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자유화가 본격 실시된 지 30년이 다됐다지만 아직까지 ‘부모님 해외여행 보내드리기’는 효의 상징이자 자식농사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척도다. 고로 많은 대학생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내가 취업만 하면 해외여행 보내준다니까!”

 

물론 나도 이 약속을 했었고, 얼마 전에 드디어 실천했다. 그리고 다음번에 또 부모님 해외여행을 보내드릴 생각이다. 아 물론 패키지로. 나는 안 갈 거다. 절대.

 


1. 여행준비가 여행보다 더 힘들다

– 부모님과 태국에 간 A군 (24세, 대학생)

부모님과 떠나는 해외여행 준비는 오롯이 자식된 자의 몫이다. 항공권 발권부터 숙소예약, 일정 계획, 예산 편성까지. 해외여행 경험자라면 알겠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두뇌가 옥타코어가 아닌 이상 휘모리장단으로 몰아치는 과제 속에서 여행 준비를 하는 것은 무리.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3인의 핵가족은 화성에서 온 남편과 금성에서 온 아내, 그리고 지구에서 귀빠진 자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절충안 따윈 없다는 소리. 아빠는 왕궁을 가야하고, 엄마는 발 마사지를 받아야 하며, 나는 트랜스젠더 쇼가 보고 싶다. 이 모든 걸 제한시간 안에 클리어 해야 하는 것이 자식된 자의 퀘스트. 어때? 가능한 부분?

 

게다가 일정이 부모님 중 한 분 위주로 치우치면 다른 한 분은 입술이 빼쪽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효도하러 갔는데 불효자는 웁니다 열창하고 올지도 모를 일.

 

tip. 엄마의 날, 아빠의 날을 정하자

2박 이상의 일정이라면 하루는 엄마의 날로, 하루는 아빠의 날로 정하자.

부모님 중 한 분이 원하지 않는 일정이 있더라도 순조롭게 협조해주신다. 내일은 본인의 날이기 때문에!

 


2. 아들아 국이 짜다, 한식이 땡기는구나

– 엄마와 일본에 간 나 (27세, 대학내일 에디터)

 

먹다 죽어도 아쉽지 않은 곳, 오사카. 엄마와 함께 떠난 그 곳에서 내가 먹은 가장 비싼 음식은 와사비 이빠이 들어간 스시도 아니요, 가쓰오부시 나부끼는 오코노미야끼도 아니다. 바로 놀부 부대찌개다. 읭? 맞다, 우리가 아는 그 부대찌개 체인. 엄마가 기내식 비빔밥 고추장을 챙길 때, 캐리어에서 다량의 컵라면이 검출(?)되었을 때 나는 왜 이 사단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뼛속부터 한국인인 엄마에게 먼 이국의 조미료는 입맛에 맞지 않았나 보다. (일본이면 가장 가까운 나란데?) 엄마는 스시집에선 초장을, 라멘집에선 고춧가루를 찾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양념을 치셨지. “맛은 있는데, 좀 짜(달)다?“

 

나는 엄마의 기미상궁 노릇을 충실히 하며 가장 한국적인 음식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오사카에 온지 이틀 만에 그녀의 한식 뽐뿌는 노트7처럼 폭발하고 말았으니…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 초입에 감투를 눌러 쓴 놀부 오빠를 보더니 EXO를 본 소녀팬 마냥 달려드셨다. ‘여기다 오늘 저녁은 여기야!’ 외마디 비명과 함께.

 

tip. 여행 전 한식당을 알아보고 갈 것!

해외에서 한식당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여행 전에 미리 유명한 한식집을 알아 가 비상상황에 대비하자.

미처 한식당을 알아 가지 못했다면 ‘트립 어드바이저’ 어플을 사용할 것. 필터를 적용하여 별점 높은 한식당을 바로 찾을 수 있다.

 


3. 뭣 하러 그런데다가 돈을 쓰냐!

– 엄마와 세부에 간 C양 (28세 교사)

 

원래 부모님이란 사람들은 자식 돈 허투루 쓰지 못하는 법. 호강 시켜드리려고 여행 왔더니 자꾸 절약 본능을 발휘하신다. 숙소는 눈만 붙이면 되고, 밥은 배만 채우면 된다는 부모님의 마음.

“숙소는 해변이 보이는 호텔 어때?”

-침대도 없는 애가 무슨 호텔을 찾아. 눈만 붙이면 그만이지!

 

“엄마 여기가 블로거들이 극찬하는 맛집이래.”
-아니 밥에다 금가루를 뿌렸다니? 나는 이거(사이드메뉴) 먹을란다.

 

“물을 왜 숙소에서 챙겨 가 무겁게, 편의점에서 사먹지.”
-나는 아직까지도 물을 사먹는다는 행위가 용납이 안된다!

그렇다. 이런 식이다. 자식 된 입장에서 안쓰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도 친척들 선물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신다. 할아버지 독주, 할머니 수분크림, 사촌의 육촌 지갑, 외숙의 당숙 담배 한 보루…결국 마지막 날 캐리어는 친척 종합 선물 세트가 되어버리고 위탁수하물 중량 초과에 걸리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 (정작 본인 건 안 사심 ㅠㅠ)

 

tip. 여행 전 부모님께 소정의 여행비를 받자

부모님의 심적 부담을 덜어드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절약 본능을 발휘하는 부모님께 ‘이거 엄마 아빠가 준 돈으로 사는 거야” 라고 말하면 소비가 한결 수월해진다.

 


4. 학교에서 영어 배우지 않았니?

– 부모님과 중국에 간 D양 (22세, 대학생)

 

부모님과의 중국여행은 12년 동안의 영어 정규 교육과정과 과외, 토익 학원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확인하는 자리었다. 입국심사부터 체크인, 식사주문, 심지어 웨얼이즈더 토일렛까지 모두 내 몫.

 

그러나 나는 구글번역기가 아니다. 니하오 밖에 모르는 내가 중국인과, 그것도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니… 상대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뿐더러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때부터 시작되는 부모님의 공격.

 

“너는 대학까지 나온 애가 영어도 못하냐? 제2외국어 중국어 아니었니?”
“당신도 너무 그러지 마, 얘가 어릴 때부터 말도 느리고, 글도 느리고, 기저귀도 늦게 떼고…”

 

바벨탑을 세운 조상님들을 원망할 수밖에… 그래도 모든 의사소통을 내게 의존하는 엄빠의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는 한다. 홀로 통역을 하다보니 여행에서 돌아오면 영어실력이 향상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토스나 오픽 점수는 오르지 않으니 안심하자.

 

tip. 평소에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자

미안하다. 솔직히 이건 답이 없다. 부모님과 함께 다니면서 그 때마다 번역 어플을 사용하여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건 불가능.

 


5. 몸은 고되지만 나는 괜찮다

-부모님과 일본에 간 E군 (26세, 취준생)

 

번번히 실패하는 취업 덕분에 나는 시간이 넘쳐났고, 여행 일정도 아침부터 심야까지 정말 알차게 짰다. 허락만 하신다면 부모님과 도쿄 클럽 투어도 했을 기세로. 하지만 이 빡빡한 일정, 너무 내 위주였다.

 

슬프게도 자식들은 부모님의 젊음을 갉아 먹으며 자란다. 고로 우리 부모님의 체력은 딱 내 반 정도. 자칫 일정이 조금 빡빡하거나 많이 걷기라도 하는 날에는 에구구 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릴 것이다.

 

이럴 때는 무리하지 않고 호텔로 돌아가 한숨 잔 뒤,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면… 참 좋으련만, 부모님은 본인 때문에 자식이 여행하지 못하는 꼴을 못 본다. 오히려 본전을 뽑겠다는 요량으로 빡빡한 일정을 더 선호하신다.

 

“죽기 전에 다시 못 올 수도 있는데 다 보고 가야지!”

 

휴식 차 온 여행에서 골병 얻어간 우리 엄빠… 차라리 VR로 도쿄 시내를 보여드릴 걸 그랬다. 심지어 한국에 돌아가는 그날까지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관광을 하러 가셨다!

 

tip. 패키지 여행 루트를 참고하자

패키지 여행은 비교적 높은 연령대를 노린 상품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스타일과 잘 맞는다.

꼭 가야할 명소만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일정도 여유로운 편. 패키지 여행 상품에 소개되어 있는 일정표를 참고하여 일정을 짜보자.


그래도 가야합니다. 꼭!

 

해외여행을 다녀온 커플 중 하나는 꼭 깨진다. 절친들은 절교를 한다. 서로 익숙지 않은 상대의 단점을 발견하기에 해외여행만큼 좋은 기회는 없으니까. 부모님이라고 예외없다. 유전자 99.99%를 그들에게서 고이 물려받았지만 해외여행에서 나머지 0.01%의 차이를 확인하게 된다.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자. 여행을 떠나서 소녀 같은 엄마의 모습과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은 아빠의 모습을 꼭 눈에 담길 바란다. 음식 투정도 하고, 긴 여정에 짜증도 내는 그 모습이 내가 존재하기 전, 오롯이 한 인격으로서의 부모님의 모습과 제일 가까울테니까. 그것이 나로 인해 가려진 0.01%니까.


 

illustrator_liz

director_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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