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의 아니게(?) 면접실에 들어갈 일이 있었습니다. 면접자가 아니라 면접관으로요. 자연스럽게 지난 세월 동안 제가 맞은편에 앉아 저질렀던 바보 같은 답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더군요. 바보 같기만 하면 다행이게요. 떨기는 또 왜 그렇게 떠는지, 쫄보 인증 대회에 나온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 쫄보임을 증명하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들어오는 면접자들을 보니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긴장을 풀어주려고 농담을 던져보았지만, 농담에마저 성실하게 답하려다 더 당황하는 것 같았으므로 대략 실패… 미안합니다, 여러분.)

 

잘할 수 있는데, 면접에선 이렇게 떨고 있지만, 준비한 답변도 자꾸만 꼬여서 제대로 내놓지도 못했지만, 실제로 일하게 되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는데ㅡ 저도 늘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 자리에서 불과 이십여 분 만에 모든 것을 검증 받아야 한다는 게(검증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게!) 불합리하다고 여기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번 면접에 함께 들어간 동료 직원이 면접자들을 보내기 전에, 꼬박꼬박 이런 얘길 하더군요. 혹시 떨어진대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여러분에게 무슨 ‘결격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면접이란 자리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말이기에, 생경하면서도 조금쯤 반가워졌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면접자들이 그 얘기를 얼마나 와 닿게 받아들였을지 모르지만, 정말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었더라면 면접의 당락으로 나의 가치를 저울질해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날은 마침 취업특집호에 면접 팁에 대한 기사를 마감하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 기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면접은 소개팅과 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어떻게 준비하든, 결국 그날 나를 마주하고 앉은 면접관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해야 된다는 얘기.” 그러니까 그건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는데 잘 안 된다고 해서 내게 무슨 ‘결격 사유’가 있어서는 아니란 거죠.

 

10분을 얘기한들, 30분을 얘기한들, 우리가 그 자리에서 서로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단편적인 어떤 모습을 보고, 면접관은 우리 회사와, 이 업무와 잘 ‘맞는’ 사람일지(그건 또 얼마나 주관적인 말인가요!) 결정하기도 하고, 어떤 대답은 평범했지만 또 다른 대답이 예상외로 좋았기에 뽑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개팅이 그렇듯이요.

 

소개팅 상대와 잘 되지 않았다면, 서로의 어떤 부분이 끌리지 않았을 뿐이지 그런 내가 틀리거나 잘못된건 결코 아니거든요.

 

 

면접과 소개팅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찰하려는 건 아니고…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면, 여러분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번이 아니었다면 다음이 있을 것이고, 이번과 다음 사이에 우리는 조금 더 나아져 있기도 할 거예요. 면접처럼 기대했던 어떤 일이 잘 안 되더라도, 내게 결격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그 말을 믿으세요.

 

돌이켜 보면 사람들 앞에서 툭 하면 떨고, 자기 자신을 어떤 식으로 아껴야 할지 몰라 남의 눈치부터 보던 지난날의 나를 키운 건 좋은 말들이었습니다. 아픈 충고는 잘못 짚은 방향을 바로 잡아주긴 했지만, 그 자체로 나아갈 힘을 주진 않았어요. 도움은 되지만 힘은 되지 않는 말, 이라 해야 할까요.

 

하지만 좋은 말들은 달랐습니다. 나는 모자란 내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런 나를 마치 더 나은 사람인 것처럼 말해주던 이들이 있었어요. 너는 좋은 마음을 가졌으니 잘 될 거야, 나중에 무슨 일이든 잘 해낼 거야,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거야, 그런 말들.

 

생각해보면 그들은 나와 아주 가깝지도 않았어요. 그냥 어떤 술자리에서, 다른 누군가가 나를 소개시켜준 첫 만남에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저 할 말이 없어 어색함을 깁듯 내놓던 말이었습니다. 인사치레처럼 흔히 하는 칭찬, 내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 말한대도 빗나가지 않을 만한 말들. 그 말을 다 진실이라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않았죠. 들으면서도 알았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 말을 하는 이도 그리 진심은 아니란 것쯤. 그렇지만 이상한 건 다 알면서도, 그 말이 나를 키웠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히는 그 말을 믿고 싶어지던 순간이 나를 키웠다고 해야겠죠.

 

누군가 나를 실제의 나보다 좋게 말하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기 때문이에요. 나는 보잘것없는 내 안을 다 알고 있는데, 누군가 거기서 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말해주면 그 꽃이 정말 거기 있는 것만 같았고 그 꽃을 잘 가꾸고 싶어졌습니다.

 

때로 내가 남몰래 동경해온 사람으로부터 지나치듯 그런 얘길 들은 날이면 그 짧은 한마디가 그렇게 소중했습니다. 적어두어야지, 잊지 말아야지, 그가 말한 바로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그런 글을 쓰겠다고, 혼자 돌아오던 밤에 몇 번이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린애 같은 마음이었는데,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단 생각을 나중에야 했습니다. 제대로 여물지 못한 마음이, 물처럼 햇볕처럼 그런 말들을 그토록 필요로 했으니까요. 정작 말한 사람은 잊고 있는데, 혼자서만 오래도록 잊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단비 같은 그말을 기억하고, 뿌리 끝으로 그 물을 흠뻑 끌어올리며 어떤 마음은 자랐지요.

 

잡초인 줄만 알았던 것이 꽃을 피운 어느 날, 나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씨앗이 싹도 못 틔운 채 말라버리지 않도록, 물이 되어주었던 말을요. 생각해보면 우린 이미 많은 말들에 기대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매일같이 보는 친구가 드물게 생일에 써주는 편지를 읽을 때, 누군가로부터 뜬금없는 칭찬을 들었을 때,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며 환대할 때 어딘가 쑥스러운 기분으로 고양되는 건 그래서입니다.

 

그 말들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죠. 나도 믿지 못하는 내 미래를 믿어주던 말, 나도 모르던 내 장점을(심지어 단점으로 여겼던 어떤 부분을) 반들반들하게 닦아 보여주던 말, 다 진심은 아니었다고 해도 그 순간에 너무나 필요했던 말. 그 말들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닿은 좋은 말을 믿으세요. 사정도 모른 채 쉽게 하는 충고는 잊고, 상처 되는 말은 접어두고… 듣는 순간 여러분을 조금쯤 쑥스러워지게 했던 그 좋은 말들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내 안에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지 말고, 무엇이 될지 모를 씨앗이 있다고 믿으면서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겠지요. 내가 그랬듯이, 어디선가 내가 하고도 잊은 어떤 말을 품고 힘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쁜 일일 테니까요. 때로는, 짧은 말 한 마디가 우리를 가장 멀리까지 가게 하기도 하니까요.


Illustrator_ 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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