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절실히 필요해.”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였다. A는 떨리는 목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내 기억 속 당차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과 달리 아주 약하고 위태로웠다. 그녀와 나는 몇 년 전 학생의 엄마와 과외 선생으로 처음 만났다. 입시가 끝난 뒤에도 언니 동생 하며 지냈지만 최근 명절 무렵엔 서먹한 안부만 주고받았다. 20살도 더 어린 나를 갑작스럽게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서운 마음에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다.

 

“나 이혼해.”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전했다. 헤어질 수도 있지. 그 순간 진부하고 뻔한, 제발 아니었으면 하는 몇 가지 일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맞았다고, 아니 맞아왔다고 했다. 첫애가 두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온 날이면 때렸다고 했다.

 

밀려 넘어지면 발길질을 해댔고 안경을 쓴 그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고 했다. 턱밑에 길게 남은 흉터는 그때 찢어진 것이었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잖아. 내가 젊었을 땐 이 혼한 여자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빴어. 애들 생각도 해야 했고.”

 

그녀는 처음 맞았을 때, 어린 아들을 데리고 친오빠의 집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오빠가 여동생에게 해준 말은 “참아”가 전부였다. A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신을 때리는 남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8년을 버텨냈다. 자신의 오빠가, 그리고 아들의 명예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가 창피하고 속상할까 봐.

 

A는 마침내 매일 밤 남편이 때릴까 봐 겁에 질리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는 오빠에게 다시 한 번 도움을 청했다. 그는 “잘 생각해”라는 짧은 메시지 이후 A의 모든 연락에 답하지 않았다. 당시를 회상 하는 그녀의 입에서 처음으로 거친 욕이 나왔다. 18년 전과 다름없이 자신을 외면하는 오빠에게 갖은 저주를 퍼부었다.

 

“나보다 공부도 못했는데 엄마가 아들이랍시고 대학원까지 보낸다고 애썼어. 나는 딸이라서 대학도 안 보내줬는데.” 그녀는 딸이라는 이유로 상처 받았던 많은 순간들을 꺼내놓았다. 30년, 아니 40년도 더 전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껏 그를 위해 희생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나오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악을 썼다.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이야기를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 새끼, 군대에 있었을 때 내가 혼자 면회를 갔었거든. 그날 걔가 날 건드렸어. 사촌들도 그랬어. 그 새끼들 다 똑같아.” 먹먹해서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A는 모든 게 ‘엄마 닮아 팔자가 사나운’, ‘성급히 결혼한’ 본인 탓이라며 가슴을 쳤다.

 

그녀는 늘 참아야만 했다. 아들만 사랑받는 것을. 그 귀한 ‘누군가의 아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회사 일, 요리, 청소, 양육, 내 집 마련까지 완벽히 해내는 A를 보며 부러움과 존경심을 느꼈었다. 그것이 삶의 짐을 덜어줄 사람이 없어서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비로소 찬장에 놓인 온갖 약통이 눈에 들어왔다.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앞으로는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애써 웃어주는 일뿐이었다. 그녀의 집을 나선 뒤에야 무력감에 오열했다. 깊고 어두운 그녀의 고민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크고 작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꺼내 보였다. 썸남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B, 아빠뻘 취객의 희롱을 겪은 C…. 증거가 사라지고 공소시효가 지난 자리엔 돌이킬 수 없는 악몽과 지워지지 않을 가슴 속 흉터만이 남아있었다.

 

옛말과 달리 두 발 뻗고 자는 쪽은 맞은 놈이 아닌, 때린 놈이다. 아픔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음을 안다. 편견, 허술한 처벌 등 심신을 궁지로 내모는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한다. 피해자의 다른 이름이 ‘생존자’라니 참 잔인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당당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폭력을 당연히 여긴 채 숨는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생겨나지 않기를, 고통을 자책하며 내면화하지 않길 절실히 바란다. 더는 참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의 존재는 충분히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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