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물어보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답변은 ‘영화 보기’다. 영화를 사랑해 마지않는 여러분을 대신해, 자칭 ‘영화광’ 에디터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사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이른바 ‘영화제용 영화’는 국내 개봉이 불발되기도 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개성이 너무 강하거나, 스토리가 너무 독특하거나, 생각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거나 등등….

 

하지만 진정 영화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봐야하지 않겠어? 각 에디터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직접 보고 고른 영화 7편을 여러분의 눈앞에 펼쳐보겠다.


분노

독 이상일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와타나베 켄, 아야노 고, 히로세 스즈, 마츠야마 켄이치 등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안다고 믿는 부분도 착각이거나 오해이기 쉽다. 남은 그렇다 치고 자신이라도 좀 안다면 나을 텐데, 자기 자신도 잘 모르긴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믿음을 말한다. 나를 믿니? 너를 믿어. 그 가볍고도 무거운 말이 우리 관계를 얼마나 바꾸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그러니 누군가를 믿는다고 말할 때, 대체 우리는 무엇을 확신하는 것일까?

 

<분노>는 도쿄의 한 주택가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범인은 벽에 피해자의 피로 노할 노(努)자를 남기고 사라졌고, 경찰은 TV 공개 수사 프로그램을 통해 용의자를 수배한다. 지금 그는 아주 평범한 얼굴로 우리들 속에 섞여 있을 거라 말하면서.

 

한편, 도쿄에서 망가진 삶을 살다 아빠를 따라 고향인 어촌마을로 돌아온 아이코는 아빠 일을 돕던 청년 ‘타시로’와 사랑에 빠진다. 오키나와로 이사 온 소녀 이즈미는 무인도에서 혼자 여행 중이라는 ‘다나카’를 만난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유마는 우연히 오갈 데 없는 ‘나오토’를 만나 동거하게 된다.

 

세 남자를 쉬이 일상에 받아들인 이들은 그러나, TV를 통해 범인에 대한 새로운 단서들이 공개되면서 점차 그 믿음에 균열을 일으킨다. 애초에 이방인이었던 그는, 과연 믿을 만한 존재인가?

 

 

관객 역시 그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조금씩 수정되는 용의자 몽타주는 때로는 타시노를, 때로는 다나카를, 때로는 나오토를 닮아 있다. 어쩌면 그것은 실체 없는 우리들 ‘믿음’의 얼굴인지 모른다. 모르면서도 상대에 대해 쉽게 안다고 생각하면서 믿고, 같은 이유로 금세 믿지 못하는. 많은 순간 믿음은, 우리에게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 된다.

 

나를 잘 모르는 네가, 그럼에도 나를 믿는다고 말하는 순간의 희망. 믿었던 네가, 서늘한 얼굴로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되묻는 순간의 절망. 애초에 믿지 않았더라면 의심할 일도, 배신당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어째야 할까? 믿지 않는 쪽을 택하면 나을까?

 

 

<분노>는 여러 방식으로 묻고 답한다. 그러니 이것은 인간에 대한 영화다. 믿는 인간, 의심하는 인간, 분노하는 인간, 상처 주는 인간, 망가지는 인간, 망쳐버리는 인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 울면서 후회하는… 인간. 이상일 감독이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또 한 번 영화화한 작품으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일본의 국민 배우 와타나베 켄, (언제 봐도 잘생긴) 츠마부키 사토시, 입덕을 부르는 남자 아야노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막내 히로세 스즈, <데스노트>의 L로 알려진 마츠야마 켄이치 등이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다. 정식 수입되어 국내에도 개봉될 예정.

 

editor_ 김신지 summer@univ.me


닝코 스님의 수난

 

감독 니와츠키노 노리히로
출연 츠지오카 마사토, 크리스 카토, 쿠도 쿄코, 유키노 아리모토

 

 

스님이 인기가 많다니.

 

닝코 스님은 잘생긴 스님이었다. 하지만 색기가 흐르는 외모를 남용하여 여신도들을 후리고 다녔을 거라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진지한 태도와 성실함으로 따지자면 주지스님 버금갔다. 스님의 불심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탁발을 하러 마을에 내려가면 동네 여자들이 스님의 얼굴을 한 번 보려고 앞다퉈 뛰어나왔다. 아가씨들도, 아이 엄마도, 할머니도 스님을 찾았다. 닝코 스님, 닝코 사마. 보고 싶었어요. 밤마다 스님 생각이 나요. 여자들만 스님을 좋아했던가? 아니다. 남자들도 그랬다.

 

같은 절에서 생활하는 몇몇 스님은 닝코 스님에게 끈적끈적한 눈길을 보냈다. 처음에 그는 자기 자신을 탓하고 또 탓했다. 그러나 점차 허깨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을 드러낸 채 달려오는 여자, 마을 여자들의 나체, 절에서 껴안고 뒹구는 스님들…. 부처님의 제자가 생각해선 안 되는 모든 것들이 스님의 눈앞에 떠올랐다.

 


절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었다. 욕망을 억누르다가 폭발하느냐, 아니면 욕망을 대면하고 극복하느냐. 닝코 스님은 대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욕망은 극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커졌다. 우연히 만난 떠돌이 무사는 스님에게 말했다. “나는 칼을 싫어했어. 피는 너무나도 끔찍했지. 그런데 사실은, 칼을 너무 좋아했던 거야. 너는 나랑 비슷해.”

 

그렇다면 스님을 그토록 괴롭혔던 성욕은, 사실은 죽을 만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건가? 이 욕망을 끊어내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말인가? 저 떠돌이 무사가 살인귀가 됐듯이, 스님도 색정광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인가? 닝코 스님은 단 한 번도 불교 계율을 어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닝코라는 음탕한 중의 악명은 높아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지독하게 원하고 갈망하지만 그것이 도덕적으로 금지된 욕망이라면, 차라리 ‛끔찍하게 싫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억눌러야만 버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지된 욕망은 그냥 그대로 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에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몸집을 키워 간다. 닝코 스님의 눈 앞에서 발가벗은 여자의 환영이 떠나지 않았듯이.

 

그러던 중 스님과 떠돌이 무사는,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는 여자 요괴를 만난다. 이 요괴에게 유혹을 당하면 짧은 쾌락을 맛본 뒤에 무조건 죽는다.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떠돌이 무사는 요괴에게 패배했다. 스님은 더는 못 참는다.

 

참을 만큼 참아온 그는 요괴를 끌어 안는다. 그리고 스님은 살아 남았다. 욕망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올라서서 욕망을 폭발시킨 에너지로.

 

editor_ 조아라 ahrajo@univ.me


라라랜드

 

감독 다미엔 차젤레
출연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

 

 

인생에서 가장 많은 후회를 남기는 것은 사랑이다. 그동안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놓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모든 걸 흘러가는 대로, 지나간 순간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영화는 LA를 배경으로 스타가 되고 싶은 미아(엠마 스톤)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사랑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재즈의 선율처럼 은밀하게 가까워지고, 각자의 꿈을 응원하며 피아노 계단처럼 신뢰를 쌓아간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뮤지컬로 사랑스럽게 풀어낸다. 그들이 함께 있으면 평범한 거리는 무대가 되고, 허공 위로 발을 뻗어 별을 만나러 갈 수도 있다.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를 연주하는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 하고, 미아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무대를 원한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미아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원치 않던 밴드 활동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눈치 보느라 가장 중요한 사랑을 놓치고 만다. 결국 나만을 위해 빛나던 별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점점 멀어진다.

 

두 사람은 시간이 흘러 세바스찬이 운영하는 재즈카페에서 재회한다.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세바스찬과 남편의 손을 잡고 있는 미아는 서로를 발견한다. 두 사람의 눈에는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감싸 안는 충만한 사랑이 일렁인다.

 

이때 영화는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던 레스토랑으로 되돌아간다. 영화 도입부에서 미아는 세바스찬의 연주를 듣고 그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그녀를 보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가버린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키스를 하는 장면으로 재탄생한다. 이어서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고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과정이 상상으로 전개된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두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바스찬은 밴드라는 새로운 도전과 재즈 카페라는 꿈을 이루었고, 미아는 재즈를 좋아하는 유명 배우가 되었다. 결국 지난 사랑은 나를 발견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사랑도 이별도 순간의 선택이다.

 

밤하늘의 별이 나에게서 멀어진다고 해서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어둠 속에서 내가 사랑했던 별을 단번에 찾을 수 있다. 때로는 환하게 빛나서 어지러웠고, 너무 뾰족해서 아팠던 순간들은 작은 점이 되어버렸다.

 

매 순간 지난 사랑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밤하늘을 보며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했던 그 순간을 떠올릴 수는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지나간 모든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세일즈맨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
출연 샤하브 호세이니, 타라네 앨리두스티

 

 

한밤중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간다. 불시에 진행된 포크레인공사로 아파트 벽에 금이 가고, 주민들은 하룻밤 사이에 살 곳을 잃었다. 다행히 라나와 에마드 부부는 급하게 지인의 소개로 이사 갈 아파트를 구한다. 그러나 이들의 일상에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이때부터다.

 

라나가 혼자 있던 아파트에 강도가 들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날의 트라우마가 계속해서 라나를 괴롭힌다. 한편, 에마드는 답답하다. 라나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꼭 잡고 싶은데 정작 라나는 신고하기를 꺼린다. 결국 강도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단서로 혼자서 범인을 쫓는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전반부다.

 


주인공들은 괴롭겠지만 관객은 수상한 이 아파트를 둘러싼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긴다. 이웃들이 입을 모아 비난하는 이전 세입자의 정체는 무엇이며 강도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범인은 누구이며 그날 밤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수수께끼투성이인 가운데 선명히 드러나는 것은 부부의 갈등이다.

 

끔찍한 순간을 다시 떠올리기 싫은 라나는 조용히 사건을 덮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고 싶다. 반면 에마드는 범인을 잡아야만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오히려 집을 잃었을 때엔 마음을 모아 금방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일상을 보호하고 있는 것은 집인가, 믿음인가.

 

집요한 추적 끝에 에마드가 범인을 잡으면서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정체는 의외로 병약한 노인. 이전 세입자가 이사 간 줄 모르고 집에 들어갔다가 실수한 거라며 용서를 비는 노인 앞에서 그는 고민에 빠진다.

 

 

‘분노’를 앞세워 복수할 수도, ‘연민’ 때문에 못이기는 척 용서할 수도 없는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에마드는 결국 라나와 범인을 대면시킨 후에야, 어중간한 선택을 한다. 최악의 결과는 피했지만 해피엔딩이라고는 할 수 없는 찝찝한 결말.

 

마지막 장면을 보며 내가 딜레마에 처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 뒤틀린 내면을 갖고 있다. 일상을 꾸리기 위해, 별일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쌓아 올린 ‘세상 속의 나’로 감추고 있을 뿐. 딜레마는 바로 그 ‘세상 속의 나’를 허물어뜨릴 것을 요구한다. 그때 드러나는 ‘뒤틀린 나’를 똑바로 보는 것은 두렵다. 두렵지만, 가끔 눈을 크게 뜨고 봐야하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찾아온다.

 

editor_ 기명균 kikiki@univ.me


컨택트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에이미 애덤스, 제레미 레너

 

 

인간의 삶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다. 아등바등 살아봤자 기승전죽음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경계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고, 함부로 앞서 나갈 수도 없다. ‘미래를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더 그럴싸하게 살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여기,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된 한 여성이 있다.

 


어느 날 불시에 출현한 외계 생명체와 조우한 언어학자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해석해야 하는 임무를 받는다. 헵타포드라 불리는 외계인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 구조와 사뭇 다르다. 인간은 사건을 순차적으로 경험한 뒤 인과관계를 따진다. 반면 헵타포드는 시작과 끝,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목격할 수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들은 원인이 생기기도 전에 결과를 알고 말하는 게 가능하다.

 


헵타포드와 접촉하는 횟수가 늘어가고 언어를 습득할수록 루이스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초월하여 헵타포드의 사고방식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목격하게 된다.

 

 

결국 아이를 잃게 되는 비극적인 여정, 그것이 루이스의 결말이자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시작인 셈이다. 영화 속에서 루이스와 딸의 시간, 그리고 루이스와 외계인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구분선 없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는 인간의 언어 체계에서는 불가능한 사고방식이다. 헵타포드의 방식을 완전히 터득해야만 가능한 사고다.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된 루이스.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불치병에 걸려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모든 과정과 그 끝을 알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게 딸의 탄생이든 죽음이든, 앞으로 겪게 될 모든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맞이하기로 한다. 영화 속 루이스의 딸 ‘한나’는 그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철자로는 Hannah,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처음과 끝의 구조가 같다. 끝없이 반복해서 쓸 수 있는 이름처럼 결국 시작과 끝이 같음을 은유한다.

 

 

그래서 루이스에게 처음과 끝, 과거와 미래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녀가 지각하는 유일한 순간은 언제나 바로 지금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루이스의 선택을 지켜본 우리에게도 묻는다.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꾸겠느냐고. 어쩌면 우리는 너무 먼 미래만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오랫동안 까먹고 지냈는지 모른다.

 

intern_ 이연재 jae@univ.me


 

사랑의 노예

 

감독 벤 영
출연 엠마 부스, 스테판 커리, 애쉬리 커밍스

 

 

잘 웃고 활달한 성격에 탐스러운 머릿결을 가진 여고생 비키는, 늦은 밤 친구들과의 파티에 가기 위해 집을 몰래 빠져나온다. 택시를 잡으려다 마주친 부부 존과 에비가 묻는다. 10달러에 대마초 하나 어때?

 

솔깃한 제안에 망설이던 비키는 차에 올라타 그들의 집에 다다른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친 현실은 감금. 쇠사슬로 침대에 묶여 울부짖지만 때는 늦었다. 사실이 부부는 연쇄살인범이다. 그것도 소녀들만을 노리는.

 

이들에게 납치한 소녀들은 일종의 유희이자 애정 행위를 위한 매개체다. 함께 소녀를 성적으로 유린하고 폭행하며, 서로의 뒤틀린 애정과 믿음을 견고히 한다. 존의 표현에 따르면 ‘셋이 즐기는’ 시간이지만 소녀에겐 성적 고문의 순간이다. 하지만 비키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출한 것처럼 편지를 쓰라는 지시에, 남자친구가 알아챌 수 있는 암호로 그들의 주소를 끼워넣어 보낸다. 목욕탕 창문을 눈 여겨 봐두었다가 대담하게 탈출을 시도한다. 에비가 없는 틈을 타 혼자 몰래 비키를 덮치려는 존을 피하기 위해 침대 위에서 똥을 싼다. 시도들은 모두 불발되지만, 어떤 사건인든 종국에는 빌며 사과하는 에비를 보고 비키는 점점 둘의 관계 속 균열을 발견한다.

 

에비에게는 아이가 둘 있다. 자신이 존에게 인정받으면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녀에게 모성은 가장 애타고 강렬한 바람이지만, 이미 체제가 되어버린 존의 권력을 거역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가 자신을 구해줬으며 사랑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불안할 때마다 그의 마음을 확인하려 애걸할 뿐이다.

 

비키는 말한다. “그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당신을 이용할 뿐이야.”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아 비키를 빨리 죽이자고 재촉하는 에비와 이를 거절하는 존. 둘의 사이는 조금씩 흔들거린다. 에비가 자식처럼 아끼던 개를 존이 발로 차서 죽여버린 날, 충격으로 괴로워하는 에비에게 원하던 대로 비키를 죽이자며 달랜다.

 

개를 죽인 것에 대해 “무슨 일이나 장점이 있는 법이야. 아이들과 개는 함께 키울 수 없잖아”라는 소름끼치는 말로,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하지만 놀랍게도 죽음의 순간, 문 밖에서 들리는 울부짖음. “비키!!!” 편지 속 암호를 풀어 동네까지는 찾아왔지만, 정작 어느 집인지 몰라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헤매는 엄마의 목소리다. 자신을 저지하는 에비에게 비키는 “이런다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라고 말한다.

 

맞다. 비키가 죽으면 존은 다음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아이는 데려올 수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존이 원하는 대로 살인에 가담하며 그의 지배 아래 살아갈 것이다. 아마 에비는 그것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키의 목을 조르던 존의 옆구리를 칼로 찔렀리라.

 

도망쳐 엄마 품으로 달려가던 비키를 그대로 보내줬으리라. 그것은 사랑이라 믿고 매달렸던 거짓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의 사랑을 필요로 할 아이들에게 가려는 에비의 첫 걸음이었다.

 

editor in chief_ 전아론 aron@univ.me


나, 다이넬 블레이크

 

감독 켄 로치
출연 데이브 존스, 헤일리 스콰이어

 

 

“걷는 데는 지장 없으시고요?” “심장이 아픈 거지, 다른 데는 괜찮소.” “인간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으시나요?” “이봐요, 난 심장이 안 좋은 거라니까?” 왜 자꾸 엉뚱한 질문을 해대냐고 묻자 단 두 문장으로 입을 막아버린다. “묻는 말에만 답하세요. 불이익이 갈 수 있습니다.”

 

중년의 목수 다니엘은 주치의로부터 심장이 안 좋으니 당분간 일을 해선 안 된다는 진단을 받는다. 이에 질병 수당을 신청하는데, 지급 여부가 결정되는 심사 질문이 저런 식이다. 심장과 1도 상관없는 질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답변한 결과는 탈락. 질병 수당을 받기엔 점수가 모자라니, 취업 수당을 신청하고 재취업 교육을 받으란다.

 

 

이의를 제기하려 하지만 그 과정은 액티브 엑스 설치보다 험난하다. 우선 세계적으로 약속이나 한 건지 복지국의 상담 전화는 늘 불통이다. 1시간 40분 동안 “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연결 중이오니…”를 경청한 후에야 겨우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뒤에도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 구체적인 조치 근처에도 갈 수 없다.

 

답답한 마음에 찾아간 관공서에선 더 큰 벽에 부딪친다. “인터넷으로만 신청할 수 있어요. 디지털 시대잖아요(할줄 알든 모르든 그건 네 사정이고).”

 

슬프게도, 절차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순간에도 생활은 계속된다. 돈이 필요한 다니엘은 결국 취업 수당을 신청하고 이력서 쓰는 교육을 받는다. 심장 때문에 일을 못 하리란 걸 알면서도 이력서를 돌린다. 구직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어떤 이는 일은 안 하면서 돈만 챙기려는 파렴치한이라고 비난을 쏟아낸다.

 

 

다니엘의 지난한 고군분투를 함께한 관객의 마음에는 그가 느낀 것과 비슷한 절망감이 떠오른다. 복지를 누리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인간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시스템이 벽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러나 다니엘은 벽 앞에서 힘이 풀린 채 주저앉지 않는다. 원칙만 읊어대는 앵무새들의 책상을 박차고 나간 그는 복지국 건물 벽에 커다랗게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다. 이름 앞엔 굳이 ‘나(I)’라는 인칭대명사를 붙인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서류의 일련번호도, 지나가는 개도, 적선을 구하는 거지도 아닌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선언. 어쩌면 이 영화는 시스템 속에서 먼지가 되어가는 인간들을 향한 켄 로치 감독의 찬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를 포기해서도, 포기 당해서도 안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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