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 작년엔 파리, 올해는 도쿄, 내년엔 아이슬란드. 뭐 이런 식으로. 그런가 하면, 항상 같은 장소만 찾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완벽히 후자다.

 

이주 전 제주에 다녀왔다. 올해만 네 번째 제주행. 늘 그렇듯 뻔한 질문이 쏟아졌다. “거길 또 가? 지겹지 않아? 뭐 꿀이라도 발라 놨냐?” 그렇다. 오늘은 내가 그곳에 발라 놓은 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금능 해변에서 보이는 비양도. 늘 이 자리에서 이 구도로 찍는다.

 


꿀1. 당장 내일 훌쩍 떠날 수 있다

그런 날이 있다. 여행의 신이 날 부르는 것 같은 날. 자고 일어났더니 바람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하늘도 유난히 파랗고 예쁘다. 마침 바다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띈다.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혼잣말을 뱉어 버린다. ‘아 여행 가고 싶다’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꿀 같은 바람이 불었던 날. 여행이 가고 싶었던 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다만 여행은 용기의 문제라, 실천으로 옮기지 못할 뿐.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일단 어디로 가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어디서 자야 할지, 뭘 먹어야 할지, 돈은 얼마나 필요할지. 고민하는 사이 여행의 신은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도 떠나지 못한다.

 

입으로만 하는 여행을 반복하다, 내가 찾은 답은 ‘갔던 곳 또 가기’였다. 이미 몇 번 가본 곳이기 때문에,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도 두렵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몇 번 버스를 타면 동쪽으로 갈 수 있는지, 막차는 몇 시까지 있는지 아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달까. 딱히 큰 용기를 낼 필요가 없으니, 떠나고 싶은 마음이 옅어지기 전에 항공권을 예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키면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공항에 내려서 야자수를 보는 순간부터 제주에 온 게 실감이 난다

 


꿀 2. 갈 때마다 새롭다

가끔씩 첫 제주 여행을 떠올린다. (고등학교 수학여행까지 치면, 엄밀히 말해 처음은 아니지만…) 온전히 내가 번 돈으로 했던 첫 여행. 성산 일출봉 정상까지 굳이 오르지 않아도, 한밤중에 숙소 밖으로 나가도, 해변에서 술을 마셔도,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감격했던 순간들. 밤바다를 보면서 마시는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옆에 있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도 기억난다. “진짜 좋다. 다음 달에 또 와야지. 자주 올 거야. 근데 자주 보다 보면 감흥이 없어질까 봐 좀 무섭다.”

 

한여름의 협재 해변 알록달록

 

그 후로 제주에 10번 이상 갔지만, ‘이제 충분히 봤다’는 느낌은 아직 받지 못했다. 애초에 같은 풍경을 다시 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작년에 봤던 벚꽃길이 너무 좋아서 다시 찾으면,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벚꽃이 이미 다 져 있기도 하고. 어제까지만 해도 고요해서 좋았던 해변이 다음 날엔 단체 관광객의 방문으로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바다의 색은 계절에 따라, 햇살과 구름에 따라,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 그러니 아무리 자주 봐도 질릴 틈이 없었다.

 

가장 최근 여행의 마지막 밤은 태풍과 함께했다.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렸다. 눈을 감으면, 유리창이 깨지거나, 날아온 간판에 맞아 다치는 장면이 떠올라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심술 궂은 제주 날씨에는 이제 제법 의연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바보같이 웃기만 하던 애인의 화난 얼굴을 처음 본 기분이었다. 낯설었다.

 

2016년 10월 5일.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용두암. 부서진 울타리와 거짓말처럼 좋은 날씨.

 


꿀 3. 아는 장소, 아는 사람, 아는 개가 생긴다

제주에 대체 뭐가 그렇게 특별한 게 있냐고 물으면 사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해변이나 오름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처럼 너무 아름다워서 숨이 턱 막히는 장관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그저 예뻐서 우리 집 앞으로 옮겨와 매일 매일 보고 싶을 뿐.

 

제주 이주민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 겸 밥집. 겨울에도 이 자리에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여행이랍시고 가서 하는 일도 별게 없다. 늦잠 자기. 얼굴만 한 카메라 들고 동네 어슬렁거리기. 바다 보면서 멍때리기. 예쁜 카페에서 일기 쓰기 등등. 그냥 평소에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 했던 시시한 일들을 한다.

 

그런 마음으로 한번 두번 같은 장소를 거듭 찾다 보니, 마치 제주에 살았던 것처럼 곳곳에 추억이 쌓였다. 포구 옆에 있는 카페는 여름에 물놀이하고 쫄딱 젖은 채로 갔었는데. 저 식당 아주머니는 자리물회를 시킬 때마다 ‘이거 뼈 있는 건데 먹을 수 있겠냐’고 물으셔. 쟤네 작년에 김영갑 갤러리 앞에서 만난 개들 아니야? 아직도 있네.

 

어느 동네나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백구가 한 마리쯤 있다. 외로워 보이는 여행자가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기꺼이 다가와 길동무가 되어 주는 기특한 녀석들

 

아는 장소, 아는 사람, 심지어 아는 개까지 있는 그곳이 때로는 나의 또 다른 삶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옆집 남자가 감기에 걸렸는지 알아챌 정도로 방음이 안되는 집에서, 한쪽 등받이가 부러진 의자에 앉아, 피곤에 찌든 얼굴로 화장을 지우는 삶 말고. 걸어서 바다에 갈 수 있는 삶이 내 것이라는 상상은, 갑갑한 현실에 꽤 괜찮은 위로가 되어 준다.

 


자주 와서 좋아진 건지, 아님 좋아서 자주 오는 건지

“세상에 너보다 더 좋은 남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면, 내 오래된 연인은 이렇게 답한다. “그런 건 없다”고.그의 말에 완벽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있다고 해도 부질 없는 일이다. 어차피 나는 다른 남자 찾아 떠날 생각이 없으니까.

 

제주가 나에게 꼭 그렇다. 세상에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 하더라도, 굳이 찾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에겐 이미 좋아하는 섬이 있으니까. 자주 와서 좋아진 건지, 아님 좋아서 자주 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지금 여기가 충분히 좋다는 사실이다.

 

광치기 해변 앞에서 그림같이 서 있던 말. 꿈 속의 한 장면 같다

 

이젠 제주라는 단어만 봐도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좋은 풍경을 보면 “여기 제주도 같지 않아?”라고 말한다. 어쩌면 나는 이 섬을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짝사랑을 앓는 소녀처럼. 자기 멋대로 만들어낸 상상 속 이미지를 진짜라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그래도 괜찮다. 사랑하는 섬 하나가 생겨서 인생은 조금 더 행복해졌으니까. 내 여행의 목적지는 앞으로도 쭉 이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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