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음식도 아니고, 동아리에 손이 왜 이렇게 많이 가냐”. 동아리 회장을 맡더니 친구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흡사 시국을 개탄하는 왕의 얼굴과 같다. 동아리 리크루팅부터 엠티, 주점, 정기공연까지 쉴틈이 없단다. 이쯤 되니 회장인지 부역 노예인지 헷갈릴 정도.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처럼 다 죽어가는 친구를 위해, 동아리 좀 굴려봤다는 이들에게 비법을 전수 받았다. 혹, 동아리 회장 감투를 노리고 있다면 일단 공유부터 해 두시길.

 


1. 힘들면 힘들다고 생색을 내자

 

동아리 회장 일은 집안일과 비슷하다. 고생스럽게 해도 티가 안 난다. 남몰래 한 선행은 정말 남들이 모르고, 왼손이 한 고생은 오른손이 죽어도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 “나 고생한다!”고 말을 해야 한다. 회장씩이나 돼서 징징거리는 것 같아 입 꾹 다물고 있으면,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넋두리나 원망을 하라는 게 아니다. 힘든 점과 바라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라는 것이다. 동아리 운영에서 이런 점이 힘들고, 그래서 이렇게 도와주면 좋겠다, 는 식으로. 혼자 끙끙 앓다간 축적된 스트레스와 만성피로로, 성인병은 물론 회장 하기 ‘실어증’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 만취 상태에서 “이게 무슨 팔자에 없는 개고생이냐!”라며 울분을 토하는 건 곤란하다.

 


2. 돈에 있어선 원칙주의자가 되자

 

동아리 회장치고 사비 털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아파서 못 온다는데 어떡하냐… 엠티비는 돌려줘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션도 감격해 눈물 흘리는 기부 천사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돈에 대해서는 부원 간에 합의된 규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진동아리 부회장을 맡았던 김*형 씨는 “규칙의 핵심은 디테일”이라고 말한다. 최대한 자세하게 정해야 부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막을 수 있다고.

 

규칙을 정한 다음엔 ‘신성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 규칙은 엄격 근엄 진지하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는 인식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규칙을 반복적으로 공지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만약 따로 총무를 둘 거라면 최대한 고학번에게 맡겨라. 잡일로 치부해서 저학번에게 떠넘겼다간, 선배들에게 회비 구걸하다 동아리 때려 치는 총무를 보게 될 것이다.

 

+ 이 정도 했음에도 갠톡으로 연락해서 사정 봐달라는 염치 무소유자들이 반드시 있다. 여기에 내 띠부띠부씰 전체를 걸어도 좋다. 사실 이들에게 맘 약해지지 않는 게 핵심이다.

 


3. 회장과 부회장은 다른 역할을 맡자

 

본디 동아리의 회장과 부회장은 눈빛만 봐도 똥 쌀 타이밍까지 맞출 만큼(※아닙니다) 돈독해야 하지만, 둘이 맡은 역할만은 달라야 한다. 즉 한 명이 당근을 준다면 다른 한 명은 채찍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회장과 부회장 모두 싫은 소리 못 하는 성격이라면, 비글마냥 날뛰는 부원들을 감당하지 못한 동아리가 산으로 갈 것이다. 반대로 둘 다 부원을 쥐 잡듯 잡는 성격이라면 동아리 회식은 회장과 부회장 단 둘이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벤트동아리 회장이었던 김*희 씨는 취임식에서 “제가 총대 메고 동아리의 악마가 되겠습니다”라고 야무지게 선포했다. 대신 사회성 만렙인 부회장을 고용(?)해서 공포정치가 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췄다.

 


4. 목표와 방향성을 공유하자

 

신기하게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이걸 왜 하는지 알고 하면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동아리 활동을 할 때도, 부원들에게 목적이나 방향성 같은 큰 그림을 공유해주면, 적어도 ‘여긴 어디, 난 누구’라고 헤매지는 않는다.

 

강연기획문화동아리의 회장을 맡았던 한*지 씨는 “함께 목표를 공유해서 부원들이 동아리 일을 자기 일처럼 느끼게 하도록 애썼다”고 말했다. 발표연합동아리 회장을 맡았던 정*석 씨도 “부원들이 목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분기별로 동아리의 방향성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목표를 공유할 땐, 각자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도록 명확한 문장을 써야 한다. 그럴싸해 보이려고 ‘스타일리쉬한 느낌적인 느낌의 대학생활을 하자’ 같은 애매한 문장을 썼다간 동상다몽(同床多夢)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5. 공지방은 청정구역으로 남기자

 

알바 구함부터 교재 급구, 밥 메이트 찾기까지 스팸 문자가 따로 없다. 카톡이 200개, 300개씩 쌓인 공지방은 제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 다들 공지는 아웃오브안중이고 단톡방에선 아무 말 대잔치가 벌어진다. 결국엔 공지 못 봤네 어쩌네 하는 사람이 한두 명씩 꼭 생기고 만다.

 

공지방은 섬진강 1급수처럼 맑고 깨끗해야 한다. 공지와 확인 답장 외의 내용은 존재하면 안 된다. 확인 답장을 하는 이유는, 공지를 못 봐서 회의에 늦었네, 할 일을 못 했네 하는 핑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 굳이 떠들고 싶다면 잡담 전용 카톡방을 따로 만드는 게 낫다.

 


6. 중간기수를 잘 챙기자

 

야속한 회장! 신입 땐 별도 달도, 아니 슈퍼문도 따다 줄 것처럼 굴더니 지금은 모임에 오든 말든 1도 관심이 없다. 구멍 난 엠티비 메워주는 역할로 전락한 듯한 느낌은 기분 탓만은 아닐 거다.

 

신규고객 유치에 눈이 멀어 충성고객 빠져나가는 줄 모르는 건 통신사(의문의 1패)로 족하다. 튼실한 동아리를 만들려면 활동 1년 차에서 2년 차 정도의 중간기수를 잘 챙겨야 한다. 중간기수는 동아리 돌아가는 데도 빠삭하고 신입을 이끌 능력도 있는, 말하자면 게임의 궁극기 같은 부원이기 때문이다.

 

연합광고동아리 회장을 맡았던 김*규 씨는 중간기수가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중간기수의 엠티를 따로 추진했다. 활동 2년 차인 부원만 모아 엠티비의 절반을 지원해줬다고. 모임도 주로 중간기수가 사는 곳 주변에서 가졌다.

 


p.s.

팁을 알려달라 했더니 동아리 회장 열에 여덟이 한숨부터 쉬더라. 생각해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다. 돈 받는 것도 아닌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못 하면 욕도 먹으니. 앞으로는 회장님을 긍휼히 여기고 친절하게 대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동아리 잘 굴리는 최고의 팁은 부원들의 협조라는 교과서적인 말을 남기고 이만 총총…

 


Director 김혜원

Illustrator 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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