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쯤 나에게도 떠날 기회는 있었다. 미국에서 어학연수와 인턴과 여행을 모두 경험하게 한다는, WEST라는 프로그램 포스터를 학교 게시판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포기했다. 1년이라는 기간이 마음에 걸렸다.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나이가 취업 시장에서 불리할까봐 두려웠다. 1000만원에 달한다는 연수 비용도 그랬다.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그 돈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1년은 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시간이었고, 내 형편에 따라 연수 비용과 생활비까지 지원받을 수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매일 되뇐다. 떠나고 싶다, 그때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얼마 전, 1년간의 미국 생활로 삶이 조금은 바뀌었다는 3명을 만나고 왔다. WEST의 여인욱, 정서린, 권준형 동문회원이다. 떠나기 전과 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학연수 + WEST = 서바이벌 잉글리시

여인욱 (31, WEST 9기)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영어 잘하기’가 있었다. 내가 미국에 간다고 말했을 때, 누군가는 늦었다고 말했을 거다. 나는 학교에 늦게 들어간 편이다. WEST로 미국에 다녀오면 28~29살이 될 나이였다. 가는 게 맞을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처음 본 토익에서 755점이 나왔다(WEST 장기 18개월 지원 자격은 토익 750점 이상). 다행히 합격했고, 샌프란시스코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실력을 올리기 위해 두 가지 노력을 했다. 먼저 봉사활동에 꾸준히 지원했다. 내가 있던 샌프란시스코는 환경보호와 히피족의 메카였다. 환경이나 영화 페스티벌의 스태프로 참여해서 다른 스태프들과 영어로 이야기했다.

 

두 번째로, 외국인 룸메이트를 구하기 위해서 1년간 5번 이사했다. 내가 사는 공간에 꼭 외국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프리토킹은, 생각을 거침없이 한국어처럼 말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에 있는 동안 내가 원하는 수준의 프리토킹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물론 원어민과 웃으면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의 영어 수준까지는 끌어올렸지만, 미국 회사에서 일을 할 땐 쭈구리가 되는 레벨이라고나 할까.(웃음) 돌아와서도 꾸준히 노력했다. 지금은 버킷리스트였던 ‘영어 잘하기’를 지울 수 있을 만큼의 비즈니스 영어 실력을 갖추게 됐다.

 

풍족한 날들은 분명 아니었다. 가급적이면 버스를 타는 대신에 걸어 다녔고, 싸게 나온 집이 있으면 한두 달 살다 이사를 했다. 그럼에도 나는 많이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리스크를 두려워했다. 미국에 다녀온 뒤에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얻는 것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하는 것을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도.

 


인턴 + WEST = 근거 없는 자신감

정서린 (26, WEST 9기)

 

 

미국에 가기 전까지 해외 경험은 거의 없었다. 3박 4일 일본에 다녀온 게 전부였으니까. 사실은 목적 없이 학교에 다녔지. 학점도 별로였고 뛰어난 무언가도 없었다. 하지만 바뀌고 싶었다.

 

어디선가 읽은 글귀인데, 인생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라고 했다. 첫째, 만나는 사람을 바꾸기. 둘째, 시간을 달리 쓰기. 셋째, 사는 곳 바꾸기. 답은 이미 나왔다. 해보고 싶은 걸 찾아 무작정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바꾸고 싶었고, 그렇게 나를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WEST에 합격했다.

 

 

미국 뉴욕에 도착한 첫날, 신기함에 두려움을 잊었다. 피부색도, 건물 모양도 모두 달랐다. 어학연수를 거쳐, 주 뉴욕 총영사관에서 2달 동안 일했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Korea Healthcare Industry Development Institute) 미국 지사에서 10개월간 인턴십을 했다.

 

미국의 직장 분위기는 한국과는 달랐다. 피드백을 할 땐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 인턴이어도 자기 일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직책과 상관없이 자기 일은 책임져야 하며, 성과를 내기 위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다른 광고 회사에서 인턴 했던 다른 WEST 참가자는 이렇게 말하더라. “사수로부터 피드백을 받았어. 내게 쭈뼛거리지 말라고 하더라. 실수를 겁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라고.”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빵빵하게 충전됐다. 미국 땅에서 1년 반 동안 살아 남았는데, 어디서든 못 살아남겠나 싶다.

 

인턴 경험을 살려 지금은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예전의 나는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1년을 살다가 돌아오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도 먹어보고, 저곳도 가보고 싶다. 재밌는 것을 모두 누려보고 싶다. 나는 바뀌었다.

 


여행 + WEST = 잊지 못할 추억

권준형 (29, WEST 9기)

 

 

40일간 캠핑카를 타고 미국 42개 주를 돌아다녔다. 버스만 한 캠핑카를 밤새도록 운전해, 하루에 한 주 꼴로 다닌 셈이다. 나는 그때 시카고의 광고기술 회사에서 인턴 중이었고, 회사에선 ‘로드쇼’라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캠핑카를 타고 고객들을 직접 만나러 가는 프로젝트라니. 정해진 인턴 기간보다 더 일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이건 분명 어디서도 얻지 못할 경험이었다.

 

40일 동안 물론 잡다한 일도 많았다. 캠핑카니까 오물을 빼야 하고, 샤워하려면 물도 채워야 한다. 동료 6~7명과 교대해서 밤새도록 운전했다. 캠핑카 에어컨이 고장 난 날에는 속옷 바람으로 운전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어느새 이들의 삶 속에 들어와 있음을 느꼈다.

 

 

낮에는 각 도시 고객들과 미팅을 잡고, 자료를 준비하고, 정말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금요일 저녁에는 깨끗이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클럽이나 바에서 밤새도록 놀았다. 한번은 호텔에서 자고 있었는데, 동료가 모르는 여자와 새벽 3시에 문을 두드리더니 “자리 좀 비켜주면 안 되겠냐”고 말하더라. 호텔 방을 비워주고 해 뜨는 새벽에 캠핑카로 돌아와서 혼자 잤다.

 

 

미국 땅은 넓다. 주의 경계가 바뀔 때면 숲에서 사막으로 바뀌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중에서도 캔자스 시티가 기억에 남는데, 도로시가 나오는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이 된 도시였기 때문이다. 컨트리 음악을 부르고, 밤마다 맥주를 마시며 흥겹게 노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낯선 길 위를 지날 때마다 지구 반대편의 가까운 사람들이 생각났다. 이곳에 함께 있었다면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일상에 지칠 때면 그날들이 떠오른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지도 위에 얼마나 많은 핀을 꽂았는가가 아니었다. 40일간의 여행을 통해, 나는 나를 살게 할 힘을 얻었다.

 


WEST로 떠나고 싶다면?

WEST 장기(18개월) & WEST 플러스(12개월) 프로그램 (너도 지원 가능해!)
기간: 8월 16일~9월 5일
www.worldjob.or.kr에서 참고할 것!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국민 주거고민 맞춤형 해결사 등장!


똑똑한 대학생은 집 구할 때 부동산을 이용하지 않는다

더 똑똑한 국토부 마이홈의 AI 마이봇을 이용한다

 

펜타곤 진호 & 오마이걸 효정의 콜라보 무대가 열린다

인스타그램 @univ20에서 4/18(목)까지 초대 EVENT 진행!

 

‘내가 만드는 해치’ 콘텐츠 공모

총 상금 1,740만원, 4월 24일까지 접수!

 

졸업작품에 2,300시간을 쏟은 동국대생

“완벽하게 끝낼 게 아니라면 시작도 안 했어요”

 

최대 240만 원, 서울시 청년 월세 지원해드립니다

지금 바로 '서울시 청년월세지원' 지원하자!

 

코딩을 무료로 배울 수 있다고?

코딩부터 면접까지 취업 올케어

 

❛지구 반대편에서 할머니의 집밥을 기록합니다❜ 미뇨끼 인터뷰

대한민국에서 우리집 이탈리아의 따뜻한 요리 영상을 만드는 미뇨끼 이야기

 

문화예술 콘텐츠 기획/창작 취준생을 위한 비대면 무료 교육

총 150명 선발

 

미국에서 보낸 1년, 삶을 바꾼 3인

 

미국에서 보낸 1년, 삶을 바꾼 3인

 
시리즈 로즈뷰티

어디서도 보지 못한 친절하고 정직한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