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어’하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말들이 있다.

“나 화 안 났는데?”,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외계어보다
해석하기 까다로워 남자를 곤란하게 만든다고 여겨지는.

그러나 개그의 소재로 희화화 되는 여자어 말고 우리가 알아야 할 언어는 따로 있다.

부당한 일을 겪거나 불쾌함을 느꼈을 때 내 몸과 마음을 지켜줄 언어.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쓴 이민경 작가에게

진짜 여자어에 관해 물었다.

페미니스트 이민경

 

 

‘강남역 사건’에 흥분하는 저를 보고 아빠가 한 마디 하셨어요. “네가 화낸다고 바뀌는 건 없어. 네가 죽은 것도 아닌데 그만해라.” 그 발언에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 답답했어요.

제 주변의 많은 여성 분들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책 쓸 생각도 없고 비전공자였던 제가 9일만에 이 책을 쓰게 됐죠. 우리나라 여성들은 권력적으로 약자인 동시에 혹시라도 틀린 답을 말할까봐 쉽게 입을 열지 못해요. 지금 여성들에게 필요한건 지식을 안으로 쌓는 연습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조금씩 말을 내뱉을 수 있게 도 와주는 방법인거죠.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는 책 제목에 끌렸어요. 여성에게 언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평상시에는 남녀 간의 힘 차이나 권력 관계를 모르고 잘 지내요. 상대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두려워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차별에 대한 대화를 할 때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씁” 하면서 여성의 발언을 막거나 “야, 근데 이건 좀 아니다”라고 싸늘하게 말해요. 남성의 기득권이 확 드러나면서 남성의 발언만 근거 있는 쪽으로 받아들여지죠. 그래서 여성의 언어가 필요해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없었던 자기 결정권을 가져오기 위해서죠.

 

 

자기 결정권을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자기 걸온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사소한 취향부터 생살여탈권까지도요. 페미니즘을 하고 나서야 부정적인 말이나 틀에서 벗어난 표현을 여성이 꺼내기 시작했어요. 여자의 ‘No’를 튕긴다고 받아들이던 남성의 시선에 저항해서 더 확실히 드러내는 거죠.

 

“무슨 말을 못하겠네”라는 말을 하는 남성들이 있는데, 그 말이라는 건 혐오 발언을 뜻해요. 여성이 자기 결정권을 지킴으로써 혐오 발언을 할 남성의 권리가 침해됐다? 이 말은 이상하잖아요? 애초에 작은 혐오도 하지 않는 게맞는 거죠. 사실 불쾌한 티를 내고 싶어도 주변에서 “쟤는 예민해”라거나 ‘프로불편러’라고 수근댈까봐 주저하고 참을 때가 많아요.

 

일단은 자기 검열을 좀 더 내려놓으면 좋겠어요. ‘나 이렇게 말해도 될까?’라면서 자기 안의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물어보고 눈치를 보죠. 그 누군가는 가부장적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 자아인데, 내가 먼저 겁을 제거하고 밖으로 얘기해야 자신은 물론 다른 여성을 불쾌하게 만들던 것도 막을 수 있어요.

 

내가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여성이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막았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끼리 먼저 연대하는 노력이 중요하죠. 그런데 오히려 피해자 여성에게 “속상한 거 아는데 네가 참아. 걱정돼서 그래”라고 만류하는 여성들도 많은데….

 

“네가 피해 볼까봐 그래”라는 말속에서 피해라는 건 비난 받을 우려거든요. 하지만 비난 자체를 없애야지, 불편한 주제를 힘겹게 꺼낸 상대를 제지하면 2차 가해가 발생해요. 그러니까 여성이 소리 내서 말하는 걸 독려해주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거기에다 여성은 친절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 왜 화를 내?’라는 비난을 더 쉽게 받잖아요. 그래서 제 책의 절반 이상이 ‘당신에게는 대답할 의무가 없다’는 내용이에요. 우리는 누군가 대화를 걸어올 때 어떻게 말할지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대화를 종료하는 선택지는 생각해보지 않잖아요.

 

남성들이 “여혐이 남혐 때문에 심해지던데?” 혹은 “왜 과도한 일반화를 해?”라고 물었을 때, 차별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친절한 대답을 해야만 했죠. 입을 닫자는 말은 정말 입을 열어야 할 순간에 열어야 한다는 걸 뜻해요. 일단 닫았다가 여는 것과 계속 열려 있는채로 자괴감을 느끼는 건 완전히 다르니까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쟤는 뭣도 모르니까 입을 다물고 있네’라는 부정적 시선을 받지 않을까요?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과의 소모적인 대화를 종료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에요. 기분 나쁜 의도가 담긴 질문이나 딴지 걸기식의 질문에는 에너지를 아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단호한 태도가 필요해요. 원하지 않는 상황이 닥쳤을 때 참지 않고 단호하게 행동하면 실제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순간에 입이 트이는거죠.

 

 

단호한 태도를 갖는 게 쉽지만은 않아 보여요.
‘강남역 사건’ 이후 페미니즘을 모르던 여성들도 불안함을 느꼈던 건 언젠가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남성은 제외돼 있잖아요. 칼부림 하는 사람은 그 대상이 페미니즘에 친화적이냐 적대적이냐를 따지지 않아요. 그저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을 죽이는 랜덤게임인 거죠. 그 자리에 남성이 있으면 빗겨나가는 거고요.

 

그래서 지금 당장 직면하지 않으면 언젠가 자신에게 덮쳐온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구조적인 폭력을 없애려면 다 같이 이탈하는 방법 뿐이에요. 한 명의 여성이 자력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니까요.

 

 

차별이나 페미니즘에 관해 대화하고 싶은 상대가 있을 때 어떻게 입을 열면 좋을까요?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면 분명 속상한 대답을 들을거예요. 사상을 검증하는 질문이 아니라 옆에 서서 바라봤을 때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게 좋아요.

 

“이런 사건이 벌어졌고 내가 이런 걸 느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을 했어. 그 사람들이 대체 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라고 묻는거죠. 다른 각도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공격을 가하지 않으며 대화할 수 있거든요.

 

Intern 이연재 jae@univ.me

Photographer 이서영 perfectblu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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