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말하기 방식에 대한 비판은 예전부터 있었다. 내용이 없었고, 주제는 모호했다. 그러나 이미지 덕분에 대통령이 되었다. 말에는 생각이 녹아 있는 만큼, 앞으로는 말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정치인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달변가로 유명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하기 방식을 참고해 보자.

대통령의 말하기

 

말은 한 사람이 지닌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
결국 말은 지적 능력의 표현이다.

 

 

고 노무현 전직 대통령은 말이 많았다. 상대 진영 입장에서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래도 그는 굴하지 않고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 많은 말을 했다. 퇴임 후에야 몇몇 명연설이 재조명되었고 말속에 담긴 사상이 주목받았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말을 아꼈다. 굳게 다문 입은 ‘신뢰’로 포장되었다. 대부분의 말은 사전에 준비된 연설문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기자회견 후에는 질문을 받지 않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다.

 

4년이 흘렀다. 최순실이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통령이 말을 아낀 덕분에 그동안의 국정 붕괴가 드러나지 않았고, 대국민 사과에서 나온 알맹이 없는 말들은 국민을 탄식하게 했다. ‘이러려고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나’ 후회해도 늦었다. 말로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니 유권자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만큼 대통령의 말, 정치인의 말은 중요하다. 말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낸다. 그래서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은 일단 말을 많이 해야 하고, 유권자는 후보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최근 참여정부 연설기획비서관 출신 윤태영 작가가 펴낸 『대통령의 말하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하기 방법을 소개한다. 그가 했던 말을 통해 모범적인 ‘정치인의 말하기’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정치인이 가장 겁내는 것은 여론이다. 이치에 맞는 말이라도 국민 정서에 어긋난다 싶으면 삼키고 본다. 예를 들어, 복지정책 확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수임에도 미움 받을까 겁나서 세금 인상을 요구하지 못한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지키지 못할 공약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의원을 더 많이 뽑자는 제안 역시 여론의 환영을 받기 힘들다. 뿌리 깊은 정치 불신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해소하려면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회의원 수를 늘리자고 주장했다. 지나치게 눈치를 많이 보는 정치인은 민감하면서도 꼭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기 힘들다. 순간의 인기를 위해 본질을 외면하기보다는 정면 돌파하는 정치인이 국민에게 이롭다.


줄 잘 서는 정치인은 편한 길을 걷는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어도 혼자 힘으로는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조직에 속하느냐가 중요하다. 문제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소신마저 포기하고 대세를 따르는 정치인이다. 대세를 쫓는 사람의 말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화법을 구사한다. ‘당의 뜻에 따르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정작 본인의 뜻은 감춘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대통령이 된 후 외교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이사국 숫자를 늘리려 할 때, 주위 참모들이 ‘지금 단계에서는 일본에 대해 반대할 것이 아니라 증설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지 않았다. 소신을 생존보다 중하게 여긴 그의 말은 언제나 명쾌했다.


주장하는 정치인은 많다. A를 해야 한다거나, B를 해서는 안 된다거나.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주장을 보고 이 사람에게 표를 줄지 말지 결정한다. 선출된 정치인의 주장은 정책이 되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주장을 한다고 해서 모두 다 믿을 수는 없다. 근거가 필요하다.

 

 

사안에 대해 많이 고민한 사람일수록 근거가 풍부하다. 각종 자료와 통계 수치를 해석하고 재구성해 만든 ‘팩트’로 주장을 뒷받침한다. 팩트 없이 주장을 말만 살짝 바꿔 반복하는 사람은 일단 의심하고 봐야 한다. 그만큼 잘 모르고 있다는 얘기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양도소득세가 너무 높아서 주택 매매가 부진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반대 주장을 한다. 근거는 구체적인 수치, 곧 팩트다. 양도소득세 문제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인은 안팎에서 일한다. 정책의 세부 사항을 논의하고 복잡한 입법 절차를 밟는 것이 국회 안에서의 일이라면 의정 활동에 반영하기 위해 국민과 충분히 대화하는 것은 국회 밖에서의 일이다. 따라서 정치인에게는 대중과의 원활한 소통이 요구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고압적인 자세로는 국민의 속 깊은 얘기를 이끌어내기 힘들고, 복잡한 정책을 설득하기도 힘들다. 어려운 내용이라도 쉽고 재밌게 설명해야 한다. 유머와 비유는 자세를 낮춰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노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사저를 찾아온 방문객들과 자주 대화를 나눴는데 항상 듣는 사람이 알아듣기 쉬운 비유를 사용했다. 인용한 사례에서는 부동산을 칩으로, 투기를 노름으로 빗대어 설명했기 때문에 현장의 방문객들은 쉽게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 불법 선거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선언은 말실수가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의 정치 경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돌파하고 도덕적 우위를 부각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말의 소재로 썼다. 책에서 읽은 얘기나 전문가에게 들은 통찰은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정치인이 살아온 인생 자체가 그 사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훌륭한 근거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토론의 달인’이라 불렀지만 정작 본인이 밝히는 토론 잘하는 비결은 약간 허무하다. “아무리 토론의 명수라도 뻔한(말과 다른) 짓을 해놓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토론에 이기는 것은 말재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토론에서도 밀리지 않도록 처신할 수밖에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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