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구멍으로 솔솔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느끼려 했더니 겨울이 양 뺨에 스파이크를 날린다. 11월 초부터 칼바람을 품은 한파가 등판할 줄은 몰랐다.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올 겨울은 시작부터 심상찮다. 공허한 우리네 마음만큼 몸이 시린 계절이다.

 

이럴 때면 몸이라도 따뜻하게 녹여 줄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난다. 이 국밥이라는 음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민을 대표하는 먹거리면서, 선거철만 되면 정계인사들이 사랑하며, 뭔가 신변에 위험을 느꼈을 때도 먹고 싶은 식사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밥 한 숟갈 정도 남겨서 암구호로 써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인지 하도 곰탕 곰탕 해서 나도 곰탕을 먹으러 다녔다. 다닌 김에 서울 북부에서 한 번쯤 가볼만 한 곰탕집 세 곳을 꼽았다. 미슐랭가이드에 등재된 곳은 아니지만 어차피 맛집이란 건 내가 맛있게 먹는 집이다. 엄청 주관적이지만 여러분의 시상하부를 선동해서 꼭 발품을 팔게 만들겠다는 각오로 썼다. 맛있게 드시길.

 

영춘옥

곰탕 입문자를 위한 미각 충격요법 전문점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화문로5가길 13

개업연도 1942년

메뉴

곰탕 8000원

꼬리곰탕 18000원

해장국 7000원

꼬리찜 36000원

뼈다귀 32000원

 

분위기

어이구 건물을 무너질 것처럼 찍었네 닥터 스트레인지

 

종로 3가역에서 내려 피카디리 CGV가 있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주변 건물들과 영 안 친해 보이는 건물 하나가 있다. 곰탕이라 해서 통나무와 기왓장이 덮인, 대문이 있는 고즈넉한 노포를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흰색 창문과 유러피안 스타일 차양막이 굉장히 감각적이고 종로랑 엄청 안 어울린다. 민토 같아서 원피스랑 베스트 입은 알바생이 커플석이냐 일반석이냐 물어볼 것 같았다.

 

건물 내부는 밖에서 보는것과 분위기가 또 다르다.

 

복층 건물이다. 1층은 테이블 10개가 채 안 될 정도로 좁지만 회전율이 빠르고 2층은 좀 더 넓고 여유롭다. 저녁시간이 되면 2층은 식사보다는 주력 안주인 ‘따귀’를 시켜놓고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혼자서 ‘사먹는’ 곰탕을 입문한 곳이 바로 이 영춘옥이다. 원래 곰탕은 어릴 때만 해도 ‘집에서 먹는 음식’이었다. 엄마가 목욕물만큼 끓여서 한달 내내 먹지 않나. 그걸로 밥도 말아먹고 떡국도 하고 국수도 해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골곰탕’에 가깝지만, 그 닝닝하고 비린 국물을 비싼 돈 주고 사먹는 줄 몰랐다.

 

그래서 처음 영춘옥의 육곰탕 국물을 맛보았을 때 느꼈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국물 때문에 감탄했던 곳이 딱 세 군데 있는데, 홍대 하카다분코(10년 전 한정)의 인라멘과 독립문 대성집의 도가니탕, 그리고 남은 하나가 이 영춘옥 곰탕이다. 참고로 한우가 아닌 호주산 우육을 쓴다.

 

보기만 해도 코가 알싸해지는 사진

 

가끔 깍두기가 너무 꽉 차있어 국자로 뜨기 힘들다. 여우한테 초대받은 두루미가 된 기분.

 

국물이 맑진 않지만 무척 깔끔하고 맛이 깊다. 역사가 깊은 곰탕집들은 주로 놋그릇을 쓰는데 이 곳 곰탕은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겨 나온다. 토렴은 하지 않고 면과 밥을 따로 내오는 따로국밥 스타일이다. 후후 안 불고 첫 국물을 뜨면 너무 뜨거워서 미뢰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른다. 미각이 둔해지니 싱겁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간은 적당하다 못해 조금 짜다. 한번은 간이 센 걸 좋아하는 지인이 섣불리 소금을 넣었다가 식고 나서 자신이 퍼먹던 게 염전이라는 걸 깨닫고 깊은 후회를 했다.

 

얇게 저민 소고기 양짓살이 촉촉하면서도 쫄깃하다.

 

밥뚜껑을 열어둔 뒤 뜨끈하고 진한 국물에 면을 넣어 휘휘 저어 한 젓가락 들이키면 후쿠오카산 돈코츠 라멘도 부럽지 않다. 적당히 식은 밥을 말아 면과 밥을 한 술 뜬 후 건더기를 얹어 후루룩 들이키면 입안 가득 육수와 차돌과 양지가 부딪히며 충북 캔버라 소싸움 축제가 벌어진다. 이 추운 계절에 두고두고 생각날 깊은 맛이다. 이 국물은 뭐든 말아도 어울릴 맛이라 나라를 말아도 맛있을 것 같다.

 

총평

캐주얼한 영춘옥 곰탕은 조금 여유롭게, 뜨끈하게 먹는 맛. 곰탕을 처음 먹는다면 반드시 이곳부터.

 

 

애성회관 한우곰탕

한우 양지빨로 노장의 목을 베는 젊은 무장

 

 

위치 서울 중구 남대문로5길 23 세창빌딩

개업연도 2012년

메뉴

곰탕 8000원

특곰탕 10000원

한우와 낙지 30000원

낚지볶음 30000원

 

분위기

곰탕이라 하면 ‘오래 끓인 진한 육수’를 떠올리는 탓에 노포가 무조건 맛있을 거라는 편견을 갖기 쉽다. 60년 동안 우려낸 국물을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애성회관은 이제 고작 다섯 살이다. 소시와 원걸이 만들어 놓은 판에 쯔위를 들고 무림을 평정한 JYP의 용맹함처럼, 애성회관은 이곳 북창동에 뿌리를 내릴 때부터 싹이 남달랐다.

 

사장님 최소 텍스트 성애자

 

위치는 그냥 그렇다. 북창동 먹자골목 끝자락에 있는데 바로 양쪽 건물이 신신호텔이고 대원고시텔이다. 버스나 지하철 역과도 거리가 좀 되는지라 발품 좀 팔아야 할 거다.

 

간판은 맥시멀리즘을 표방한다. 폰트도 다양하고 무려 30글자가 빼곡히 박혀 있어 디자이너 지인을 데려가면 입구에서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겸손하게도 ‘애성회관’ 네 글자는 정작 계절 한정 메뉴 ‘콩국수’보다도 작다. 이름보다 음식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사장님의 프로정신을 엿볼 수 있다. 소싯적 PPT 위에 보노보노 좀 얹어보신 분.

 

생각해 보니 이 때 이미 8시가 넘었다. 주방 시계는 망가졌나.

 

저녁시간엔 그나마 한적한 편이지만 점심시간엔 일대 직장인들이 자주 찾아서 줄을 서는 곳이다. 안주 메뉴도 싼 편이라 퇴근 후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다. 그렇다. 진정한 맛집은 접근성을 걱정하지 않는다.

 

뜨끈한 놋그릇에 밥과 면이 말아진 채 나온다. 영춘옥 뚝배기의 팔팔 끓는 ‘뜨거운’ 육수와 대비되는 ‘뜨끈한’ 육수다. 따로국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득한 느낌이다. 육수는 맑지만 육향과 간장내음이 섞여 첫 술을 뜨면 조금 시큼하다.

 

묵직한 면발을 먼저 흡입하는 걸 추천

 

보통 집은 소면을 쓰기 때문에 국수와 밥알이 뒤섞인 건더기를 함께 퍼 먹는다. 하지만 애성회관은 중면을 쓴다. 구명로프처럼 살짝 묶인(정말 매듭이 그대로 있다!) 면을 풀어서 입에 밀어 넣으면 육향이 적절히 배인 전분 냄새가 구수하게 올라온다. 다만 소면의 전분과 밥알이 함께 풀어지면 과한 감이 있어 육수의 맛을 해친다. 그래서 밥보다 면을 먼저 건져 먹기를 추천한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기

 

양지 부위인 고기가 대여섯 점 올라가 있는데, 두툼하고 식감이 좋으며 향도 작살난다. 표현이 좀 저열하지만 진짜 맛이 개쩐다. 미안하다. 너무 맛있어서 그렇다. 과장 좀 보태서 심봉사가 맛보는 순간 개안하고 동공에 써클렌즈를 달아줄 맛이다.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는 표현 그대로다. 육수를 바짝 쥐고 있던 고기가 남아있던 입안 언저리엔 진한 여운만이 남는다.

 

이렇게까지 맛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기 올린 양지살이 한우 1+, 1++ 등급이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가게 안에 ‘특등급 한우가 아니라면 10배를 보상하겠다’는 카드도 붙여 두셨다. 음 그래봤자 8만원이긴 한데, 어쨌든 한우 아이템빨로 경쟁업체를 압살하는 가게다.

 

총평

가는 길이 좀 귀찮지만 이 가격에 이런 맛을 보장하는 곳이 또 있을까.

 

 

하동관

남녀노소 모두의 미뢰를 보듬는 70년 전통의 강호

 

 

위치 서울 중구 명동9길 12

개업연도 1939년

메뉴

곰탕 일반 12000원

곰탕 (특) 15000원

수육 50000원

스무공 20000원

 

분위기

뭐야 줄이 없네 맛집 맞냐 여기

 

하고 들어서면 명동 옥타곰 탕파티

 

점심시간이 되면 길게 줄을 선다고 하더니 뭐야 줄이 없네 하고 문을 열자 줄이 시작됐다. 추운 날이라 손님들을 배려하는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씨인 줄 알았는데 선불제라 계산부터 하고 대기하라는 얘기였다. 계산이 끝나면 식권을 주는데, 이걸 든 손님들이 줄을 서고 있으면 직원 아주머니가 식권을 확인하고 순서대로 자리 배정을 해 준다. 아무데나 앉을 수 없기에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4인용 식탁에서 낯선 3인 파티와 어색하게 수저통을 나눠 쓰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곳이 하동관 도장인가요. 식권을 배우러 왔습니다.

 

결론부터 스포를 하자면, 분명 나는 1시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나올 때 시계를 보니 1시 20분이었다. 선두를 먹은 손오공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누군가는 ‘푸드코트도 아니고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온 것 같다’는 감상을 남겼다. 그만큼 하동관은 ‘느긋함’을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적어도 식사 시간에는 말이다.

 

가격이 비싸지만 내 돈 아니고 회사 돈으로 먹는 거니까 특곰탕을 주문했다. 5분 만에 나온 놋그릇에는 맑은 국물에 소고기 양지와 양(내장)이 한가득 담겨 있다. 다만 옆 사람이 주문한 ‘보통’과 그릇 크기가 똑같아서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다.

 

저 굴처럼 보이는 건 ‘양’이라 부르는 소의 내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춘옥, 애성회관과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짭조름한 육향이 강한 두 집과는 달리 누릿한 냄새가 조금 나는데 이게 집에서 어머니가 사골을 우려 해 주시던 곰탕과 비슷하다. 처음 국물을 떴을 때 조금 심심한 맛 때문에 영춘옥에 익숙한 사람들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이킬수록 담백하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국물은 세 가게 중 가장 안 뜨겁다.

 

‘고기는 씹는 맛’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차돌박이 꾸미

 

보통은 차돌박이와 양지가 주를 이루고, 특곰탕은 양(내장)이 추가되어 있다. 양을 씹는 식감이 나쁘지 않을 뿐더러 앞서 소개한 두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므로 굳이 빼달라고 하진 말자.

 

메뉴에 있는 ‘스무공’이 궁금할텐데, 고기가 더 많은 특곰탕이다. 돈코츠 라멘 먹을 때 돈 더 내고 ‘차슈츄가’를 옵션으로 고르는 걸 생각하면 된다. 스무공은 메뉴판에 버젓이 써 있으나, 계산할 때 미리 얘기하면 18공(18000원), 25공(25000원)도 가능하다. 이 외에도 특곰탕을 주문할 때 쓰는 몇 가지 은어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외울 필요는 없고 재미로 한 번 쯤 주문해 봐도 좋을 듯.

 

맛배기 – 밥 적게, 고기 많이

민짜 – 고기 없이 밥과 국물만(어?)

통닭 – 계란 얹어서(500원 추가)

깍국 – 깍두기 국물을 부어 줌

고기만 – 말 그대로 내장 빼고 고기만

내포 많이 – 고기보다 내장이 더 많이 나

냉수 – 맥주컵에 소주 반 병 정도를 채워 줌. 물이 아니다.

 

응용해 보자면 이런 식이다.

 

“스물다섯공, 통닭에 깍국 주시고 냉수 하나요”

– 2만 5천원짜리로 사이즈업, 날계란이랑 깍두기 국물 부어 주시고 소주 반 병 주세요 

 

암구호 같아도 한 번 시도해 보자. 단골손님 포스가 풀풀 난다.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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