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나 합격했다!!!” 몇 달 전, 친구는 기쁨의 어깨탈골 춤을 추며 대학원 합격 소식을 전했다. 자소서며 텝스, 연구 계획서, 면접까지 준비하더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너 붙을 줄 알았다!”, “고오급 백수가 된 걸 축하한다”. 우린 이 나라의 프리미엄 일꾼이 될 친구의 앞날을 축하해주었다.

 

며칠 전엔 안부도 물을 겸 대학원생이 된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뭐하냐는 물음에 친구는 “교수님 테니스 하러 가신 동안 일하고 있어ㅎ…”라고 답했다. 마치 계모가 읍내에 놀러 나간 동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콩쥐의 신세를 보는 듯했다. 친구는 넋두리하듯 대학원생의 애환을 털어놓았다.

 


1. 읽는 건 20배, 쓰는 건 10배

 

대학원생은 ‘읽고 쓰는 게 일인, 돈 못 버는 직장인’이라고 할 정도로 공부하는 게 주된 일과다. 대학원에서 화학생물공학을 전공하는 홍주현 씨는 “대학생 때는 시험 기간에 하는 공부가 전부였다. 지금은 일주일에 논문을 세 편씩 읽어도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김혜경 씨는 “매주 원서를 읽고 수업 시간에 내 생각을 말해야 한다. 내가 듣는 수업이 3개니, 매주 원서 세 권씩은 읽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살벌한 공부양보다 더 힘든 건 대학원생의 공부는 ‘셀프’라는 점. 대학생의 공부가 교수가 파 놓은 우물물을 길어 먹는 수준이라면, 대학원생의 공부는 어디에 수맥이 흐르는지부터 찾아서 직접 우물을 파야 하는 수준이다. 즉, 대학원생은 이해하고 외우는 게 끝이 아니라, 공부의 방향을 잡고, 이를 알아낼 방법을 생각하고, 연구해서 결과를 내야 한다. 내가 뭘 알아야 하는지까지 알아내야 진정 대학원생이라 할 수 있겠다.

 

Tip.

이렇게 공부로 점철된 대학원 생활을 이겨내려면, 스스로를 잘 조련(?)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김혜경 씨는 “내 탐구 의지만으로 버티는 생활이기 때문에, 페이스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난 주말에 요가를 하면서 휴식과 체력을 챙긴다”고 말했다.

 


2. 버는 건 학생, 쓰는 건 사회인

 

대학원생이 되면 축의금 낼 일도 많고, 용돈 줄 조카도 생기고, 데이트 비용도 많아진다. 남들은 돈을 버는 나이다 보니, 나도 어디 가서 직장인 만큼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돈 없기는 대학생 때와 마찬가진데, 쓰기는 사회인처럼 써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생활비라도 벌어보자는 마음으로 조교나 연구실 일을 하는 대학원생도 많다. 장학금을 받으면 최고지만, 대학생 때보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좁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알바를 해야 하는데, 웬만한 노오오력이 아니고서야 학업과 일을 동시에 하긴 힘들다. 헤르미온느의 시간을 돌리는 시계라도 뺏고 싶은 심정.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박감자(가명) 씨는 “과외도 하고, 연구실에서 일도 해요. 대학원생이면 보통 한두 가지 일은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Tip.

대부분 대학원생들이 그냥 알바보단 과외를 추천했다. 비교적 높은 학력 덕분에 구하기도 수월하고 페이도 쎈 편이라고.

 


3. 지금 보는 사람들 계속 봐야 해

 

상상을 해보자. 대학생활 내내 어떤 사람들과 팀플을 해야 하고, 후에 그들과 일도 같이 해야 한다. (소름) 그저 상상일 것 같지만, 대학원생에겐 현실이다.

 

현재 전공하는 분야에서 계속 일할 계획이라면, 지금 보는 사람들을 앞으로도 쭉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의 학계가 미래의 업계가 되기 때문. 그래서 대학원생 때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도 곤란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Tip.

페이스북 페이지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이야기들’을 운영하는 성균관대학교 최윤섭 교수는 “스스로가 먼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돼라”고 말한다. 전공에 따라 다르지만, 대학원생 때 팀을 이뤄 연구할 일이 많은데, 이때의 행동이 연구자로서의 평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연구 성과를 어떻게 공유할지 명확히 하고, 도움 준 사람의 기여를 밝히고, 동료의 시간을 존중해 주(고 개 같이 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4. 권력자이자, 아버지이자, 스승인 지도교수

 

최윤섭 교수는 “지도교수는 나의 목숨을 틀어쥔 권력자이자, 좋든 싫든 평생 함께할 학문적 아버지이자, 스승님이다”라고 말했다. 좀 무시무시하긴 하지만, 그만큼 지도교수가 중요하단 뜻일 테다. 연구할 때 도움을 주고, 졸업에도 관여하고, 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치니 지도교수가 대학원 생활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원에서 바이오발효융합학을 전공하는 장철호 씨는 본인은 지도교수를 잘 만난 케이스라며 “전공 특성상 섬세한 작업이 많은데, 지도교수님을 만나 꼼꼼한 성격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안데르센 동화 같은 훈훈함을 모든 대학원생이 누리는 건 아니다. 낚시 좋아하는 교수님을 따라 낚시터에 끌려가기도 하고, 연락이 안 되는 교수님 때문에 논문 지도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있다.

 

Tip.

김혜경 씨는 좋은 지도교수를 만나기 위해선 “누가 좋을지 감으로 정하지 말고, 학회도 들어보고 논문도 읽으면서 최대한 사전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과는 방학에 연구실에 들어가 볼 수 있으니, 직접 겪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5. 하늘 아래 연구 안 한 주제가 없더라

 

연구주제 정하기는 까다로운 클라이언트 비위 맞추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연구주제는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연구’이어선 안 되고, 과장 조금 보태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큼 흥미롭고, 학계에 파문을 일으킬 만큼 중요하며 남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어야 한다. 비슷한 말로는 ‘모던하지만 고전적으로’, ‘클래식하지만 캐주얼하게’, ‘강렬하지만 은은하게’가 있다.

 

홍주현 씨는 “내가 연구하는 주제로 논문이 계속 나온다. 그걸 넘어서려면 참신한 게 필요한데 대학원 뉴비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막 한글 뗀 사람에게 디스랩 쓰라고 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Tip.

최윤섭 교수는 “첫 연구주제를 고민하고 있다면 리뷰 논문을 읽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리뷰 논문에 최근 연구들의 요점이 정리돼 있어 연구의 전후 맥락을 알 수 있다. 리뷰 논문을 시작으로 관심 있는 논문들을 보다 보면, 주제에 대해 나름의 체계를 만들 수 있다고.

 


6. 취업 안 돼서 대학원 갔니?

 

박감자 씨는 어디 가서 대학원생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학원생이라고 했다간 이런저런 오지랖과 도움 1도 안 되는 충고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 대학원생이라 듣는 말들이 많다. 한 번은 택시 기사님이 “어차피 결혼하면 집에 눌러 앉을 걸 뭐하러 돈 쓰면서 가방끈 늘리냐”고 해서 상당히 불쾌했다고.

 

대학원생이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취업이 힘들긴 힘든가 보네”라며 위로해 주기도 하고 “너는 돈 많이 들었으니까 꼭 성공해라”라며 성공을 기원해 주기도 한다. 위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인 듯.

 

Tip.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은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람이라기 보다, 명절 때 가끔 보는 친척이나 지나가는 행인1인 경우가 많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라면 처음엔 걱정하더라도,  당신이 노력과 열정을 보이면 언젠간 믿어 주게 되어있다. 진학 시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던 장철호 씨는 “처음엔 나이도 많은데 취직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시더니, 이젠 자랑스러워 하신다”고 말했다.


P.S. 그럼에도 공부하는 이유

 

한 인터뷰이는 “우리나라는 공부에 집중할 만한 환경이 아니다. 많은 것을 감수할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결국 공부가 좋아서다. 대학원에서 응용통계학을 전공하는 박당근(가명) 씨는 “대학원생은 세상에 없는 지식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재미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교 1등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만큼 공감 안 되는 말이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 일에 꼭 남들의 공감과 인정이 필요한 건 아니다.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최양파(가명) 씨는 “문학은 인문학, 철학, 역사 등 함께 배워야 하는 학문이 많다. 학부 때부터 연구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지금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하는 심예진 씨는 “미래에 가르칠 학생들에게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본 역사를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크… 멋지다. 인터뷰하다 대학원 뽐뿌 올 뻔.

 


Director 김혜원

Illustrator 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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