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발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Item 진눈깨비 소년

 

내 방은 아파트 복도와 마주 보고 있어서 겨울이면 유독 춥다. 나는 한낮에도 남색 천에 은색 별이 그려진 암막 커튼을 치고 생활한다. 하지만 밤이 되면 커튼을 걷어 돌돌 말아 올리고 창문을 반쯤 열어둔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좋았다. 두꺼운 이불 속에 들어가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고개를 움직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마른 빨래처럼 보송보송해졌다.

 

그런데 네이버 금요일 웹툰 <진눈깨비 소년>을 구독한 이후 승강기가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시작으로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자정이 지났을 때 발소리가 들리면 보이지 않는 이웃의 고단함을 함께 느끼곤 한다. 지금 지나가는 발소리 주인의 얼굴도, 이름도, 심지어 몇 호에 사는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그가 늦은 밤 선한 잠에 들기를 바라고 있다.

 

<진눈깨비 소년>은 내가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해나와 우진이 고등학교 미술부 선후배로 서로의 울퉁불퉁한 진심을 조금씩 꺼낼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함박눈이 차곡차곡 쌓인다. 지금 내가 당신의 발소리를 듣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한 사람으로부터 ‘외로움’을 배웠기 때문이고, 지금 <진눈깨비 소년>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건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 아닐까.

 

Intern_ 윤소진 sojin@univ.me


 

내가 뭐가 될지 나도 몰라요

 

 

Item 복학왕

 

우기명을 처음 만난 건 5년 전. 공부밖에 모르던 애가 안경을 벗고 꾸미기 시작하면서 ‘멋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주위에 친구들이 모였다. 기세등등해진 그는 스스로를 ‘패션왕이 될 남자’로 소개하며 건방을 떨었다.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기명은 만화가 끝날 때까지 패션왕이 되지 못했고, <복학왕>으로 은근슬쩍 돌아왔다.

 

배경이 기안고등학교에서 기안대학교로 바뀌었을 뿐인데 기명의 하루하루는 전과 많이 다르다. 여전히 주변에 친구들은 많지만 이제 더 이상 별다른 것이 폭발하지 않는다. 사실 5년 전 <패션왕>에 비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은 많이 사라졌다. 대신 현재 독자들이 살고 있는 20대 초중반의 고민을 ‘웃프게’ 담아낸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 우기명을 통해 전달되는 캠퍼스의 풍경들은 지방과 서울을, 이과와 문과를 가리지 않고 공감할 수 있다. ‘OOO이 될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할 수 없는 사람은 우기명 말고도 많으니까. 잦은 지각과 무리수로 욕을 먹던 사고뭉치 기안84는 독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와 먹먹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꾼이 되었다.

 

Editor_ 기명균 kikiki@univ.me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단 한 가지 일

 

 

Item 혼자를 기르는 법

 

주인공 ‘시다’는 서울로 상경해 혼자 사는 사회 초년생이다. 아비처럼 무시 당하고 살지 말라고(귀한 몸-이시다!) 지어준 이름은 현실에서 “시다씨, 복사 좀!” 이란 말로 가장 많이 불린다.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올 땐, 왠지 모를 죄책감 속에 생각한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왜 누군가에겐 상처일까?” 이름이 품은 뜻대로 전혀 살아보지 못하고, 가족이 때로 가장 무거운 짐이 되며, 가진 돈에 삶의 질을 맞춰야 하는 우리에게 시다의 이야기는 그냥 나의 이야기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혼자를 ‘기르는’ 법. 이 도시에 흩어져 사는 수많은 ‘시다’들은 그 말의 의미를 안다.

 

이 복잡한 도시에서, 자고 일어나면 더 나빠져 있는 듯한 세계에서 나를 데리고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으면서도, ‘이야깃거리가 안 된다고’ 생각해서 자주 입 다물던 우리들의 일상을 시다는 담담히 풀어놓는다.

 

내가 여기 있다는 이야기, 이런 삶도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염세적인 듯 위트 있고, 쓸쓸하지만 담담한 시다의 이야기를 듣고 난 금요일이면 긴 일주일을 무사히 지나온 나를 잘기르고 싶어진다. 맛있는 것도 먹이고, 맘에 드는 옷도 입히고, 좋은 데도 데려가고 그렇게 살아야지.

 

세상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단 한 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잘 기르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고귀한 이름의 시다가 주는 가장 값진 위로다.

 

Editor_ 김신지 summer@univ.me


 

자존감도둑 퇴치에는?

 

 

Item 스피릿 핑거스

 

“너 <스피릿 핑거스> 봤어? 거기 남주가 밑도 끝도 없이 잘생겼다고.” 절친의 영업멘트에 일요일마다 얼굴로 열일하는 기정이한테 덜컥 반했다. 물론 기정이의 꽃미모엔 매번 감탄하지만 <스피릿 핑거스>를 재탕 삼탕하는 게 외모제일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얼굴도 성적도 그림 실력도, 어쩌면 존재 자체가 평범한 주인공 우연이는 크로키 모임 ‘스피릿 핑거스’에 들어가면서 우여곡절을 겪는다. 문제는 주변에 항시 대기중인 자존감도둑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은근슬쩍 우연이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넌 그런 스타일 안 어울리겠다”, “갑자기 네가 그림을 그린다고? 미대는 어릴 때부터 잘했던 애들이나 가는거야!”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이 친구나 엄마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다. 속으로 썩히기만 하던 우연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꿈틀댄다. “나 엄마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 아니야!”라고 외치며 서서히 자신을 지켜나간다. 고작 그림일 뿐인데 자꾸 울컥했다.

 

별 것 아닌 존재로 날 무시하며 깔보던 사람들의 말을 꾹꾹 참던 시간이 떠올라서일까. 우연이보다는 더디지만 내 자존감도 한 뼘씩 회복 중이다. 이젠 나도 내 언어를 써야하는 순간에 조금 덜 겁내는 사람이 됐으니까.

 

Intern_ 이연재 jae@univ.me


 

등짝에 흐르는 식은땀 한 줄기

 

 

Item 기기괴괴

 

어릴 때부터 <토요미스테리>나 <서프라이즈> 같은 TV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기묘한 이야기> 등의 드라마도 좋아했다. 지극히 평화롭고도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나이기에, 섬뜩한 반전이 있는 영화나 추리소설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웹툰도 마찬가지.

 

내가 웹툰 <기기괴괴>의 팬을 자청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심심할 때마다 핸드폰을 열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내가 클릭했던 것은 <기기괴괴>였다. 이 웹툰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공포와 기묘함을 발견해낸다.

 

편안한 자취방과 익숙한 강의실, 우리 동네마저도 이상하고 무서운 공간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집 햄스터도 다른 얼굴로 돌변할 수도 있고, 친구와 찍은 폴라로이드에서 귀신이 함께 찍힐 수도 있다는 두려움. 이럴 때 짜릿함을 느낀다.

 

Editor_ 조아라 ahrajo@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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