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길어지고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왔다. 여름에도 쉽게 손발이 차가워지는 나는, 얼음장이 되어버린 손끝을 느끼며 가을을 맞는다. 계절을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는 내 시린 옆구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질문. “너 안 외로워? 소개팅 안 할래?”

 

외롭다. 그래도 소개팅은, 연애는, 당분간 하지 않을 생각이다(엄마아빠 미안). 연애하지 않아서 외로운 게 아니므로. 처음부터 혼자를 고집한 건 아니다. 한때는 피둥피둥 살이 오른 내 두 볼을 귀엽다고 매만지던, 내가 맛있는 걸 먹고 좋아하는 게 보람차다며 입에 단것을 채워주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관계와 별개로 힘든 일이 늘어갔다. 그는 바빴다. 주말 데이트를 할 때면 피곤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10분에 한 번씩 하품을 해댔다. 나를 만나는 것보다 밀린 잠을 자는 게 그에게 훨씬 필요한 일 같아 보였다. 온갖 불행에 치여 만신창이가 된 밤,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걸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잘 자’뿐이었다.

 

매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 사람 못 자게 붙잡는 철부지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버거운 현실이 나와 그를 짓눌렀고, 힘들지 않은 척 애써야 하는 일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관계를 놓아버리려 했던 때 그는 처음으로 화를 냈다. 늘 너를 존중했지만 이번엔 네가 틀린거라고. 각자 힘들지 말고 같이 좋은 일을 만들어 가자고. 닿은 그의 손이 너무도 따뜻해서, 그와 함께라면 모든 어려움을 헤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그는 매번 미안하다 말하고 있었다.

 

약속만큼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걸 미안해했다. 그럼 나는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답했다. 사과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는 계속 사과를 거듭했다. 그럴수록 나는 외로워졌다. 괜찮은 표정을 짓는 일도, 외로운 내색을 하지 않는 것도 지쳤다. 그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걸 바라보는 나 역시 무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만해야겠구나.

 

그렇게 그와 다시 만나지 않을 사이가 되었다. 나와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반드시 내게 좋은 사람이어야 했고, 그렇지 못한 자기 자신을 괴롭혔다. 나 역시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서로가 멋대로 기대해버린 환상에 불과했다.

 

혼자의 판타지를 상대방과 스스로에게 투영해왔던 것이다. 알고 보니 나쁜 사람이었다는 말이 아니다. 너도나도 부족한 것 많은, 각자의 사정이 있는, 그냥 사람일 뿐이었다.

 

연애가 나를 외롭게 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접기로 했다. 적어도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외로움은 겪지 않기로 했다. 그날 이후 ‘연애하지 않은 시간’을 헤아려보면 손가락이 제법 여러개 접힌다. 주변에서는 청춘을 홀로 보내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연애 안 하냐’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늘 똑같다. “둘이 외로운 것보단 혼자 외로운 게 나으니까.”

 

누군가는 못 하는 걸 안 한다는 핑계로 위안 삼지 말라고 충고했다. 다른 누구는 연애의 달콤함을 자랑하며 안쓰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무능력한 사람 또는 우울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며 지내던 어느 날, 마주 앉은 남자가 물었다. “왜 연애 안 합니까?” 일 때문에 가진 술자리에서 어색한 공기를 깨고 싶었던 모양이다.

 

‘왜’가 참신했지만 나는 언제나와 같이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렇군요. 다음에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면, 나 자신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겠네요. 외로울 걸 알면서도 시작한 거니까.”

 

그날 집에 돌아가 잠들 때까지도 내내 그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 맞는 말이었다. 내가 나 때문에, 혼자 외로운 건 견딜 수 있어도 ‘누구 때문에’ 외로운건 참을 수 없으니. 어쩌면 지금의 나는 나보다, 아니 나만큼 누군가를 좋아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그럴 여력이 없다. 하지만 내가 날 아끼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비연애’ 중인 스스로를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까 결론은, 더는 슬픈 표정으로 연애 안 하냐고 묻지 말아 달라는 거다.


 

Illustrator_  전하은

Freelancer_ 임현경 hyunk1020@gmail.com

 

Who

임현경은? 외로운 사람은 가을바람에 맥주나 마십니다.

  • 20대라면 누구나, 칼럼 기고나 문의는 ahrajo@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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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활동부터 문화생활까지. 꿀팁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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