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너피스의 시간. 템플스테이를 한번 가보자는 친구의 말에 곰곰 생각해보니,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정말 단무지로 밥그릇을 싹싹 닦아 먹나? 아침엔 얼마나 일찍 일어나야 하지? 108배를 하고 나면 진짜 내면의 평화가 찾아오려나? 템플스테이를 직접 다녀온 이들에게 기대와 달랐던 다섯 가지 후기를 들어보았다.

 

01:
절에 왔는데 왜 더 바쁘죠?
속세에서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는 M

 

체험형은 정말 1시간 단위로 스케줄이 쪼개져 있었다. 오후 2시쯤 도착하자마자 접수하고, 방 배정 받고, 나눠주는 수련복 입고, 사찰 예절을 배웠다. 사찰 내부와 주요 암자까지 탐방하고 나니 어느새 해 질 녘. 저녁 공양을 하고, 범종을 치고, 저녁 예불을 하고, 스님과의 차담 후 나에게 편지 쓰는 시간을 가졌다. 헉헉, 바쁜 일정에 바로 기절하듯 취침….

 

둘째 날엔 깜깜한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어제 쓴 편지를 태우고, 새벽 예불을 하고, ‘나를 깨우는 108배’와 참선의 시간을 가졌다. 그후 아침 공양, 울력(마당 쓸기나 잡초 뽑기 등의 일), 전나무 숲길을 산책하는 명상의 시간까지. 새벽에 일어나 이 많은 것을 했는데도 고작 아침 9시였다! 절에선 느긋한 시간이 흐르는 줄 알았는데 1박 2일이 굉장히 압축적으로 흘렀다.

 

+ 이건 좋았다 절의 다양한 문화(고기 없는 식단, 타종 체험, 108배 등)를 체험해본 것이 새로웠다. 1박 2일은 너무 촉박해서 다음에 가면 2박 3일로 가야 좋을 듯. 개인적으로는 큰 스님과 차담했던 시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즉문즉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주옥같아 팬 될 뻔….


02:

스님, 이불 밖은 위험해요…
9시 취침, 4시 기상 자체가 극기훈련이었다는 H

 

가장 큰 난관이 잠들고 일어나는 데 있을 줄이야. 원래도 늦게 자는 편인데 밤 9시에 소등하고 자라는 건 너무 가혹했다. 서울에 있었으면 밥 먹고 이제 뭘 좀 하려고 하는 초저녁인데….

 

초등학교 때 수련회 온 기분도 들고, 친구랑 말똥말똥한 눈으로 계속 얘기를 했더니 스님이 조용히 문 밖에 다가와 그만 자라고 하셨다(생각해보니 우리가 진상이었네…). 그러고 잠깐 졸았던 느낌인데, 이제 그만 일어나라뇨! 절에서는 새벽 4시가 만물을 깨우는 시간이라 했다. 3시 반부터 스님이 목탁을 치고 다니며 모닝콜을 해주신다. 밖은 캄캄하고 춥고, 이불과 물아일체가 된 듯 나올 수가 없었다. 스님, 이불 밖은 너무 위험해요….

 

+ 이건 좋았다 대신 내게 없던 시간대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보통해진 뒤에 절에 있었던 적이 없는데, 밤이나 새벽에 조용한 산속에 있을 수 있어 좋았다. 밤에 올려다보았던 무수한 별이나, 폐가 다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맑은 새벽 공기는 지금도 생각난다.


03:
자자, 줄 서세요, 줄!
수도권 최고의 인기 절에 다녀왔다는 K

 

귀뚜라미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호젓한 사찰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것… 그래, 그게 내가 원한 거였다. 그러나 북적대는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갔는데, 정작 절에 사람이 더 많았다. 수도권에서 템플스테이 핫 플레이스(?)로 너무 유명한 곳에 온 탓인가…. 108배를 할 때도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게 신경 쓰느라 바빴다. 마음이 비워지긴커녕, 지하철 2호선을 탈 때의 스트레스가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타종 체험을 할 때도, 연잎밥을 먹으러 갈 때도 길게 줄을 서야 했다. 같이 온 친구가 툴툴 댔다. “여러분~ 여기가 루브르 미술관이에요~”라고 외치는 가이드를 따라 단체 관광을 온 느낌이라고. ‘이곳에 혼자만의 휴식은 없구나’라고 생각하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비워지더라. 앗, 이것이 바로 큰스님의 큰 그림인가…?!

 

+ 이건 좋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한 방을 썼는데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과 템플스테이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평소 고민이 뭔지 등을 시시콜콜하게 얘기하다 보니 함께하는 템플스테이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30~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을 만나고 삶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좋았다.


04:
여긴 어디? 학교 급식실?
밥 남기면 삼둥이의 민국이처럼 혼날 줄 알았던 L

 

템플스테이에 다녀왔다고 하니 다들 “단무지로 밥그릇 닦았어?” 물었다. 나 역시 템플스테이의 묘미는 발우공양이라 생각했다. 단무지 한 조각으로 그릇에 붙은 고춧가루까지 싹싹 닦아낸 뒤 그것 마저 먹는 정갈한 식사…. 하지만 내가 안내 받은 곳은 식당이었고, 그곳엔 예상치 못한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만에 보는 ‘스뎅’ 식판! 잠시 급식실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밥을 다 먹은 후엔 두 번째 컬처 쇼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고봉으로 퍼온 밥을 꾸역꾸역 먹었는데, 식판을 반납하러 간 곳에 잔반을 버리는 통이 있었던 것.

 

‘절에서 밥을 남겨도 되는구나….’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발우공양을 하는 절도 있다는데 템플스테이 가면 다들 그렇게 먹는 줄로 알았던 게 함정….

 

+ 이건 좋았다 식당에서 밥 먹었다고 하면 눈치챘겠지만,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숙소나 식당은 대부분 새로 지은 것들이라 시설이 무척 좋다. 뜨거운 물도 콸콸 나오고 ‘해우소’도 수세식이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쾌적한 1박 2일을 보낼 수 있다.


05:
다 버리지 못했습니다… 욕정을
절에 혼자 올라갔다 둘이 내려온 E

 

나는 주말 체험형이 아닌 평일 휴식형으로 갔다. 사람이 별로 없어 안내 담당인 청년이 일대일로 절을 소개해줬는데, 알고 보니 동갑내기 휴학생으로 알바 중이라고 했다. 2박 3일 동안 친하게 지내면서, 절이 처음인 내게 그는 여러 가지 꿀팁을 알려줬다. 108배를 도가니 아프지 않게 하는 법부터 스님들의 서열 같은 뒷이야기 까지. 중간에 눈치챘는데, 그게 다 절st. 작업이었다.

 

“너한테 어울릴 거 같아서”라며 직접 만든 염주를 걸어주었고, “산 위에 있는 암자 가봤어? 되게 좋은데.” 하며 데려가고, 계곡 건널 땐 미끄러질까봐 손도 잡아주고…. 결국 템플스테이 끝나는 날이 우리의 1일이 되었다. 세속의 욕망을 비우러 가서는 도리어 채워왔다는 둥, 절에서도 대체 그런(?) 생각이 들었냐는 둥 친구들의 야유를 받았지만.

 

+ 이건 좋았다 평화로운 산 속에서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에겐 휴식형 템플스테이로 평일에 가길 추천한다. 주말엔 체험형 손님이 몰려 붐비는데, 평일은 대체로 한산해서 사찰의 고즈넉함을 만끽할 수 있다. 게다가 혹시 또 모르지, 나처럼 둘이 내려올지도….


Intern_ 최효정

Illustrator_ 원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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