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애들 보면 말 끝나기도 전에 “왜?” “왜에?” “왜에에에?” 하는데 내가 어릴 때 딱 그랬다. 원체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그래도 울아빠가 늘 친절하게 대답해줘서 그런지 여태껏 나이가 먹도록 쓸데없는 것도 궁금한 게 많다.

 

근데 영화 보면 꼭 호기심 많은 애들이 제일 먼저 죽잖아? 내가 좀 그런 케이스인데 그 호기심때문에 지금 죽을 것 같다. 결국 해서는 안될 콘텐츠를 시작했는데…

 

 

 

얼마 전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봤다. 영화 자체에 대한 감동 이런것보다 김정호 선생님은 정말 전국 방방곡곡을 걸어다니며 지도를 만드셨을까 궁금해졌다.

 

저렇게 정교한 지도를 정말 ‘걸어서’ 그릴 수 있을까? 인간의 힘으로? 한 일주일 동안 그 궁금증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이 콘텐츠를 탄생시키고 마는데….


본격 사서 고생 프로젝트 ‘걸어서 지도그리기’

 

부제 :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 지 그 곳은 어딘지 알수 없지만 알수 없지만 알수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장소 – 북촌한옥마을

북촌으로 떠납니다. 공격을 준비하십시오.

 

장소는 ‘북촌한옥마을’로 정했다. 고산자에 맞는 T.P.O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몇 번 가보긴 했지만 익숙지 않은 길이어서 무지한 상태로 지도 그리기에도 딱이라 생각했다.

 

선배 에디터가 경로를 정해줬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선배 뒤만 쫄쫄 따라갔다. 근데 북촌을 간다더니 삼청동으로는 왜? 결국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야 시작점에 도착했다. 선배가 해맑게 말했다. “자, 여기부터 시작이야”

 

이미 힘이 다 빠져서 그냥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 끝냈어야 했는데…


환복타임

 

 

그래도 시작하기로 했으니까 이왕 하는거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김정호 선생님의 정기를 받겠다며 F/W 김삿갓st. 옷까지 빌렸다. 정성도 이런 정성이 있을까. 분명 준비할 때만해도 재밌겠다며 기분이 좋았는데 막상 옷을 입으려니 망설여졌다.

 

근처 주차장에서 주섬주섬 옷을 입는데 관광객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한마디씩 했다. 심지어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뭐라뭐라 하는데 못알아들어서 더 수치심이 몰려왔다. 예쁘다는 말은 아닐 테니까.

 

하필 날이 더워서 똥머리를 하고 나왔는데 당장 “동학을 아십니까”라고 물어봐도 괜찮을 비주얼이라 더 창피했다. 오랏줄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다고 말하는 선배가 얄미워서 곤장을 치고 싶었다.

 

여러분!!! 대학내일 에디터가 이렇게 극한직업입니다!!! (쩌렁쩌렁!!!!)


지도 그리기 시작

 

입은걸 다시 벗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마음을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지도를 그려나갔다. 선배가 ‘자신있냐’며 도발했다. 자신? 당연히 있지. 어릴 때부터 적성검사를 하면 공간지각능력이 굉장히 높게 나오는 편이었다. 주사위 물음표에 들어갈 숫자 맞추기 이런거 엄청 좋아한다. 난 지도만 있으면 처음 가는 길도 헤매지 않고 찾아다녀서 길치 같은 건 이해 못 하는 사람이다.

 

자랑을 좀 더 하자면, “앞에 뭐가 보여” 했을 때 “어… 전봇대?” 이러는 친구가 이해 안 된다. 주차도 곧잘해서 라인 딱 맞춰 세우면 조인성 콧날보다 각이 서 있다. 아주머니에게 길 안내를 해 주면 옆에 있던 고등학생이 듣기평가인 줄 알고 플러스펜을 꺼내곤 했다.

 

김정호 선생님 정도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길이 어느 방향이고 어디랑 이어지는 지 까지는 그릴 수 있지 않을까? 빨리 끝내버릴 생각 뿐.

 

 

시작 10분 경과. 대동여지도가 ‘발로 그린 지도’라는데 나는 지도를 정말 발로 그리고 있었다. 아까 옷 갈아입기 전에 도망칠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땡볕 아래서 지도를 그리는 것보다 참기 힘든 건 호기심 가득한 외지인들의 시선이었다. 여긴 한국인데. 지금 난 북촌 어디에 있는 사람보다 한국적이란 말이다. 아, 물론 600년 전 한국.

 

선배는 “너는 지금 조선 최고의 지도꾼이요, 자랑거리가 됐으니 자부심을 가져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최고의 구경거리기도 하고.ㅇㅇ.”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그래도 하기로 한거 끝을 내야 하는데’, ‘아 왜 선배랑 같이왔지. 도중에 포기할수도 없게’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보니 이제 주위에서 쳐다보는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조금 즐기는 단계까지 왔다. 포기하겠단 생각을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한옥마을 길은 생각보다 반듯하게 잘 나있어서 지도 그리는 게 어렵진 않다. 평소 사람 많은 곳을 가면 거의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예민해지는데 관광객들이 있어도 붐비는 편은 아니라 한적해서 작업하기엔 좋다.


장애물

 

 

마음을 비우고 나니 또 다른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옷. 날이 많이 선선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낮 기온은 여름 아닌가. 한복 바지에 저고리에 꽤 두꺼운 두루마기까지 걸치고 머리에는 삿갓을 쓰고 나니 마치 사우나에 온 듯 했다.

 

온 몸의 땀구멍이 개방됐다. 겨드랑이엔 청계천이 흐르고 등은 점점 젖어들고 있었다. 삿갓때문에 두피열도 빠져나가지 못해서 두통이 올 지경이었다.

 

 

게다가 짚신은 어찌나 불편한지. 이걸 신발이라고 신고 다니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했다. 발바닥에 땅의 촉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멘트에 박힌 돌이 몇 개인지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

 

심지어 오르막길에서는 자꾸 미끄러져 발을 질질 끌면서 올라가야 했다. 소싯적 워킹 좀 했던 차승원이 왜 영화속에서 지팡이를 들고 다녔는 지도 알았다. 다시 한 번 조상님들 리스펙.


점심시간

 

 

땀도 한바가지 흘리고, 짚신 때문에 온 발에 신경을 집중하다보니 금방 허기가 몰려왔다. 야심차게 준비한 레알 주먹만한 밥을 꺼-내-먹↗어↗요↘. 와, 꿀맛. 들어간 거라곤 밥, 소금, 참기름, 참깨 뿐인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사극에서 보면 저런 주먹밥을 허겁지겁 먹는 장면이 인상깊어서 똑같이 허겁지겁 먹어봤다. 주먹밥 맛있게 먹고 싶으면 양손으로 잡고 정신 없이 허겁지겁 먹어보길 추천한다.


멘붕의 시작

 

 

 

밥까지 먹고 힘내서 박차를 가했다. 선배가 거의 다 끝났다며 웃는데 의미심장했다. 자꾸 내가 그린 지도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분명 지도 외곽선은 제대로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시작선과 끝 선을 어떻게 이어야 할 지 난감했다. 거리를 제대로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설상가상 선배를 따라갈수록 이 길이 어딘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린 지도대로라면 이런 길이 있을 리가… 멘붕은 몰려오고, 하필 그 골목에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서서 모두 나만 바라봤다.

 

 

“자, 이 골목만 돌면 돼”

 

선배가 또 다시 이상한 미소를 지으면서 러브하우스 소개하듯 손가락으로 골목 끝을 가리켰다. 뭐에 홀린듯 따라갔는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꺾었던 골목길이었다. 선과 선이 연결되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 와, 이제 어디가서 공간지각능력 어쩌구 운운하면 안되겠구나.

 

그 와중에 예쁘게 차려입은 커플 보고 성질이 났다. 지팡이를 들고 류승룡 기모찌!를 외치려다 말았다.


깨달음

 

 

 

우여곡절 끝에 지도를 완성했다. 그래도 진짜 지도랑 비교하니 꽤 잘 그린 편 아닌가. 나름 비슷하지 않음? 저기 걷는 데 약 한 시간 정도 걸린 듯. 사실 걸어서 지도 그리기는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집중력이나 거리감이 꽤 필요한 일이다. 처음이라 쉽게 봤는데 실수한 게 꽤 많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걸어서 지도를 그리고 싶은 이가 있다면 하지 마. 참고할 수 있는 팁을 주겠다.

지도 그리기 TIP

1 발걸음으로라도 거리를 재라. 보다 정확한 지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2 눈에 잘 띄는 건물은 표시해 두자. 다시 돌아왔을 때 현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3 연필로 그릴 때는 지우개를 지참하자. 잘못 그린 길을 지우고 다시 그려야 깔끔하다.

4 주먹밥은 좋은 식사다.

5 한복을 입을 필요는 없다. 아니, 입지 마라.

 

이상. ‘걸어서 지도그리기’를 사랑해주신 시청자(독자)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속편은 없음.


Photographer 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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