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고 있는 당신, 괜찮습니까

 

 

Item 너무 한낮의 연애

 

지난해 ‘조중균의 세계’라는 단편소설을 읽은 이후로, 그녀가 이 작품과 함께 묶어낼 단편집을 오래 기다렸다. 구만 육천원의 식대를 돌려받기 위해 수첩에 또박또박 나는,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라고 적는 남자.

 

나에게 조중균씨는 숙맥 같은 나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어느 가을엔가 청계천에서 벽을 향해 돌아선 채 엉엉 울고 있던 초로의 남자이기도 하며, 며칠 전 술자리에서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얼굴로 앉아 있다 결국 그냥 돌아간 친구이기도 하고, 시골집 빈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나의 할머니이기도 하다.

 

모두가 무언가를 견디고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우리는 번번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일상에 가시처럼 박혀 있을 ‘견딤’을 짐작하는 것, 안부를 묻는 것, 무사함을 확인하는 것, 그것까지 무용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에서 김금희는 말한다.

 

“나는 일상을 가만히 견디다가도 어느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주변의 누군가에게―낯선 당신에게라도―가서 막무가내로 묻고 싶을 때가 잦은데, 그건 그러니까 왜 이렇게 됐습니까, 하는 질문이다. 괜찮습니까, 하는 질문. 왜 이렇게 됐습니까, 괜찮습니까.”

 

그러니 이 한 권의 책을, 260페이지에 걸친 안부 인사로 읽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안부를 묻는 일의 무게에 대해,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는 일의 아득함에 대해,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배운다.

 

Editor_ 김신지 summer@univ.me


사소한 위로에서 오는 감동

 

 

Item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위로가 된다. 나의 친구는 몇 년 전에 사고로 어린 동생을 잃어버렸고, 또 다른 친구는 얼마 전에 할머니를 떠나보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말이 도움이 될까. 상심이 크겠다거나, 고생한다는 말? 아니면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위로하는 사람으로서는 모두 진심이었지만, 슬픔의 빠진 사람의 마음에는 가닿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그의 책 『대성당』에 실린 단편이다.

 

책은 어린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갑자기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을 바라 보며, 또 그 아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겪으며 어머니는 희망을 품다가도 살아갈 힘을 잃어 간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의사의 말도 아니고,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도 아니다.

 

정말 힘든 순간에는 소중했던 모든 것들이 무용하게 느껴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는 각오가 선다. 그럴 때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은,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따끈한 빵 한 조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Editor_ 조아라 ahrajo@univ.me


심심풀이 땅콩이  그리웠어

 

 

Item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사무실에 글 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다들 책 욕심도 많고, 취향도 뚜렷하다. 이런 근무환경에서 종종 자괴감을 느낀다. 팀장님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인지 ‘키르키스트’인지 모르겠는 분을 언급할 때마다 입술이 철썩 달라붙고,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부연 설명을 해주시면 그제야 ‘아아’ 하지만 여전히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어렴풋한 느낌만 남고 모든 게 사라져버리는 나란 인간에 대해 자꾸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그냥 재밌으려고 책을 읽었다면, 에디터가 된 후 묘한 강박이 생겼다. 너는 나의 글감이 돼야 해! 깨달음을 내놔! 성찰 어딨니! 그토록 불순한 마음으로 책을 읽으니 재미가 있을 리가.

 

최민석 작가의 초단편집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은 작가 스스로 “내키는 대로 썼다”고 고백한 책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글을 읽으며 뭔가를 찾아내려는 시도 따위 안 해도 되는 게 최고 장점이다.

 

잊을만 하면 튀어나오는 미시시피 모기떼와 이재만씨, 소피아를 보며 ‘풋’ 터지면 그만이다.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고, 작가의 의도 따위 범인인 나로서는 평생 모르겠지만 훌륭한 심심풀이 땅콩이란 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한편에 서너 장. 좀이 쑤시기도 전에 끝나버려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좋은 전략이다.

 

Editor_ 김슬 dew@univ.me


덧없고 하찮은 대화

 

 

Item 파씨의 입문

 

글이 아닌 목소리로 황정은을 처음 만났다.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그의 신간 광고가 자주 나왔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로 시작해 “계속해보겠습니다”로 끝나는 내레이션은 민무늬 스웨터 같았다. 애써 호들갑 떨지 않아도 타고난 까슬까슬함이 주변 공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인간에게 너무 큰 기대를 품지 않기에 오히려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버틸 수 있다는 소박한 낙관, 을 전하기에 적절한 목소리였다. 황정은은 목소리가 아닌 글로 각종 문학상을 휩쓸고 있는 작가다. 며칠 뒤 그의 책을 여러 권 샀다. 정체모를 불친절한 제목에 이끌려 『파씨의 입문』을 먼저 집었다.

 

제목 따라간다는 노래의 운명처럼, 수록된 9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친절과 거리가 멀다. 이해를 돕기 위한 부연설명 대신 비슷한 말을 뉘앙스만 바꿔 반복한다. 당연히 그들은 오해하고, 후회하고, 후회를 감춘다. 결론 없이 이어지는 ‘덧없고 하찮은’ 대화를 지켜보는 와중에, 광고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Editor_ 기명균 kikiki@univ.me


외로움도 선택일 뿐

 

 

Item 서울 동굴 가이드

 

아무도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모른 척 지내야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반복된 일임에도 어렵기만 하다. 여전히 ‘추억’과 ‘과정’이라는 말이 싫다.

 

매년 들춰보게 되는 김미월의 문장은 어둠으로 끝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출입구가 같은 동굴의 안내자이다. 애초에 출구가 존재하지 않았던 원형굴에서 그녀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다. 처음과 끝이 정해진 길에 안내자가 있다는 사실은 작품을 관통하는 모순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굳이 상황을 극복하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지는 감정이 벅차게 느껴질 때마다 새로운 사람과 장소가 빈자리를 채워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봄에는 들뜬 마음 때문에 복잡했고, 여름에는 더위에 지쳐갔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지나간 일들을 원망하지 않으며 온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였다. 이번 가을, 외로움을 선택하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내 감정을 떠넘기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의 방향을 따라 겨울 준비를 할 것이다.

 

Intern_ 윤소진 sojin@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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