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을 ‘마니아’ 혹은 ‘팬질한다’고 표현하던 시절이 있었다. 호돌이 88 라이트 피우던 시절 얘기다. 이제 ‘팬질’이라던가 ‘마니아’ 같은 단어는 이 바닥에서 거의 사어(死語)가 됐다. 촌스럽다는 얘기다.

 

 

그래서 쓰는 말이 이거다.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 ‘오타쿠(御宅)’에서 파생된 말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대왕상이 기립하고 국립국어원 옥상에서 미사일 발사하는 소리다. 근데 어떡하나. 입에 쫙쫙 달라붙는데.

 

바야흐로 1인 1덕질 시대다. 치킨 좀 먹는다 하면 ‘치덕(치킨 덕후)’가 되고, 화장품 좀 좋아한다 하면 ‘코덕(코스메틱 덕후)’이 된다. 이런 시대에 덕밍아웃을 무릅쓴 4인의 덕후가 있다. 어쩌면 놀라울 수도 있고, 우스울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이럴 거면 네일 샵을 차리지 그랬어

매니큐어 수집 덕후 L양(29세, IT 엔지니어)

 

이 분 최소 네일만 사시는 분

 

매니큐어를 면봉만큼 가진 사람은 처음 봤다.

손이 안 예쁜 게 콤플렉스였다. 여자 손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스무 살 때부터 이것저것 발라대기 시작했다.

 

아, 매니큐어는 하나 다 쓰면 그제서야 새걸 사는 줄 알았다.

그럴 리가. “이게 더 예쁘네?” 해서 사고, “이건 없는 색이었네?”하며 사다 보면 마구 늘어난다. 욕심이 나서 아트 용품도 마련했다. 최근 브랜드 차린 언니한테 선물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놀랍게도 지금이 리즈시절은 아니라고 들었다.
많을 땐 130개 정도 갖고 있었다. 최근 정리하느라 많이 버렸다. 새로 또 사야 하니까 버려야 한다.

 

이렇게 많으면 하도 안 써서 포스터컬러 된 것도 있겠다.

매주 다르게 바르니까 괜찮다. 절대 맨손톱으로 안 다닌다. 컬러만 바를 때도 있고, 스톤을 올리기도 하고, 젤네일도 하고. 퇴근길에 로드샵에 들러 새로운 색상이 나오면, 심사숙고(?)해서 몇 개씩 사 들고 온다.

 

아쉽게도 가장 많았을 때 사진은 없다고. 현재는 많이 버렸다 한다.

 

그렇게 사다 보면 지갑이 금방 가벼워질 텐데?

금전적 비용은… 선물 받은 것도 많고, 오래돼서 버린 것도 많아서…노코멘트 하겠다.

 

잘 몰라서 그런데, 보통 네일 한 번 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
한번 집중하면 영화 한 편 다 볼 때까지 하고 있으니까 두 시간 정도 걸릴 거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지만 중간에 맘에 안 들면 새벽까지 해서라도 바꾼다. 평일에도 얄짤없다.

 

덕질을 하며 향후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방 벽에 커다란 네일장을 만들어 두고 싶다. 매니큐어는 진열해두는 매력이 있는데 그냥 상자에 넣어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어서 속상하다. 언젠가는 마음에 쏙 드는 진열장을 사서 예쁘게 다 전시해놓고, 꽉꽉 채워가고 싶다.

 

 

남덕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걸그룹 트와이스 덕후 P군(30세, 잡지사 에디터)

 

이런 걸 보고 성공한 덕후라고 하나 보다

 

아니, 어떻게 조카 뻘 소녀들에게 입덕을?

산을 왜 오르냐고 묻는다면 거기 있기 때문이겠지. 덕질에 이유가 있다면 트와이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라. 좋아서 좋다고 말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Cheer Up으로 뜨고 나서 입덕한 건가?

데뷔 때부터 마니아였고, 그녀들을 실제로 본 뒤로 더욱 빠지게 되었다. 그 친절함. 눈웃음. 그리고 아름다움. 감히 아름답다는 표현 말고 더 최상급의 표현은 없을까? 아름답ful!

 

조금 무서운데, 사생팬 뭐 그런 거 아닌가?

짝사랑은 그렇다. 혼자서 조용히 좋아하고 속앓이를 해야 진짜다. 각종 굿즈와 상품 구매는 어린 친구들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삼촌 팬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응원하는 것으로 족하다.

 

단지 응원뿐이라면 덕질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대신 그녀들이 나오는 모든 방송을 다 챙겨본다. 정연이가 MC를 보고 있는 <인기가요>를 보기 위해 일요일에는 집 밖에도 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기를 모아놨다가 어느 순간 정말 삼촌들의 화력이 필요할 때 원기옥처럼 쏟아부을 생각이다.

 

화보는 트와이스가 찍는데 귀여운 척은 혼자 다…

 

금전적 소모는 적을 것 같으니 다행이다.

이건 마치 효도하는 데 소모되는 금전적, 정신적, 체력적 비용을 산출하는 것과 같다. 조건 없는 사랑에 ‘소모’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불쾌하다. 난 그저 언제 어디서나 그녀들과 함께할 뿐이다. 내 가슴속에 주님이 있으므로 교회에 가지 않는 것과 같다. 금전적으로 계산? 할 수조차 없다. 사랑하는 데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사랑일 뿐.

 

그런 무한한 사랑의 종착역은 어딜까?

멤버 모두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서 좋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 서태지의 팬들이 그랬다. 신화, god의 팬들도 그렇게 가슴속에 아티스트를 묻었다.

 

보통 팬들은 연예인과 사귀는 걸 꿈꾸지 않나?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결혼하는 것’처럼 허황한 꿈은 없다. 차라리 편의점 알바해서 타워팰리스에 입주하는 게 더 쉽겠다. 트와이스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단지 그뿐이다.

 

 

추억의 덕질?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추억의 아이돌 H.O.T 덕후 P양(28, 회사원)

 

믿기지 않겠지만, 노란 인형의 정체는 문희준이라고 한다.

 

올해로 입덕 몇 년 차인가? 어쩌다 덕후가 되었는지?

우리 애들(…)이 데뷔한 지 20년이 되었으니, 20년 차 덕질 중이겠지. 계기랄 게 뭐 있을까. 우리 애들만 보면 엔도르핀이 팽팽 돌았다. 삶의 활력소가 삶 자체가 되는 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년 전이라니, 요즘 같으면 뽀로로 볼 나이 아닌가.

어렸지만 정말 열심이었다. 팬클럽 활동도 하고 방송 활동도 꼼꼼히 챙기고 사진이나 동영상도 모으고. 그때 녹화한 테이프가 아직도 한 박스 가득 있다. 집 주소, 핸드폰 번호, 단골 가게, 차 번호도 알았는데…

 

아니.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좀 무서울 거야.

강산이 2번 변하면서 덕력이 조금 마모됐다. 지금은 비상시(컴백)를 대비해 총알 장전만 해두고 있다.

 

좋아하는 가수 전집 정도는 다 있는 거잖아요

 

어린 나이에 돈도 엄청 썼겠다.

가진 돈, 시간, 체력 모두를 쏟아부었다. 학창시절 24시간 내내 덕질로 바빴다고 하면 상상이 되려나.

 

공부나 열심히 할 걸 하고 후회되진 않나

수능도 망쳤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때가 온다는 걸 알았으니까. 요즘은 내 돈 좀 가져가 달라고 엉엉 울 뿐이다.

 

휴덕 중인 지금, 딱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다섯이 하는 콘서트 가는 게 소원이다. ‘우혁 부인’ 같은 유치한 닉네임은 졸업했지만, 그 소원만은 버릴 수가 없다. 방송국에 입사해 같이 일하겠다는 꿈도 꿨지만, 지금은 비루한 회사원일 뿐이다. 길에서 우연히 발견해 몰래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는 소소한 계를 바라지만 덕후는 계 못탄다며…?

 

 

국민메신져가 자극한 덕심

카카오프렌즈 이모티콘 덕후 C모 군(32세, 잡지사 에디터)

 

조카들이 놀러 오면 비상 걸릴 듯

 

어쩌다 이런 아기자기한 캐릭터에 입덕을?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카톡에서 제공하는 기본 이모티콘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쓰다 보니까 정이 붙었다. 사실 카톡을 써서 그렇다. 네이버 블로그를 열심히 했으면 잇님들이랑 서이추하며 라인프렌즈를 더 좋아했을 듯.

 

카톡에서 쓸 수 있는 이모티콘이 많은데 왜 굳이 카카오프렌즈였나?

귀여움, 사랑해, 슬픔 이상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이모티콘이 별로 없다. 얘넨 연인에 대한 악감정, 상사의 짜증, 지각의 급박한 순간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한다. 연기력이 송강호 최민식급이다. 메소드콘이다.

 

요즘 캐릭터 상품이 많이 나오던데, 지출이 많겠다.

초반엔 그럴 일이 별로 없었던 게 카카오프렌즈는 캐릭터 상품을 원래 잘 못 만들었다. 정품 인형도 조카가 미술시간에 만든 봉제인형 같았다. 그런데 요즘 업체가 바뀌면서 품질이 엄청 좋아졌다. 잘 팔리니까 잘 만들기 시작한 거다. 최근 나온 후드라이언은 봉제인형 장인의 손길이 느껴질 정도다. 역시 돈이 최고다.

 

여자친구 선물로 입양 보냈다는 후드라이언

 

가진 상품 중에서도 라이언이 많다. 편애하는 거 아닌가.

요즘 라이언이 잘 팔리니까 카톡에서도 엄청 밀어주더라. 덕질하는 입장에서 가릴 게 뭐 있나. 만들어 주는 대로 사야지 뭐.

 

카카오에 바라는 게 있다면?

지난 달에 옆동네 L사 캐릭터가 칼 라거펠트랑 콜라보해서 나일론 표지를 찍었다. 카카오도 에잇세컨즈와 VDL에 그칠 게 아니라 당장 알렉산더 왕과 MAC 본사에 전화해서 콜라보를 문의했으면 한다.

 

향후 덕질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올해 9월엔 영화 <고산자> 개봉을 기념해 경기, 인천, 부산, 경남 등 전국 팔도에 있는 카카오프렌즈샵을 돌아볼 예정이다. 카카오 공채도 틈틈이 확인하고 있다. 실은 지금 직장이 대학내일인데 익명으로 해 줬으면 한다. 강남 카카오샵에 내 흉상 세우는 게 인생의 목표다.

 


 

이런 덕질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성덕(성공한 덕후)’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다른 연예인들을 덕질하다가 결국 연예인이 되었다거나, 덕질로 돈을 많이 벌어서 고급 덕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좋다고 한 짓이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며 수익을 내기 시작한 거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이런 걸 발견했다.

 

클릭하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광고 아님.

 

엠비씨 플러스랑 방송문화진흥회에서 개최했다 한다. 영상제작이 일반화된 시대 대학생들에게 우수한 영상물 제작의 동기를 부여하고 시상함으로써 차세대 방송인을 육성한다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돈을 준다. 덕질을 정성스레 인증해서 응모한 뒤, 당선되면 최대 500만 원 상당의 상금을 준다. 300만 원, 100만 원 짜리 상도 있다.

 

이런 걸 보면 덕질은 더 이상 소모적인 일이 아니다. 덕밍아웃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면 지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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