 동네 약국에서 1500원이면 구할 수 있는 자비로운 아이템으로, 별도의 ‘현질’이 필요없다. 소독용 에탄올과 물의 비율을 4:1로 맞춰 쉐킷쉐킷 섞으면 장전 완료. 참혹해진 벽에 대고 발사하면 아직 다 여물지 못한 신입 곰팡이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흘러내릴 것이다. 적들이 스스로 무너지길 기다렸다가 휴지로 슥슥 닦아내면 끝. 다만, 잔뼈가 굵은 적들에겐 타격을 가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당신의 무기는 어머니들의 지혜로부터 유래되어 매우 친환경적인 것이 특징이다. 대신 만드는 공정과 공격 방법이 복잡하다. 우선 종이컵하나 분량의 물에 베이킹 소다 두 숟갈, 식초 한숟갈을 넣고 섞는다. 제조한 무기를 휴지에 충분히 적셔 적의 주둔지에 철썩 철썩 붙여준다. 2시간 후 동태를 살펴보면, 반란이라도 일어난건지 벽지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놈들로 아비규환일 것이다. 그때 출동할 히든 카드, 안 쓰는 칫솔. 그가 지나가는 길대로 적들을 쓸어버릴수 있다.
당신이 고른 무기는 최고 수준의 파괴력을 자랑한다. 어떤 방법에도 꿈쩍 않고 자리를 지킨 정예병들도 이 생화학 무기 한 방이면 처참한 최후를 피할 수 없다. 락스를 투하한 후 괴로워하는 적의 모습을 잠시 만끽하다 마른 걸레로 닦으면 게임 셋. 그러나 강한 공격력은 언제나 후유증을 동반하는 법. 곰팡이와 함께 당신의 건강도 안드로메다로 갈 수 있으니 마스크와 장갑은 필수다. 두통을 유발하므로 창문도 꼭 열어놓고 전쟁을 치를 것.
ps. 거뭇거뭇 남은 적의 흔적은 늘 예의 주시하자. 언제 다시 벽을 점령할지 모른다.
계약이 끝난 날, 언짢은 얼굴로 벽지를 가리키는 집주인. 당신의 머리는 새하얘진다. 최종 보스를 물리치고 이 집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자문: 안국법률사무소 정희찬 변호사)
민법 제623조에는, 집주인은 임대하는 집을 정상적 주거가 가능한 상태로 유지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돼있다. 누수, 결로, 통풍 등 곰팡이를 유발하는 집의 구조적 결함을 수리해야 한다는 뜻. 그런 의무를 해준다는 전제로 월세와 보증금을 받는 것이다. 집에 대한 사용 수익은 얻으면서 의무를 다 하지 않으면 위법이다.
집을 계약할 때, 이 집은 곰팡이가 잘 생기니 세입자가 적절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걸 미리 인지시켰고 그 내용을 특약 사항에 포함했다면 세입자에게 책임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곰팡이 제거는 집주인의 몫이다. 반 지층이니까 네 돈으로 곰팡이를 지우라는 건, 잘생긴 남자랑 사귀면서 바람피울 거 몰랐냐는 것만큼 개똥같은 논리다.
가장 멘탈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하지만 ‘배 째라’에 못 이겨 내지 않아도 될 돈을 낸다면, 그 집주인은 다음 세입자에게도 똑같이 할 것이다. 무서운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내용증명’을 보내겠다고 통보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용증명은 분쟁이 생겼을 때 그 사건의 육하원칙을 정리한 문서로, 대체로 소송 의사를 밝힐 때 사용된다. 법대로 하면 유리할 게 없는 집주인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습해지는 요즘, 곰팡이가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했다면 사진부터 찍어라. 그리고 당장 집주인에게 보내라. 나중에 분쟁이 생긴다면 증거가 매우 중요하므로, 이사 초의 사진과 곰팡이의 발전 경과를 모두 찍어 그때그때 전송하는 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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