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시즌이다. 어떤 송년회의 기억이 떠오른다. 40대 남성 A가 주관자였던, 수십 명이 자리한 송년회였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30대 후반 남성 B에게 반말을 섞어가며 친밀감을 표했고, 그것을 본 또래 여성 C는 버르장머리 없다며 내게 벌컥 화를 냈다.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이…’ 의아했지만, 너무 얼떨떨한데다가 술이 들어간 터라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고, 소음은 커져갔다.

 

A가 달려오더니 자초지종은 들으려 하지 않고 C를 옹호하며 내게 큰 소리로 비난을 가했다. “네가 이 조직을 위해 한 게 뭐냐, C는 오늘 송년회를 위해 준비하고 희생했다. 나는 무조건 조직을 위해 헌신한 사람의 편”이라는 논리였다.

 

그가 큰 소리로 일갈하는 동안 술집에 모여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고, 나는 따귀라도 맞은 듯 얼굴이 뜨거워졌다. 홀로 자리를 빠져나와 패잔병처럼 집으로 향했다. 눈물이 나왔다.

 

며칠 뒤 A는 내게 전화로 사과했다. ‘어찌 됐건’ 미안하며,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식이었다. 몇 시간 뒤, 그의 페이스북에는 ‘먼저 사과할 줄 아는 기특한 나’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졌다. 너무나 편안한 심상의, 한껏 뿌듯해 보이는 그의 포스팅을 보며 화가 났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일방적으로 대단한 잘못을 했기에 그런 대우를 받은 거라 생각할 것이고, 훼손된 내 명예는 회복할 기회를 찾기 어려울 터였다.

 

그런데 그는 제대로 되지 않은 그 사과마저도 자기를 장식하는 소재로 활용하며 쉽게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 그를 소셜 미디어 계정에서 차단함으로써 관계를 삭제했지만, 고민은 남았다. A도 B도 C도 나도 송년회의 그 상황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에도 경중이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좀 더 ‘정당한 불편함’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4년 뒤, 나는 ‘프로불편러(pro+불편+er)’라는 말을 접하게 된다. “이거 나만 불편한가요?”라는 제목을 달고, 디테일한 사연은 본문을 통해 공유하며, 댓글을 통해 다른 누리꾼의 공감을 기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라고 했다. 거기엔 그런 글을 쓰는 이들에 대한 조롱의 의도도 있다고 했다. ‘별걸 다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불편해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 남에게 ‘질문’한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 열린 태도와 학습에 대한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기분의 정당성을 나와 다른 시선, 다른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점검하겠다는 의도이며, 이것이 상대를 조롱하면서 자신의 ‘둔감함’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훨씬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프로불편러’라는 말이 꽤 근사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한 가지를 깊게 파며 전문성을 쌓기보단 꾸준히 아마추어적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불편함에 대한 역치가 낮다는 이유로 이렇게 쉽게 ‘프로’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다니? 고맙습니다…? 더욱 프로페셔널한 불편러가 되도록 연구하고 정진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4년 전 송년회 사건은 권위주의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한 나의 방식이 누군가의 또 다른 불편함을 야기한 경우 같다.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쉽게 하대하지 않기 위해 딱딱할 정도로 경어를 쓰려 의식하지만, 반대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특히 해당 공간에서 제일 권력자이거나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일부러 말을 슬쩍 놓거나 호전적인 화법을 쓰곤 했다. 그것이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나이주의에 대한 소심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는 방법은 아닐 수 있으며 오해의 여지가 크다는 것을 그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만 아직도 자기가 선택할 수 없었던 태생적 요소에 대한 억압, 한줌의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상대적 약자를 조롱하고 희롱하는 태도, 편견에 기반을 둔 역할 강요에 대한 불편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그 모든 것이 불편했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겠다는 수동적 반항부터 대놓고 문제를 지적하는 적극적 대응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 그 결과는 대개 상처였지만.

 

예컨대 ‘오빠’라는 말이 간지럽고 불편해, 오빠라는 말로 불리고 싶어 하는 사람의 지속적인 강요를 한 귀로 흘리며 ‘OO님’이라는 호칭을 고수하다가 ‘이상하고 특이한 애’라는 딱지가 붙었고, 외모나 옷차림에 대해 놀리고 낄낄대는 것을 좋아하는 이에게 “개선 방향을 조언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놀리는 것은 상대의 자존감을 깎을 뿐”이라고 정색했다가 그래 가지고 사회생활이 가능하냐는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 ‘사회생활’은 안 하기로 했다.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사회의 면면과 상대적으로 권력을 쥔 자들의 폭력에 동화되기보다, 그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고 기록하며 환기하는 삶을 택하기로 했다. 심지어 이를 통해 ‘먹고살기’까지 한다면 그것은 정녕 ‘프로’불편러의 길아닌가?

 

그래서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고, 다큐를 찍고, 단편영화 제작을 통해 나의 ‘불편’을 사회와 나누며 살고 있다. 그런 삶을 살겠다는 결심에는 자기 긍정이 선행돼야 한다. 다른 ‘불편러’의 증언 덕이 컸다. 이것이 개인의 유난이라고 자책하며 끝날 일이 아닌, 사회적 구조와 관행의 문제라는 판단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다.

 

또한 많이 배운다. 한국 사회에 살며 시나브로 젖어든 편견과 억압을 나 역시 재생산해왔다는 것을. 게다가 나는 남을 웃기고 싶다는 욕망이 큰 사람이라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내뱉으며 경거망동할 때가 많으므로 더 많은 학습이 필요하다….

 

다만 다른 불편러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혹시라도 제가 실수하면 면전에서 불편했다고 말해주세요, 티 안 낸 뒤 인터넷에 쓰지 말아주시고…. 직접 빠른 사과를 드리고 자중하겠습니다… 라고 쓰다 보니 면전에서 얘기했다가 더 불편한 상황을 초래했던 내 경험들이 스치운다. 저는 안 그러겠습니다!

 

다가올 송년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때문에 겪게 될 불편이 예측되는 이들에게 응원 말씀드리고 싶다. 기왕이면 ‘둔감러’들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없기를 기원하고, 만약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농담과 여유로움을 잃지 않고 우아하게 맞서 싸울 수 있기를! 그러나 ‘부들부들’대지 않을 자신이 없고, 가봤자 불편하고 시시할 것 같다는 예측이 강하게 드는 자리라면 굳이 참석하지 않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나 역시 대부분의 모임에 불참할 것 같다.

 

특히 서열 싸움과 충성 경쟁으로 으르렁대고, 지들 딴에 별종이 나타나면 신기한 듯 구경하고, 폭력을 가한 뒤 적선하듯 사과하며 뿌듯해하는 새끼들의 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돈 쓰고 시간 썼는데 기분 더러워지는 자리는 최대한 피하고, 그 시간에 그들을 엔터테인먼트화하는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하려 한다.

 

Editor_잉집장 monthlyingyeo@tistory.com

Illustrator_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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