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떡볶이가 좋다.
평생 딱 한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주저 않고 떡볶이를 고를 거다. 버킷리스트 상위권에는 ‘서울 시내 떡볶이 성지 순례하기’가 늘 있었다.

1. 어느 날 남가좌동 모래내 시장이 재개발로 곧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래내 시장이 없어진다는 건 그 안에 있는 신흥떡볶이도 함께 사라진다는 뜻이다. 오래 전부터 꼭 한 번 먹어 보고 싶었는데 이제 곧 영원히 맛볼 수 없게 된다니 아쉬웠다.

2. 떡볶이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으면 영원히 먹을 수 없게 된다. 2016년 10월. 소문으로만 들었던 전설의 떡볶이집들을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인생 떡볶이 후보 1번. 갈현시장 할머니 떡볶이

첫 번째 후보는 집에서 버스로 다섯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는 갈현시장 할머니 떡볶이. 동네 토박이들이 입이 닳도록 칭찬하던 곳이다. 그리고 난 거기서 이상형에 부합하는 완벽한 떡볶이를 만났다.

우선 떡의 상태가 매우 좋다. 잘못 조리하면 너무 퍼지거나 싱겁기 쉬운데, 양념이 잘 배어 있으면서도 떡의 질감이 살아 있다. 자작한 국물은 아주 맵거나 짜지 않고, 적당히 적당히 매콤 달달하다.

이 집 떡볶이를 맛있게 먹으려면 야끼만두를 꼭 넣어 먹어야 한다. 바삭한 튀김 옷에 양념이 싸악 스민 만두의 식감이 일품이고, 튀김 옷에서 나온 기름이 국물 맛을 한층 더 풍부하게 한다. 다음번에는 집으로 포장해 가서 밥을 비벼 먹어 볼 생각이다.

위치 서울특별시 은평구 통일로87길 8-1
영업 시간 09:30~19:00 (격주 월요일 휴무)
가격 떡볶이 3000원/닭알, 야끼만두, 김말이, 고기만두 각 500원

인생 떡볶이 후보 2번. 이태원 느네집 하얀 떡볶이

두 번째 후보는 이태원 뒷골목에 있는 느네집 하얀 떡볶이. 이곳 떡볶이는 단품으로는 팔지 않고, 메인 안주를 주문하면 시킬 수 있는 사이드 메뉴다. 음주 후 탄수화물이 땡길 때 딱이라며 술꾼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눈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궁중 떡볶이처럼 보였는데,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다.. 어묵탕에 떡을 넣어 졸인 맛! 국물은 달콤한 편인데, 청양고추가 들어가서 끝 맛이 맵싹하다.

느네집 떡볶이의 킬링 파트는 하얗고 통통한 떡! 아기 궁둥이처럼 말캉하고 보드라운 식감이 일품이다. 돌아서면 생각나는 마성의 맛.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인기의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보광로60길 20
영업 시간 18:00~06:00 (매주 일요일 휴무)
가격 떡볶이 7000원(단독 주문 불가, 메인 메뉴 주문 후 추가만 가능)

인생 떡볶이 후보 3번.  모래내시장 신흥떡볶이

3번 후보는 떡볶이 성지순례를 결심하게 한 바로 그 집. 대학내일 푸드 담당 에디터가 마르고 닳도록 칭찬한 집이기도 하다. 비주얼은 심플 그 자체다. 그 흔한 오뎅도 없이 오로지 떡만 있다.

맛을 묘사하자면… 떡볶이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인데 담백하다.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에서 파의 감칠맛이 진하게 난다. 함께 주시는 콩나물을 떡볶이에 얹어서 먹는 게 정석! 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김에 싸서 밥반찬으로 먹어도 맛있다고. 가격은 한 그릇에 단돈 2000원. 떡 인심이 후해서 다 먹으면 배가 부르다.

위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수색로 28-5
영업 시간 10:00~20:00
가격 떡볶이 2000원

인생 떡볶이 후보 4번. 신림 장수만두 매운 떡볶이

서울 3대 매운 떡볶이라는 명성에 혹해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찾아가기가 좀 힘든 편이다. 신림역에서 버스 타고 버스 종점까지 가야 한다. 주문과 동시에 만들기 때문에, 나오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태어나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맵다. (엽떡, 불닭볶음면은 애교 수준…) 특이한 건 혀에 닿는 순간만 미친 듯이 맵고, 일단 삼키면 깔끔하다는 것. 누가 뒤통수를 세게 치고 간 것처럼 어안이 벙벙한 맛이다.

양배추가 단맛을 내서, 떡과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다. 매운맛 중화를 위해 시킨 오뎅과 김밥도 의외로 수준급. 스트레스가 많은 날에 종종 찾을 것 같다.

위치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길 12
영업 시간 10:00~22:00(매주 화요일 휴무)
가격 떡볶이 4000원, 오뎅탕 3000원, 참치김밥 2500원

인생 떡볶이 후보 5번. 대학로 옥이모 옛날 깻잎 떡볶이

1992년부터 대학로 곳곳을 옮겨 다니며 영업한 전설의 떡볶이집. 한동안 안 보이다가 최근에 영업을 다시 시작했다고 해서 가 봤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집 떡볶이의 특징은 깻잎이다. 향긋한 깻잎 향이 국물까지 배어 있어서 뭘 찍어 먹어도 맛있다. 3명이 가서 옥이모 세트(떡볶이+모듬튀김+오뎅)에 김밥 한 줄 시키면 딱 좋다.

“갑자기 사라져서 한참 찾았다”는 손님과, “잘 보이는 자리로 이사 왔으니 자주 와”라고 답하는 주인 이모가 있는 정다운 장소. 왜 이곳에 오랜 단골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우리은행 근처
영업 시간 12:00~22:30
가격 옥이모 세트(떡볶이+모듬튀김+오뎅) 7000원

떡볶이 성지순례를 마치며…

그간 공공연하게 떡볶이 덕후라고 말하고 다녔으나 막상 “어떤 떡볶이가 제일 맛있었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당당하게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P.S. 이틀 동안 매 끼니를 떡볶이로 먹어서 이제 당분간은 떡볶이 안 먹고 싶겠다 했는데… 이 기사를 쓰다 보니 또 먹고 싶어졌다. ㅎㅎ

Designer 백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