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폭하기로 이름난 동물이 있다. 레서판다 이야기다. 인터넷에서 ‘흉폭한 맹수’를 검색하면 ‘레서판다’가 줄줄이 나온다. 대체 얼마나 잔혹하기에…? 그러나 레서판다의 외모는 맹수와는 거리가 멀다.

 

키는 보통 60cm, 꼬리 길이는 약 50cm, 몸무게는 5kg를 넘지 않는다. 머리는 동그랗고 귀는 삼각형 모양으로 쫑긋 서 있다. 눈썹과 볼에는 하얀 털이 났고 눈 밑에는 세로로 붉은 무늬가 있어 깜찍함을 더한다. 배와 다리는 윤기 흐르는 검은빛이다. 너구리와 강아지를 섞은 것처럼 생긴 이 동물에게 흉폭하다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너무 귀여워서 보는 사람의 심장에 충격을 주어서다.

 

 

안녕? 난 레서판다라고 해. 지금부터 니 심장을 가격할거야

 

 

레서판다의 원래 이름은 ‘판다’였다. 판다라는 말은 네팔어 ‘nigalya ponya’에서 온 말로, ‘대나무를 먹는 자’라는 뜻이다. 대나무를 먹는 모습이 발견되면서 ‘판다’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발견된 커다랗고 눈 주변이 까만 판다에는 ‘자이언트 판다’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이 자이언트 판다가 더 유명해지는 바람에 ‘자이언트 판다’는 그냥 ‘판다’가 되었다.

 

원래 판다로 불렸던 판다는 ‘작은’ ‘붉은’ 이라는 형용사가 추가로 붙어 ‘레서판다(Lesser Panda)’ 또는 ‘레드 판다(Red Panda)’로 불리게 되었다. 레서판다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분 나쁠 만한 일이다.

 

 

애니메이션 <백곰카페>에 출연해 분노를 표출한 레서판다

 

레서판다는 객관적으로 귀엽게 생겼다. <쿵푸 팬더>에 나온 사부의 외모가 바로 이 레서판다를 모델로한 것이다. “귀엽다.” 레서판다를 보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전부였다. 이후 레서판다에 관심이 생긴 건 우연히 ‘동물농장’에 나온 모습을 보고서였다.

 

레서판다는 대나무가 주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 대나무나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송에선 레서판다를 미식가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서울대공원에서 레서판다를 담당하는 사육사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입이 까다로워 잎이 조금만 마르거나 꺼칠꺼칠해도 먹질 않아요.” 또 레서판다는 대나무 잎 중에서도 위쪽에 난 조그맣고 보들보들한 새순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항상 신선하고 연한 대나무 잎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주는 대로 먹어 치워도 살기 어려운 세상에 저렇게나 까다롭다니, 곧 멸종되겠군.’ 방송을 보면서 나는 혀를 찼다. ‘하여간 예쁜 것들은 주변에서 다들 오냐오냐 해주니 꼴값을 한다니까.’ 약도 조금 올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방송을 본 이후로 머릿속에서 레서판다가 떠나지 않는 것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건 본인이나 주변에 다소 불편을 끼치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멸종까지 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레서판다는 정말로 사라지고야 마는 것일까?

 

 

오늘도 귀여움이 열일하는 중

 

 

찾아봤더니 레서판다는 역시나 멸종 위기종이었다. 전 세계에 약 1만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다. 국제자연보호연합(ICUN)은 멸종 위기 동물 목록에 취약(VU) 동물로 레서판다를 등재했다. 한국에는 서울대공원의 ‘앵두’와 ‘상큼’이, 에버랜드의 ‘시푸’ 이렇게 단 세 마리만이 살고 있다.

 

레서판다는 높은 산 대나무 숲이 서식지인데 환경 파괴로 서식지가 줄어드는 것이 생존의 큰 위협이 된다. 불법 밀렵도 문제다. 그런데 제일 큰 위협은 따로 있었다. 레서판다는 포유 동물인데 육아를 싫어한다! 평소에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새끼를 낳고 기르는 것을 싫어해 평생 동안 한 번도 임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식성도 까다로운데 육아까지 싫어하는 동물이라니, 이러고도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레서판다에 대해 알아갈수록 당황스러웠다. 실제 성격은 어떨까? 야행성이라 낮에는 자고 밤에는 누워 있다고 해서 늦은 오후에 에버랜드를 찾았다.

 

올봄에 일본에서 온 레서판다 시푸는 나무 위에서 등을 보이고 누워 있었다. 움직이지 않기로는 나무늘보 수준이다. 에버랜드에서는 12시, 2시, 4시 이렇게 하루에 3번 레서판다 간식 타임이 있다. 꼼짝 않던 레서판다는 2시 정각이 되자 마치 시간을 아는 것처럼 스르르 내려왔다.

 

사육사가 잘게 썬 사과를 그릇에 담아와 레서판다 앞에 섰다. “레서판다는 귀여운 외모와 달리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사과를 가져 왔기 때문에 이 친구가 제 옆에 와있는 거고요. 다 먹으면 뒤도 보지 않고 멀리 가버릴 녀석입니다.” 레서판다는 사육사가 주는 사과를 ‘거 참 번거롭게 하는군’ 하는 태도로 먹은 후 천천히 나무 위로 올라가 누웠다. 다시 미동이 없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충격에 사로잡혔다. “세상에. 성격마저 별로야!”

 

 

이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

 

 

“외모가 귀여워 레서판다를 기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고 성격이 과격하기 때문에 애완동물로 키울 수는 없어요.” 레서판다를 담당한 많은 사육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저 귀여운 외모를 가진 귀여운 동물이라고 생각할 때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반전의 모습을 알게 되자 레서판다는 특별한 캐릭터로 다가왔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를 어린 왕자가 좋아한 것처럼, 잘 모르면 비슷하고 흔한 것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알게 되면 그 대상은 유일한 단 하나가 된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결국은 상대의‘의외성’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지점을 유심히 보고, 거기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일이다. 취미나 말버릇, 취향 같은 것에서 공통점을 찾아내 그 위에서 조금씩 서로의 색을 덧입히는 커스터마이징 같은 것. 이별하고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세상에 남자(여자)는 많다”고 하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모두 단점이 있으며, 빈틈과 약함, 예측 불가한 모습들이 있다. 많은 욕망과 여러 관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이나 외부의 조건에 맞추어 그에 맞는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만, 인간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입체적 존재다.

 

소설가 김훈이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은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다. 뭘 해서 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라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관된 모습을 연기할 필요는 없다. 나의 캐릭터는 의외의 모습들이 모여 독창적으로 완성된다. 저 흉폭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레서판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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