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고 보니 4학년입니다.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취준생이 됐다니 믿기지 않아서, 그리고 마침 실연까지 겪는 바람에, 복작복작한 서울에서 우선 도망친 다음 차분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제주도에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서울과 다르게 길가에 멍멍이가 많습니다. 하나같이 크기도 커다란 것이 순하고 털에 윤기가 흐르니 참 귀엽습니다. 마을 정육점에서 날고기 자투리를 멍멍이들 먹으라고 길가에 던져두었던데 볼살이 통통한 것은 그 때문인가 봅니다.

 

그래도 사람 손이 고픈지 쓰다듬어주면 꼬리를 흔들며 정말 좋아합니다. 손가락도 마구 핥습니다. 고양이는 야옹이라고 하면 오글거리고 꺼림칙한데, 개는 멍멍이라고 하는 편이 좋습니다. “멍멍이”라고 말할 때의 어감이 좋아서, 그뿐입니다.

 

 

아무튼 멍멍이는 왜 하나같이 그렇게 속이 빤히 보일까요? 너무 솔직해서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지만, 가끔은 조금 슬프기도 합니다. 제주도에 온 첫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주시의 사라봉이라는 유명한 언덕에 올라가 해가지는 것을 보기로 했는데, 언덕을 올라가는 중 커다란 흰색 멍멍이를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관심도 없이 빠르게 걸어 지나갑니다. 다가가니 저를 빤히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을 갑니다. 그래도 저 멀리서 계속 빤히 바라보다가 언덕 올라가는 것을 따라 올라옵니다. 마구 앞질러 가다가 흘끔 뒤돌아보고, 풀 냄새를 맡는 척하다가 또 어느새 앞질러 갑니다.

 

안내하려는 듯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다가도, 다가갈라치면 모른 척 똥을 싸거나 열심히 풀 냄새를 맡습니다. 만지려 하면 도망가는데 그 와중에도 꼬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내가 마음에 들긴 하나 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람 같은지, 또 속이 빤히 보이는지 사랑스러워 웃음이 났습니다.

 

멍멍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언덕을 올라 정상에 도착하니 마침 해가 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재빨리 가장 좋은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습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멍멍이를 찾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찾으려는 중에 잃었나 봅니다. 내려가는 길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꾸만 멍멍이가 매고 있던 목걸이 끈이 마음에 걸립니다. 주인 잃은 목걸이 끈은 잡아주는 사람도 없이 땅에 질질 끌리고 있었습니다. 발에 자꾸 걸리는지, 멍멍이는 X자의 이상한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정상에 오르고 나면 그 불편해 보이는 끈을 풀어주려 했는데, 그러면 정말 좋아할 것 같았는데, 끝까지 멍멍이를 다시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멍멍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멍멍이가 언제나 바보 같을 만큼 솔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멍멍이의 사랑이야말로 어쩌면 진정으로 순수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멍멍이와 달리 스스로의 마음을 숨기고, 유보하고, 외면하곤 하니까요.

 

애써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버리고 쓩~ 하니 사라져버리는 상황을 견딜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꽤 솔직한 편인 나도 나의 마음을 숨기고, 유보하고, 외면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우선 해가 지는 것을 보고 끈을 풀어줘야지.’ 그런데 해가 지고 나니까 멍멍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제주도 여행 내내- 나는 그 흰 멍멍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멍멍이는 이미 오래전 나를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든 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내가 저를 잃기 전에 지루해져 나를 먼저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면 바보 같은 것은 오히려 나입니다.

 

그런데 그럴 리 없습니다. 그렇게 복잡할 리 없고, 아무튼 멍멍이니까요. 지금이라도 그 언덕에 가서 찾으면 모르는 척 다가오겠지요. 목줄을 풀어주면 놀라며 좋아하겠지요. ‘아무튼’이라는 말은 개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글쓰기에는 좋지 않은 부사어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멍멍이니까요”라는 말은 충분히 훌륭한 설명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본인이 멍멍이를 길들인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사람이 멍멍이에게 길들여지는 것일지 모릅니다.


Freelancer_ 이연성 yeonsung@yonsei.ac.kr

Illustrator_ 전하은

 

Who

이연성은? 별명은 개연성, 필명은 개씨.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 20대라면 누구나, 칼럼 기고나 문의는 ahrajo@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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