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술

 

돌이켜 보면, 이라는 말은 조금 슬프다. 이미 저벅저벅 지나온 순간들을 뒤로하고 걷다가 어느 날 문득 아, 거기에 이런 게 있었지, 하고 멈춰 선 후 몸을 돌린다. 하지만 그 때는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가 거기에 있다 한들, 그래서 현재를 멈추고 기억을 돌이켰다 한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보는 것’뿐이다. 벌써 멀찌감치 떨어져버린 그때를 돌이키고, 단지 바라보는 것.

 

 

인생은 워낙 짓궂어서 꼭 지나고 나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하지만 우리는 밤낮을 열심히 살아 나가기에도 버겁다. 술이 없었다면 어디 주저앉아 지난 시간을 가만히 헤아려볼 시간들이 넉넉하게 주어질까?

 

 

하지만 진심으로 깨달아도 과거에 남아 있는 것들은 수정할 길이 없으므로, 나는 자주 만취하게 됐다. 너무 늦게 찾아오는 깨달음은 무척이나 쓴맛이라 술을 들이켜도 쓴 줄 모르고 마셔댔다. 사람들 사이에서 섬처럼 앉아 한잔 두잔 들이키고 있으면 장난, 고민, 잡담, 헛소리,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 파도처럼 내게 와 부딪혔다. 철썩철썩. 취기의 파도를 타기 시작하면 나는 말이 많아졌다.

 

본래 아주 조용한 편도 아니지만, 평소에는 머릿속에만 담아뒀을 말들이 술잔 위로 쏟아졌다. 나뿐이 아니다. 누군가는 표현이 날카로워지고, 누군가는 잊은척 했던 실연을 꺼내놓는다. 원래보다 더 많이 웃고 신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울적한 표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마음 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한 스무 살 무렵에는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너무너무 신기했다. 다행히 술이 약한 편은 아니라 조금만 조심해서 마시면 취한 사람을 보는 건 쉬운 일이었다. 취기는 감춰진 모습을 불러내는 주술 같았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렸다. 점잖았던 사람이 천방지축 장난꾸러기가 되는가 하면, 나를 앉혀놓고 끝도 없이 지루한 얘길 해대는 사람도 있었다.

 

나 또한 이런저런 사고를 쳤으니 변명의 여지는 없다. 천태만상이 있었지만, 흔히 사람들은 취하면 어려졌고 귀여워졌다. 눈빛이 느슨해지고 행동이 허물없어지곤 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게 좋았다. 아무도 무섭지 않았다. 누구도 나쁘지 않았다. 20대 초반 내 술버릇은 사람들을 끌어안거나 애정 표현을 하는 거였다. 다들 너무 좋아서. 취한 당신들이 너무 좋아서.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술은 사람을 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책임진다”며 후배를 잔뜩 취하게 해놓고 나 몰라라 방치한 선배는 평소 듬직한 사람이었다. 그래놓고 다음 날부터 그 후배를 욕하고 다녔다. 취기에 애정 표현을 빙자한 폭력적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에게는 사랑이고 순정이었는지 몰라도, 당한 사람에게는 평생을 안고 갈 괴로움으로 새겨지는 걸 보았다.

 

속에 숨겨두었던 시기를 드러내는 사람, 이유 없이 타인의 뒷이야기를 옮기고 다니는 사람, 툭하면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다수가 모인 술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여럿이 있으면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서 도망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즐거운 기억만 만들고 싶었다. 취기로 약해진 순간에인간의 캄캄한 면을 마주하는 건 여러모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이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술을 마셨습니다”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람이란 존재는, 술이라는 액체는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었다. 아끼고 애정하는 사람들 또한 취하고 취해서 어린아이로 돌아가면 귀엽고도 잔인했고 순수했지만 폭력적이었다. 흥이 나서 춤을 추다가 옆사람에게 시비를 거는가 하면, 깔깔거리며 잘 놀다가 갑자기 차도에 뛰어드는걸 막느라 진이 빠진 적도 있다. 아파서 집에 먼저 갔는데 메시지로 폭언에 가까운 말을 했던 건 그만큼 나를 아끼는 사람이었고, 마음이 순해서 예쁜 아이는 실연 후에 홍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바람에 모두를 곤란케 했다.

 

 

술은 한 사람에게서 좋아하는 면과 싫어하는 면을 동시에 보도록 했다. 아마 맨정신이었다면 그런 모습들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취했으니까! 기분이 좋고 머리가 빠릿빠릿 돌아가지 않으니 판단은 보류해두고 ‘일단 마셔’버렸다. 혹은 막 언성 높이고 논리에 맞지 않는 말로 다투다가 작은 장난에 으헤헤, 하고 풀어져버리기도 했다. 나 또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이미지 관리 같은 것은 이미 놓아버린 지 오래. 우리는 취하지 않았다면 보지 않고보이지 않았을 면들을 밤늦도록 나눠 가졌다.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일단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내게는 ‘모호함을 견디는 힘이 있지 않느냐’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치 나도 몰랐던 초능력이라도 깨달은 양 벅차고 기뻤다. 20대 동안 수많은 술잔을 통해 얻은 힘이 있다면 바로 그거였다. 섣부르게 이것은 옳고 이것은 틀리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취하면 뭘 평가하기 쉽지 않다), 사람을 한 가지 면으로 매도하지 않는 것(누구나 취기에는 개도 되고 천사도 된다), 나에 대한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거나 속단하지 않는 것(술 마시면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한다), 일단 무엇이든 좋게 생각하는 것(알콜은 흥을 돋운다) 등등.

 

‘모호함을 견디는 힘’이 과연 좋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덕분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경험했고, 그들을 통해 다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을 겪었다. 타인을 이해하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늘 노력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해하지 않고도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확장된다.  물론 건강을 좀 빼앗아가긴 했지만, 술은 내게 그런 순간을 자주 선물해주었다.

 

이성의 끈을 놓자고 마시는 게 아니라, 이성의 영역을 넓히자고 마시는 게 술이다. 이걸 20대의 내가 알았더라면 그간의 흑역사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을까? 확신은 할 수 없다. 이제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 여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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