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여행
집 나서면 1년 뒤에나 돌아올 긴 여행을 떠난 건 스물세 살 때의 일이었다.
사연을 말하자면 길…지는 않고 짧은데, 등록금을 벌 요량으로 휴학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딴마음을 먹게 된 탓이다. 아르바이트이긴 했지만 작은 광고회사에 계약직으로 출퇴근하다 보니, 학생 입장에선 꽤 큰 ‘월급’이 생겼다. 이렇게 1년만 모으면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 건 일한 지 5개월쯤 지났을 때였는데, 한 번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뒤로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였다. 그 시절엔 그렇게 쉽게 사로잡혔고, 큰 결정을 아무렇지 않게 내렸다. 이룬 것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는 나이여서 그랬을까.
반년 뒤, 나는 정말 45리터 배낭을 둘러멘 채로 여행길에 올랐다. 오랜 꿈이었으나 그렇게 시작될지는 스스로도 몰랐던 여행이 그리하여 어땠느냐면…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긴 여행이란 건 결국 집 밖에서 보내는 일상과 같아서, 가끔 낭만적인 순간과 대체로 현실적인 순간들이 이어졌다. 낡은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다 툭하면 벌레에 물려 온몸에 알레르기가 올라왔고, 타야 할 버스를 놓쳐 터미널에 서 노숙을 하기도 했으며, 퍼내고 퍼내도 우울이 차오르는 날도 있었다.
그런 한편 이 세상의 것이라 믿기 힘든 풍경 앞에 서게 되는 순간이 있었고, 때로는 이곳에서 이대로 남은 삶을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머리카락이 허리께까지 자랐고, 피부는 햇볕에 그을려 짙어져갔다.
나는 지구본 위를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당장 돌아갈 기약이 없었으므로, 어디에 얼마나 머물지는 마음먹기 나름이었다. 그러다 보면 한국에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일정으로 여행 온 이들을 만나곤 했다. 그들과 친구가 되어 여행 루트가 겹치는 곳까지 함께 가기도 했고, 어떤 숙소에선 스태프처럼 오래 머물며 그곳에 들고나는 여행자들을 마중하고 배웅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스물셋의 장기여행자가 가장 자주 만난 것은 서른 언저리의 단기여행자들이었다.
학생인 내겐 마냥 어른처럼 여겨졌던 그들. 대개 그들은 어렵게 들어간 첫 번째나 두 번째 직장을 고민 끝에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 스스로에 게 여행이라는 선물을 준 참이었다. 휩쓸리듯 살아가다 좀처럼 행복해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곤 문득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그것이 그 나이쯤의 일이기 때문일까. 저마다의 사연은 달랐지만 지금껏 걸어온 길에서 이탈한, 그래서 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면 달라진 삶을 살 거라 믿는 그들은 어딘가 홀가분해 보였다.
그만두어도 될까, 그만둘 수 있을까, 다르게 살아도 될까,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수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내려 여기까지 온 만큼 그들 앞엔 오직 ‘살고 싶은 삶’만이 남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졸업을 앞두고 있는, 아직 아무것도 시작해보지 못한 나는, 언니거나 오빠인 그들의 이야기를 다만 가만히 듣곤 했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일, 자신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면 하고 싶은 일과 살고 싶은 삶. 그런 것이 그들 안에 불을 밝히고 은은히 빛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이여도, 손 흔들고 헤어지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어도, 누군가 다시 꿈꾸는 삶은 혼자 걷던 내게도 빛을 주었다.
그러니 그 여행이 나를 어떤 식으로든 바꿔 놓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떠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한 가지.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낭비할 현재 같은 건 없다고 여기게 되었고, 무엇보다 ‘언젠가’라는 말로 시작되는 미래를 너무 믿지 않게 되었다.
여행은 먼 훗날로 미루지 않고 ‘지금’ 떠나온 내가, 원하는 삶을 조금씩 미루려 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알면서도 살아보았을 것이다. 친구들이 다들 준비하던 미래, 내 부모가 살아주길 바라는 삶, 그런 것을. 가보니 역시 이 길이 아니란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부모에게 한 번은 그들의 뜻대로 살았다 말할 변명을 얻어두기 위해서라도. 어쩌면 내가 만난 그 많던 여행 친구들은 나를 앞서 산 시간들로, 알려준 것인지도 모른다. 먼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삶을 왜 자꾸, 미루어두려 하느냐고.
뻔히 원하는 길을 두고 다른 길을 택한 다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올 거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삶을 번복하는 대신, 처음부터 원하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었다. 평생 궂은일만 해온 부모에 대한 죄책감,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소모적인 고민, 끊임없이 곁눈질하게 되는 또래의 삶. 그런 어설픈 것은 그만두고, 나는 다만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여행을 떠날 때처럼 갑자기 모든 것이 단순하게 여겨졌다.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나는 남은 학기를 다니다가 그해 학생 리포터를 모집하던 작은 잡지사에 지원했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곳이었다.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은 날, 첫 기사를 썼던 날, 내 이름이 적힌 잡지를 받아 들던 날, 기뻤다. 기뻤던 마음을 기억한다.
그 후 마냥 행복한 날들이 이어진 것은 아니다. 기대와 다른 현실에 실망했고, 번번이 한계에 부딪쳤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상처주어 더욱 슬펐다. 두어 번 직장을 옮겼고 비슷비슷한 고민들이 계속됐지만, 그럼에도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자아란 건 늘 나와 함께 있고, 실은 그런 ‘나’와 함께 끝나지 않은 여행 중이란 걸 알고 있었으므로.
다만,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늘 마음속에 넣고 다녔다. 오래 전, 손 흔들고 헤어진 뒤 앞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가던 그들의 뒷모습이 말해주었던 것. 그것은, 언제든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먼 길을 돌아가든 그렇지 않든, 바라는 삶을 찾았든 그렇지 못했든―원한다면 언제든, 원한다면 무엇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어쩌면 그 시절 내가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헤어졌던 것은 사실 그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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