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어떤 개고생을 했을지라도. 하지만 그건 다 지나고 나서 얘기고. 여행하는 당시엔 보살도 웃어넘기기 힘든 순간이 있다.

 

이런 때엔, “다 추억이 된다”느니 “이런 게 진짜 여행”이라느니 하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곤 한다. 아마 당신도 한 번쯤 해 본 말일 지도. 여행이 망했음을 직감하게 하는 다섯 가지 말을 추려 봤다.

 


 

1. “X이버에서 여기 진짜 맛집이래!”

 

“X이버에서 여기 진짜 맛집이래!” 일본 여행에서 친구는 고베의 규카츠 맛집을 안다며 자신 있게 나를 데려갔다. X이버에서 찾았다니 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가게 문을 활짝 열자… 음? 순간 강남의 유명 맛집에 온 줄 알았다. 가게엔 한국인, 그것도 20대가 득실득실했다.

 

“스미마셍”보다 “좀 지나갈게요”가 훨씬 자연스러운 이 분위기. 암쏘쏘리 벗알러뷰 빅뱅의 거짓말이 흘러나오고 친절하게 메뉴판까지 한국어다. 일본 영화에서 보던 일본식 가정식을 받으며 “아리가또!” 라고 수줍게 인사하고 싶었는데. 후… 일본의 정취는 다 어디 갔죠…

 


 

2. “이것도 나중엔 다 추억이다?”

 

나는 내가 여행 체질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몸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프랑스에서의 여행 첫날, 베르사유 궁전에 갔다가 샹젤리제에서 쇼핑하고 에펠탑까지 둘러보니 다음날 바로 골병이 들었다. 동시에 장에도 문제가 생겨 병원행 엠뷸런스에 몸을 실었다.

 

피골이 상접해서 좀비 느낌 제대로 살리고 있는데, 같이 간 언니는 “야, 이것도 나중엔 다 추억이다?”라고 말했다. 글쎄, 프랑스 병원에서 사진으로 몽마르트르 언덕 구경하는 게 추억이 될지는 모르겠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구글어스로 볼 걸…

 


 

3. “비 오는 날 하는 여행도 나름 낭만적이야”

 

“홍콩에 사상 최대의 호우가 있을 예정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첫 해외여행은 사람을 용맹하게 만드는 법. 난 “비 오는 날 하는 여행도 나름 낭만적이야”라며 일정을 강행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닝겐을 벌하듯, 비바람이 산채비빔밥처럼 뒤섞여 불었다. 비가 강약중강약으로 휘몰아치는 걸 보니 제우스… 아니 포세이돈이 하늘에서 무상급수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호텔 1층 X타벅스에서 수박주스를 마시며 얌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여행은 날씨 좋은 날 예쁘게 하는 게 낭만적인 거야…

 


 

4. “생각대로 안 되는 게 여행의 묘미지!”

 

여름방학 여행지로 일본을 고른 이유의 8할은 <고독한 미식가> 때문이었다. 차원이 다른 먹방에 눈을 뜬 나는 주인공 같은 고독한 미식가가 되고 싶었다. 드라마에 나온 가게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엄선해서 여행 루트를 짰다. 그리고 망했다. 한 곳 빼고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가게의 ‘closed’를 봤을 땐 ‘생각대로 안 되는 게 여행의 묘미지!’라며 대장부처럼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가게까지 문을 닫자 여행의 폭망 스멜이 3일 묶은 양말의 구린내처럼 스멜스멜 올라왔다. 결국 네 번째 가게까지 휴무. ‘1박2일’ 야외취침도 이렇게 연속으로 걸리긴 힘들 텐데. 고독한 미식가가 아니라 그냥 X나 고독하기만 했다.

 


 

5. “공기 좋은 데서 마시면 취하지도 않아~”

 

스페인 여행의 첫날은 좋았다. 특히 술이 좋았다. 달착지근한 맛이 취향 저격하는 솜씨가 진종오 급이었다. 우린 마트에서 술을 종류별로 샀다. 누군가 자신 있게 “공기 좋은 데서 마시면 취하지도 않아~”라고 말했다.

 

그 날 미세먼지가 심했는지 우린 X나 취했고 다음 날 몸 져 누웠다. 스페인 사람들이 식후에 샷으로 한 잔 마신다는 술을 우사인 볼트 100m 질주하는 속도로 퍼먹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투우축제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지만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스페인 게스트하우스 천장은 실컷 구경했다. 이럴 거면 대성리에 가지 왜 스페인에 왔니…

 


 

illustrator liz

director 김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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