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곁에 있어 주는 친구가 진짜야.”

 

되는 일 하나 없는 인생 암흑기를 지나고 나서야, 이 말을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만나면 죽는소리나 해대고, 술에 취해 울고.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까지 기운 빠지게 하던 시절. 그런 나를 버거워한 많은 이들이 떠났습니다. 아직 친구로 남은 사람들은, 그때 곁에 있어 준 몇몇뿐이에요.

 

“우리 죽을 때까지 이렇게 친구 하자”

산다는 건 자주 괴롭고 가끔 즐거운 일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힘든 일은 수도 없이 많을 거예요. 마흔 살쯤 되어서 정신을 차리고 나면, 저에겐 몇 명의 친구가 남아있을까요. “우리 죽을 때까지 이렇게 친구 하자”는 약속이 이렇게 지키기 어려운 건지 몰랐습니다. 지금 같아선 그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이번 생 잘 살았다 싶을 것 같아요.

 

좌 이오덕 선생, 우 권정생 선생

 

『강아지 똥』, 『몽실언니』로 익숙한 동화 작가 권정생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었어요. 우리말 연구자이자, 아동 문학가 이오덕. 사실 둘은 띠동갑입니다. 이오덕이 마흔아홉, 권정생이 서른일곱이었을 때 처음 만났고, 죽을 때까지 친구로 지냈지만, 서로에게 존칭을 썼어요.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권정생은 그를 만난 뒤 “선생님을 알게 되어 이젠 외롭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권정생의 집은 안동시 일직면, 시내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외진 곳에 있었어요. 경북 봉화에 살던 이오덕은 오직 그를 만나기 위해 먼 발걸음을 하곤 했다고 합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8월의 어느 날. 저는 권정생이 살았던 집으로 향하며 생각했습니다. 이 먼 길을 가는 이오덕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사는 곳도 가깝지 않고, 형편도 좋지 않았던 두 사람은 어떻게 진한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

 


“선생님을 알게 되어 이젠 외롭지도 않습니다.” -권정생

권정생의 삶엔 늘 세 가지가 함께했습니다. 가난, 병마 그리고 외로움. 전쟁으로 가난해진 그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권정생은 결핵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았어요. 그는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 못했고, 변변한 치료도 받을 수 없었으며, 아팠기에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고독함을 보여 주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자다가 몸이 가려워서 보니 몸 안에 생쥐가 있더래요. 처음에는 징그러웠는데, 나중에는 정이 들어 생쥐가 나타나지 않으면 서운하더랍니다.

 

하천 부지의 무허가 건물에서 혼자 살았던 권정생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스물다섯 살 때 스물두 살이나 스물세 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권정생 유언장 ‘용감하게 죽겠다’ 中

평생 건강을 회복하지 못해 병에 시달렸던 권정생은 늘 집에서 혼자 동화를 썼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이 유작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우리가 아는 『강아지 똥』도 앞으로 2년 정도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유서처럼 쓴 작품이에요.

 

안동시 일직면 권정생 생가

 

아동 문학가로 활동하던 이오덕은 권정생의 동화를 읽고 반해 그에게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이 귀하고 값진 작품이 널리 읽히도록,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첫 만남에서 둘은 서로에게 깊은 신뢰를 느낍니다. 대쪽같이 올곧은 성품의 이오덕과 밭 한 뙈기도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권정생 사이에 뭔가 통하는 게 있었던 모양이에요. 이후에 둘은 2, 3개월에 한 번씩 만나고, 숱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우정을 키워 갑니다. 그것만으로도 외로웠던 권정생의 삶에 큰 위안이 됐어요.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더욱이 거짓말 잘하는 어른은 보기도 싫었습니다. 나 자신이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와 함께 살다 죽겠습니다.
선생님만은 제 마음 이해해 주실 겝니다.

 

권정생이 이오덕에게 쓴 편지 中

남들이야 무슨 말을 하든지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참으로 귀하고 값있는 것으로 아끼고 싶습니다.

 

이오덕이 권정생에게 쓴 편지 中

“제가 너무 힘이 없어 이렇습니다.
용서해 주시고 좀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오덕

권정생이 남긴 단출한 유품들

 

이런 훌륭한 작가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이오덕의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74년 당시는 종잇값이 비싸서 출판 사업 전체가 불황이었고, 특히 아이들이 읽는 책은 팔리질 않아서 거의 나오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작가에게 헐값의 원고료만을 지급하거나,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사비를 털어 책을 내는 작가도 있었어요. 끼니도 겨우 때우던 권정생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하지만 이오덕은 권정생의 동화집 발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정이 미뤄지면 되려 자신이 미안해 하며 편지를 하곤 했습니다. 권정생은 그런 이오덕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제가 너무 힘이 없어 이렇습니다. 요즘 출판 사정이 극히 악화된 것 같은데, 그래도 어찌해서라도 책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제가 일 처리를 잘하지 못해서 그러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오덕이 권정생에게 쓴 편지 中

동화집 출판, 너무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는 선생님만은 믿고 의지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을 알게 된 것만으로 더할 수 없이 기쁩니다. 앞으로도 역시 제가 쓰고 있는 낙서 한장까지도 선생님께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

 

권정생이 이오덕에게 쓴 편지 中

어렵게 출간된 권정생 동화집 『강아지 똥』

 


“글 너무 쓰지 마시고 쉬시도록 바랍니다.
선생님은 좀 더 오래 사셔야 합니다.” –이오덕

이오덕의 편지는 언제나 비슷한 말로 끝납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고”, “휴식 잘 취해 주시길 바랍니다”, “무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권정생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어요. 하루 글을 쓰면 며칠을 누워 있어야 할 정도. 그런 그를 이오덕은 항상 격려하고 보살폈습니다.

 

빨래를 너는 권정생

 

선생님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하지도 않고 지내온 것이 죄스럽습니다. 우편환으로 7천 원 부쳐 드립니다. 또 어려우시면 편지 주십시오. 제가 직접 가지 못해 안됐습니다. 3월 중순까지는 틈이 안 날 것 같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것 확보하십시오. 신문값 같은 것은 차차 내도록 합시다.

 

이오덕이 권정생에게 쓴 편지 中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응원해 주는 친구가 있었기에, 권정생은 의욕을 되찾아 계속 작품을 쓸 수 있어요.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연애편지만큼이나 애절합니다. 자주 만나지 못한 탓에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컸죠.

 

권정생이 살던 집 앞 수돗가. 손님들이 오면 이 나무 그늘에 앉아서 함께 쉬곤 했다.

 

잠시도 선생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멍하니 앉았을 때나 길을 걸으면서도. 정말입니다. (중략) 선생님은 찾아오시지 않아도 항상 제 곁에 계신답니다.

 

권정생이 이오덕에게 쓴 편지 中

그들이 나눈 편지를 읽으면서 저는 좀 부끄러워졌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놓쳐 버린 친구 이름이 문득 생각났어요. 그렇게 멀어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평생 친구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죠.

 


 

“선생님 모습은 이제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권정생

두 사람의 우정은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았습니다. 이오덕이 ‘우리 글 바로 쓰기 운동’으로 바빠지고, 권정생이 예전보다 많은 인세를 받게 되었어도.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존중했고, 좋은 작품을 내기 위해, 바르게 살기 위해 숱한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권정생, 이오덕과 친구들.

 

어쨌든 저는 앞으로도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갈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눈물투성이입니다. 인간은 한순간도 죄짓지 않고는 목숨이 유지되지 않는데, 어떻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권정생이 이오덕에게 쓴 편지 中

나이가 많았던 이오덕이 세상을 떠나면서 두 친구는 이별합니다. 항상 권정생의 건강을 염려했지만, 사실 이오덕의 건강도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죽기 직전에는 위장이 나빠져서 음식을 거의 못 먹을 지경이었습니다. 아픈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권정생은 그의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다그쳤습니다. “밥을 먹어야 한다. 나도 죽기 살기로 먹었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도 검사도 치료도 받지 않았던 이오덕은 2003년 8월 세상을 뜹니다. 그리고 4년 뒤, 권정생도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아직 이승에 남아 있는 우리들은 선생님이 남기신 골치 아픈 책들을 알뜰히 살피며 눈물 나는 세상 힘겹게 견디며 견디며 살 것입니다. (중략) 선생님, 이담에 우리도 때가 되면 차례차례 선생님이 걸어가신 그 산길 모퉁이로 돌아가서 거기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생전의 이오덕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中

권정생과 이오덕이 살던 시대에는 휴대폰도, sns도 없었으니, 각각 다른 지방에 살던 둘이 서로에 닿을 방법은 편지뿐이었을 겁니다. 답장이 늦어지거나, 몇 달 동안 연락이 끊기는 일도 있었겠죠. 그럼에도 죽는 순간까지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로 남을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우정이 부러웠어요.

 

권정생이 살던 집은 예상처럼 소박했습니다. 마을 가장 구석에 있는 흙집엔 담도 대문도 없었어요. 옷가지와 이불을 넣어 두었다는 마당의 고무통, 봄마다 찾아오는 새를 위해 지어둔 집, 몸 뉘여 쉬던 마당의 나무 그늘까지 권정생의 손때가 묻은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여기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했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코끝이 찡졌습니다.

 

권정생의 방에 있는 작은 창

 

권정생 생가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권정생 동화마을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전화번호 054-858-0808

자료제공 권정생 동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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