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마치지 못한 일은 마음에 계속 떠오른다. 예전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나에게 전화로 헤어지자고 했다. 우리 사이는 좋았던 것 같은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왜인지는 모른다. 지금 너희 집 앞에 가겠다며 붙잡아도 봤지만 냉랭한 카톡만 돌아왔다. 이마저도 나중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 일은 몰라서, 3개월 뒤에 연락이 왔다. 그는 다시 만나자고, 정말 잘해주겠다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 왜 헤어지자고 했었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별의 이유는 아직도 비밀에 싸여 있다.

 

얼마 전에 그가 결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끔은 궁금해진다. 그날 내가 ‘그래’라고 말 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너 그때 왜 그랬냐고 깊게 물어봤다면 몇몇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을까? 완성되지 않은 기억은 마음속에 계속 맴돈다. 심리학에 따르면 ‘자이가르닉 효과’ 때문이다.

 

러시아 심리학자 자이가르닉은 웨이터들이 주문 받은 메뉴를 헷갈려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카페 종업원은 동시에 여러 가지 주문을 받아도 모조리 기억한다. 하지만 서빙이 끝나면 자몽 주스를 시킨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까먹는다. 사실은 자몽 주스였는지 아포가토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암기력이 좋았던 종업원은 왜 그렇게 빨리 모든 것을 잊었을까? 완료된 정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이미 끝난 일을 쉽게 잊는다. 마무리가 되지 않으면 긴장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지속돼 잔상이 남을 수 있다. 첫사랑을 쉽게 잊지 못하거나, 끔찍한 사고를 겪은 뒤에 계속 떠오르는 ‘플래시백(flashback)’을 경험하거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1위는… 30초 후에 공개합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확실히 끝나지 않은 사건은 계속 떠오르고, 반복되고, 상상을 더해 몸집을 불려간다. 확실한 결론의 밑바닥까지 달려가느냐, 여지를 남기고 사느냐. 나는 후자 쪽에 가까웠다. ‘그랬 더라면 잘했을 거야~’라고 여지를 남기면 사람의 몸과 마음은 편안해진다. 일단 하기만 했으면 분명 잘했을 거라고, 안 해서 못 한 것이지 내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위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단골 레퍼토리는 이것이다. “나 고등학교 때 공부 열심히 안 했어. 제대로 했으면 진짜 잘했을걸?” 전력 질주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끝까지 가지 않으면, 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편하다. 어쩌면 한계에 부닥쳐서 엉엉 울 수도 있었을 나의 부끄러운 모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도 있고, 나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다.

 

치사하고 더러운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은, 밑바닥을 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기억은 어떻게 완료될 수 있을까? 먼저 나 자신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고등학교 땐 공부 말고도 재미있는 게 많았어. 특히 음악실에서 빈둥거리길 좋아했지. 시험기간에 영화 보는 것도 좋아했고. 내게 재밌는 것들을 즐기며 살았어.” 후회할 필요가 없는, 내겐 더없이 소중한 학창 시절이다.

 

대학 1~2학년 때도 깊게 들어가진 않았다. 사실 내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우리 사이에 유행했던 ‘버킷리스트’다. 대학 전공을 정치 외교학으로 결정했던 이유는, 외교부 공무원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 했던 외국 펜팔이 정말 재미있어서, 도쿄에 사는 미유키 짱에게 받았던 레토르트 미소시루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외국에서 사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외교관 시험이 어디 쉽나. 젊음을 엿기름처럼 짜내어 따끈따끈한 떡을 만들어야 하는 ‘고시’ 아닌가. 불확실한 게임에 뛰어드는 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했다. 정 안 되면 교직이수를 하면 되지, 그래서 전공 선택은 쉽게, 순식간에 끝났다. 나와 함께 외교부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는 1학년 때부터 시험을 봤다. 4년 연속 1차에서 떨어졌고, 5년째에 처음으로 1차에 붙었다.

 

그런데 2차 시험을 앞두기 보름 전에 친구가 살던 고시원에 불이 나서 옷가지 와 침대와 식권이 몽땅 타버렸다. 충격을 받은 친구는 병원에 다녔다. 2차에서 떨어졌고 다음 해 다시 1차 불합격…. 나는 친구를 보면서 내심 다짐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확률이 낮은 게임에 목숨 걸지 말아야지. 될 놈은 언젠가는 되겠지. 외무고시는 내 버킷리스트에 어정쩡하게 남아 있었다.

 

친구네 고시원에서 불이 난 지 1년 반쯤 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가 내 신원 보증 좀 해줘. 공무원에 합격하면 그래야 한대.” 친구는 지금 외교부에서 일한다. 나는 물었다. “하면서 안 될까봐 무섭지는 않았어?” 친구가 답했다. “안 됐으면 뭐 먹고살았을까 돌이켜 보진 않아. 나는 해볼 만큼 원 없이 했고, 지금은 됐잖아.”

 

죽을 각오로 했으면 나도 됐을 거라는 레퍼토리로 날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 시험을 끝까지 해보지 않았던 나를 탓할 생각도 없다. 왜냐하면 ‘공부 하기 싫다’는 내 마음도 진짜였으니까.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는 ‘자이가르닉 효과’를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다. 만나고 싶은 여자가 생기면 달콤한 말을 늘어놓아 어떻게든 만난다.

 

버찌를 먹고 싶으면, 질리고 물릴 때까지 실컷 먹는다. 그래야 나중에 버찌 생각이 안 나기 때문이다. 조르바의 말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내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뭐하는가? 잠자고 있네. 잘 자게. 일하고 있나? 그럼 열심히 일하게. 지금은 뭐하고 있나?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진지하게 노력하면 ‘노력충’이 되고, 못 하겠다고 말하면 ‘쿨하다’고 여겨지는 요즘. 노력충이 될지라도 하고 싶었던 것은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다.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버리려고 한다. 하지 못한 일을 리스트 안에만 묵혀둔 채, ‘언젠간 해 보겠지’라며 나를 안심시키지 않으려는 거다.

 

대신 지금 내 마음에 떠오르는 일들을 바로바로 하며 살고 싶다. 얼마 전부터 클라리넷을 배운다. 중 2때 <비욘드 사일런스>라는 영화를 보고, 10 년 넘도록 버킷리스트에 넣어뒀던 그 일을. 목표는 ‘클라리넷 잘 부는 할머니’. 잘 못해도 좋으니 30년이고 40년이고 천천히 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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