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낯가림이 심하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대학내일 인턴을 하는 지금까지 한결같이 낯을 가린다. 조금 나아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하게 낯을 가리게 됐다는 점?
뉴페이스가 팔당댐 물처럼 쏟아지는 대학에서, 낯가림이라는 빅똥을 받은 후배들에게. 4년동안 몸으로 익힌 낯가림의 기술을 전수하고자 한다. 걱정하지 마시라. 낯가리는 사람도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다! 나처럼!
새터에서 친구를 못 사귀면 아싸행 특급열차를 타게 된다는데, 나는 옆에 앉은 동기와 말 한 마디 못 하고 있었다. 누가 말을 걸어도 박명수 뺨치는 맥가위버 기술로 대화의 맥을 싹둑싹둑 잘랐다. 동기들이 나를 재미없다고 여길 게 무서워 마음이 어두워졌다.
술자리에서도 다른 동기들은 깔깔거리고 난리가 났다. 나도 폐 깊은 곳에서 박장대소를 끌어내 보려 했지만 결국 FAIL. 얼굴의 근육세포가 웃기 싫다고 파업하는 기분이었달까. 선배의 “너 되게 말이 없구나?”라는 말에 자신감은 꾸깃꾸깃해지고…. 그렇게 나는 떠가는 구름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술자리의 병풍이 됐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TIP.
새터는 그냥 동기들 얼굴이나 익히자는 마음으로 참여하자. 친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면 더 긴장할 뿐이다. 대학생활은 길다. 천천히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동기들과 겨우 친해지니 처음 보는 사람들과 팀플을 해야 한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조리 있게 말하는 건 낯가림이 심한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할 말이 있어도 ‘실수하면 어떡하지?’, ‘틀린 내용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섰다. 결국 말할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말하지 못하곤 했다.
간만에 한마디 하려고 입을 떼도, 시선이 집중되면 그 순간 머릿속이 우유 빛깔로 변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말을 주절거리기 일쑤. 나중에 자려고 누워서 이불 킥이나 뻥뻥 찼다.
TIP.
꼭 유창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수줍지만 분명하게 말하자. 목소리가 떨리거나 눈을 못 마주쳐도 괜찮다. 대신 ‘내 의견을 확실히 전하자’는 작은 목표를 갖고 꿋꿋이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대외활동엔 낯을 가리지 않는 사교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군중 속의 고독을 체감하며 핸드폰을 보거나 벽지 무늬를 셌다.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도 “응…어…음…”하는 영유아식 화법으로 마치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대외활동이 끝날 즈음엔 “너 처음에 되게 시크한 줄 알았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TIP.
가까이 있는 사람 한 명을 집중 공략하자. 처음부터 모두와 친해질 수는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친해지려 하기보다, 한 명에게 말거는 게 부담이 적다. 다음번에 만날 때도 한 명이나마 친해진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한결 편할 것이다.
“얘 내 친구야.” 친구가 내게 자신의 친구를 소개한 순간 낯가림 모드 ON!
조금 전까지 신나게 떠들다가 갑자기 수줍어진 내 모습에 친구들의 동공은 크게 떨리곤 했다. 친구의 친구가 반갑긴 한데 어쩐지 난 내 친구만 쳐다보며 얘기했다. 친구의 친구는 나와 아이 컨택을 해보려 했지만 나는 길가의 비둘기와 나무를 번갈아 보며 잽싸게 시선을 피했다.
나를 빼고 얘기할 땐, 소외감보다 아무 말도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친구의 친구가 “나 가볼게”하고 떠나는 뒷모습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TIP.
친구를 써먹는 방법도 유용하다. 같은 친구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거기서부터 얘기를 시작하면 된다. 친구에 대한 앞 담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이 웃고 친밀감이 생긴다.
학교 다니는 내내 낯을 가려서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낯가림이 내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처음 사람을 대할 땐 신중할 수 있고, 사귀고 난 뒤엔 내 반전 매력을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 이제는 낯을 가릴만한 상황에 대처하는 요령도 생겼다. 나를 뜯어고치지 않고도 충분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낯가림이 심한 자여, 낯가림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대도 나처럼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행운을 비네!
illustrator liz
director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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