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시켜 먹을까. 어제도 먹었는데’
기숙사 침대에 누워 야식으로 어떤 메뉴를 간택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기숙사 로비에 치킨 받으러 가기도 귀찮다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고등학교 기숙사에 살 때가 떠올랐다. 그땐 배달음식 갖고 들어오기가 공항에서 수입금지품목 반입하기만큼 어려웠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치킨 냄새 풍기며 먹을 수 있다니.
아, 고등학교 기숙사 살 때랑 많이 달라졌구나. 난 간장 치킨 한 마리를 주문하며 고등학교 기숙사와 대학교 기숙사의 차이점을 요목조목 따져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선 모두 같은 시간에 깼다. 16비트의 기상 송과 사감 선생님의 방문 난타가 귓가를 때리면, 졸리건 짜증 나건 무조건 일어나야 했다. 당연히 지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감 선생님께서 신실한 기독교 신자셨던 J씨는 매일 아침 기상 송으로 CCM을 들었다. 기분이 좋으실 땐 직접 색소폰 연주를 해서 깨우기도 하셨다고. B씨는 어떻게든 더 자보려고 사감 선생님의 눈을 피해 책상 밑에 구겨져서 자기도 했단다.
대학생은 시간표에 따라 기상 시간이 각자 다르다. 고로 룸메가 자든 말든 건드리지 않는다. 다만 룸메의 알람 소리에 내 잠과 고막을 내어주게 생겼을 땐 룸메를 깨우기도 한다. 지각과 결석이 잦은 것도 고등학생 때와는 다른 점이다. 왠지 ‘5분 만에 강의실에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 수업 10분 전까지 침대에서 버틴다. 늦잠을 잤을 땐 ‘이런 이런 수업에 늦었잖아, 차라리 안 가는 게 낫겠어!’ 하며 10초 만에 합리화를 끝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 들기도 한다.
고등학교 기숙사 친구와는 필통에 샤프가 몇 개인지도 아는 사이였다. 수업도 같이 듣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면서 저절로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아침 인사로 모닝 똥의 안부를 묻고 떡진 머리도 자연스럽게 여길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그땐 공부만 아니면 뭘 해도 꿀잼이었다. 야자 시간에 친구와 수다를 떠는 기쁨은, 사막에서 코웨이 정수기를 발견한 기쁨과 맞먹었다.
대학교 기숙사 룸메는 한 방에 살아도 볼 일이 별로 없다. 같이 수업을 듣지도, 밥을 먹지도 않으니까. 기껏해야 아침저녁으로 볼 수 있다. 그마저도 방에 돌아오면 피곤해서 혼자 쉬고 싶을 때가 많다. 길어야 6개월 볼 사이라는 생각에 친해지려 하지 않기도 한다. B씨는 같이 살았지만, 외박계를 써달라고 부탁할 때 빼곤 룸메와 얘기할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성격이 잘 맞아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가뭄에 콩나듯 있긴 하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선 점호 후에 소등을 했다. 불이 탁, 꺼지는 순간 하루 중 정신이 가장 또렷해지고, 자는 친구를 깨워 뭐든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K씨는 화요일 밤마다 룸메와 보드게임을 했다. 플래시를 켜고 빛이 새나가지 않게 이불까지 걸어 놓아서 흡사 불법 도박장을 방불케 했다고. 밤에 배달음식을 시켜먹은 썰도 많다. 쓰레기통 비우는 척하며 몰래 치킨을 담아왔다는 썰, 창문 밖에서 배달 아저씨가 피자를 줄에 매달아 주면 끌어올려서 먹었다는 썰. 그냥 먹어도 맛있는 치킨에 몰래 먹는 스릴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대학교 기숙사의 밤은 조용, 아니 휑하다. 내가 기숙사에 있는 날엔 룸메가 없고 룸메가 있는 날엔 내가 없다. 아, 엇갈린 너와 나의 데스티니… 룸메가 들어오지 않아 혼자 잠드는 날이면 자유로움과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물론 대학교 기숙사에도 통금이 있다. 하지만 바른 생활의 참 스승이셨던 사감 선생님이 계시지 않아서일까, 통금 시간을 어기는 날이 잦다. 외박계만 쓰면 벌점을 손쉽게 면할 수 있는 것도 한 몫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기숙사생에겐 주말이 없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다녀오긴 했지만 주로 종일 자습을 했다. 사실상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가 아닌가 싶다. 과거의 우리 자신에게 치어-ㄹ쓰☆. C씨는 도저히 공부 못 해먹겠다 싶을 땐 PMP로 축구경기를 봤다. 선생님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이어폰을 체육복 안쪽에 숨기곤 했다고.
대학교 기숙사생의 주말은 둘로 나뉜다. 밖으로 놀러 다니는 ‘호모 루덴스’와 이불 밖을 무서워하는 ‘호모 누웠스’. 전자는 주말을 최대한 활용해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러 다닌다. 후자는 거의 온종일 렘수면 상태에 있다고 보면 된다. 고등학생 때보다 집과 기숙사의 거리도 멀어서 그리고 귀찮아서 집에 다녀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등학교 기숙사는 학생들만의 섬이었다. 부모님도 입∙퇴실 할 때만 들어오실 수 있었다. 다른 방에 가서 논 적은 있었지만 외부인을 재워주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학교라는 감옥’이란 진부한 펀치라인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나 보다.
대학교 ‘기숙사’라 쓰고 게스트하우스라 읽는다. 허술한 경비를 틈타 외부인을 재워주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시험 기간과 개총 시즌엔 재워달라는 동기들이 어찌나 많은지. 예약제를 해야 하나 고민될 정도. E씨는 남자친구를 재워달라 했던 룸메에 대해 아직도 황당하다며 ‘신박한 X년’이라 평했다.
Director 김혜원
Illustrator 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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