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생에 첫 해외여행으로 4박 5일간 교토에 다녀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운이 가라앉지 않아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야기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 왔는데…”

 

재밌었던 건, 모든 사람의 ‘첫 해외여행’추억이 조금씩 닮아 있었다는 거다. 런던, 파리, 교토. 장소는 달랐지만,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은 비슷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처럼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당신의 처음도 우리와 닿아 있기를 기대하며, 나의 첫 여행 이야기를 공유한다.

 


1단계. 출국 직전, 몹시 불안하다.

 

“아, 일본 가기 싫다.”
“가고 싶다고 난리 칠 때는 언제고.”

 

사실 교토는 내가 오래전부터 짝사랑하던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 준비를 하면서 어느 때보다 설렐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난 그 과정이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일단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여권을 만들고, 환율을 따져 환전을 하고, 낯선 언어로 숙소를 예약 하고…. 떠나면 그만인 국내 여행에 익숙했던 나에게, 모든 과정은 숙제처럼 느껴졌다. 해도 해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어서 결국 몇 가지는 포기해 버렸다.

 

출국 전날 밤. 마지막까지 온갖 걱정들을 하느라 잠을 설쳤다. (입국 심사에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여권을 도둑맞으면? 같은 것들…) 친구들은 설레서 잠을 못 잔다는데, 역시 나는 해외여행 체질은 아닌가 싶었다.

 

첫 해외 비행. 첫 기내식

 

그리고 걱정, 짜증, 불안의 감정은 무사히 비행기를 타자마자 거품처럼 사그라들었다. 기내식이 나오자 좀 신나기까지 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진짜 교토에 가는구나!

 


2단계. 도착 직후,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예뻐 보인다.

일본 영화 속에서 보던 그 골목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사진 김수현)

 

간사이 공항에서 라피트를 타고 교토로 가는 길.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골목 구석구석을 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쩜 이 나라는 쓰레기통까지 예쁘냐? 빨래 널어놓은 것마저 정갈해!’ 나는 태어나서 처음 비를 본 아이처럼 “우와”를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렀다.

 

4박 5일간 머물었던 숙소. 다다미방 바닥에선 짚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교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숙소까지 길 한번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낡은 일본 가정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이름은 료칸이지만 하하) 좋은 위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서 골랐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쾌적했다. 잘 정돈된 다다미방에서 짚 냄새가 은은하게 베어 나왔다. 시트는 햇볕에서 바짝 말린 듯 보송보송했다. 나는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마시며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일기를 썼다.

 

“해외여행 1일 차. 숙소 무사 도착. 나 자신이 기특하다. 오늘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지.”

 


3단계. 만나는 모든 사람이 좋다.

일본어를 못한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스미마셍”이 전부. 숙소에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려니 갑자기 배가 또 살살 아팠다. 길을 잃으면 어쩌나. 숙소까지 다시 찾아올 수나 있을까? 잔뜩 긴장한 채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고 땡볕 속을 20분 넘게 헤맸다. 다들 구글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건지 내 지도는 먹통이었다. 버스 정류장이 길 건너에 있다는 건지, 여기서 타면 된다는 건지. 왜 내가 탈 버스는 오질 않는 건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지나가던 할아버지를 붙잡았다. “스미마셍…. 기온…” 더듬 더듬 말하자, 할아버지는 멈춰 서서 오랫동안 버스 노선표를 보시더니 “여기서 바로 가는 것은 없고, 이걸 타고 가서 갈아타야 한다.”고 하셨다. 아니 아마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나는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할아버지는 일본어로만 말하셨는데 어떻게 뜻이 통했는지 모르겠다.

 

마침 저쪽에서 버스가 왔다.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두 개의 버스 번호를 다시 일러 주시고는, 자전거를 타고 반대방향으로 가셨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탄 천사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날 봤던 기온 거리는 예상대로 예쁘고 일본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좋았는데, 막상 숙소에 돌아와 생각나는 건 길에서 마주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난 자주 길을 잃었고, 구글 지도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그리고 길에서 마주친 이들은 한결같이 친절했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면서도, 나를 약국까지 데려다주셨던 아주머니. 가던 길을 되돌아와 길은 이쪽이라고 알려 준 여고생들.

 

한국에 돌아가서 길 잃은 외국인을 만난다면, 나도 꼭 그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리라 다짐했더니, 친구가 “이제야 네가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게 됐다”며 웃었다.

 

 


4단계. 믿었던 도시에 배신감을 느낀다.

(여러모로 괘씸한 면은 많지만) 개인적으로 일본 특유의 문화를 좋아한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도, 낯선 이에게 친절한 것도. 직접 와서 느껴보니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출근길 버스에서 밀치는 사람이 없다. 줄이 길게 늘어선 드러그스토어에서 돈 꺼내는 것이 좀 늦어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다. 이런 도시라면 몇 달쯤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교토가 역시 나를 배신할 리 없다”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자랑했던 그날 오후. 나는 애인에게 투정을 부리는 어린애처럼 잔뜩 짜증이 나 있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2만 원이 넘었던 타코야끼 정식. 이걸 먹으려던 게 아니었는데…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한 끼 예산의 4배가 넘는 돈을 써버렸고, 전날 무리에서 걸어 다닌 탓에 발가락에는 물집이 잔뜩 잡혔다. 기분 좋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간사이 지방 특유의 습한 날씨도 오늘따라 참기 힘들었다.

 

길 한구석에 주저앉아 아픈 발을 주무르며 생각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교토까지 와서 돈 쓰고 고생하고. 그냥 집에 있을걸’

 

뭘 해도 안 풀리던 날. 길바닥에 주저앉아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5단계. 반전,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특별함을 느낀다.

교토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곳은 청수사였다. 교토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는 곳. 모든 여행서의 첫 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던 곳. 일본 사람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 그곳에 가면 초보 관광객인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아서 왠지 내키지 않았다.

 

기모노를 입은 백인 청년과 동양인 소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청수사로 올라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을 바로 후회했다. 기념품 가게가 늘어선 골목에서 기모노를 입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기모노를 빌려 입는 체험이 유행이라고) 부채나 그릇 같은 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게 진풍경이었다. 얼굴색도, 나이도, 출신지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가게에서 같은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서 같은 포즈로 인증 사진을 남기는 모습이 귀여웠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구도로 찍는 청수사 포토 스팟. 나도 기다렸다가 한 컷 찍었다.

 

가이드 북에서 봤던 구도로 청수사가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라고 만족하며 돌아 섰는데, 그 뒤에서 진짜를 만났다. 베레모를 멋지게 쓰신 화가 할아버지가 그늘에 앉아 청수사를 그리고 계셨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린 청수사는 모두가 담아가는 ‘그 구도의 청수사’와는 달랐다. 2016년 7월 11일에만 볼 수 있는 청수사. 조금도 뻔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마주친 선물같은 장면이었다.

 

묵묵히 청수사를 그리고 계셨던 화가 할아버지

 

나중에 사진 정리를 하다 보니, 청수사에서 찍은 사진이 제일 많았다. 유명한 곳이라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면 아마 많은 것들을 놓쳤을 것이다.

 


6단계. 추억이 미화된다.

귀국 후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첫 해외여행에서 느꼈던 다이나믹한 감정 변화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웃었다가 화냈다가 감동했다가 난리도 아니었다며.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 둘 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들도 딱 그랬다고 했다. 뭘 잘 몰라서 구석구석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고, 바보짓도 많이 했고, 아쉬움도 많이 남았지만, 처음이라는 의미 때문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첫 해외여행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것이라고.

 

떠나는 날. 사흘간 묵었던 숙소 앞 골목. (사진 김수현)

 


+ 마지막으로 내가 한 바보짓 하나를 더 고백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여행 막바지에 아무래도 돈이 부족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서 보니 캐리어 안쪽에 1000엔 10장이 곱게 놓여 있었다. 비상금으로 넣어둔 돈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부족해서 마지막 날에는 편의점 음식으로만 끼니를 때웠는데. 하하. 아무래도 그 돈 쓰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교토에 한 번 더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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