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되었다. 지지자뿐만 아니라 당사자도 놀란 눈치다. 한때 트럼프의 약점으로 손꼽혔던 모든 것들이 이제 장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트럼프의 승리에는 무엇보다도 ‘기득권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막말 vs 정치적 올바름? 글쎄

 

 

지금껏 트럼프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목되어왔던 건 ‘막말’이다. 어록을 모아놓으면 그는 ‘프로 막말러’이자 이 시대 ‘막말의 아이콘’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정치적 경쟁자들뿐만 아니라 이민자, 히스패닉, 멕시코인, 무슬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심지어 참전군인과 동맹국에 이르기까지 그의 막말에는 성역이 없다.

 

그래서 언론과 전문가들에게 언제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전문가들은 ‘막말’ 대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Correctness)의 대결에서 막말이 승리했다는 자조적 분석을 내놓는다. 보다 PC에 부합하는 후보,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더 옳은 말을 하는 힐러리 클린턴이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에게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PC의 패배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월스트리트 저널」은 트럼프의 막말이 ‘누군가’에겐 매력적이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의 언행이 농촌 지역의 저소득·저학력 백인들에게 일종의 ‘쾌감(카타르시스)’을 안겨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득권에 대한 반발

 

 

아무리 정치와 엔터테인먼트의 융합이 심화되고 있다지만, 단순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는 이유만으로 ‘프로 막말러’를 대통령으로 뽑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가 통쾌한 발언으로 연예인급 인기를 얻었고 “아무렴 무당보다야 낫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실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을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분명 막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트럼프가 막말로 인기몰이를 한 속물이고, 거기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야말로 ‘정알못(정치를 알지도 못한다)’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트럼프 vs 힐러리는, 단순히 막말 vs PC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 이면에는 기득권에 대한 반감, 정확히는 보통사람 대 기득권의 대립이 깔려 있었다.

 

 

선거일 로이터의 여론조사는 이러한 분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 경제가 부자와 힘 있는 자들에 유리하게 조작됐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72%, 기성정당이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68%, 기득권에게서 미국을 되찾을 지도자를 기준으로 대통령을 뽑겠다는 응답이 무려 75%를 차지했던 것이다.

 

종합하자면 “부자와 힘 있는 자가 마음대로 하는데, 기성 정당은 평범한 사람들 편이 아니다. 그러니 부자와 힘 있는 자, 그리고 이들을 위해 부역하는 기성정당 및 정치인들을 심판하겠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단순히 자극적인 막말의 승리라기보다는, 트럼프가 힐러리보다 평범한 사람들을 더 잘 대변해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음을 의미한다. 저소득·저학력 백인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트럼프가 막말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민자, 히스패닉, 멕시코인 중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예상 밖으로 많았던 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이아몬드 수저에서 아웃사이더로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트럼프 역시 부자와 힘 있는 자들, 즉 기득권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트럼프는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로 분류되었을 인물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힐러리를 기득권에 봉사하는 기성 정치인의 표상이자, 애매한 말들로 대중을 속여 넘기는 식상한 기성 정치인의 표본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떻게 이런 프레임이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여기서 트럼프의 막말에 다시 한 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막말이 트럼프와 힐러리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나 힐러리 모두 각기 다른 의미에서 기득권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둘 다 미국을 우선시하고 보통사람들의 ‘먹고사니즘’을 강조한다.

 

 

핵심적인 차이는 메시지 그 자체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었다. 예컨대 선거 막판의 대선 토론에서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불법이민자와 관련해 트럼프는 “이민자들을 통해 미국에 불법적인 마약이 유입되고 있다. 마약 조직 수뇌부터 시작해 불법이민자를 발본색원할 것”이라고 원색적인 발언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대해 힐러리는 “추방해야 할 사람을 가려서 추방해야 한다”는 원론적 태도로 받아친다. 물론 힐러리의 말이 더 옳다. 하지만 힐러리의 발언은 내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순실-박근혜 사태에 대해 “증거가 나오면 성역 없이 수사해야 한다”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원론적 입장’처럼 말이다.

 

 

한편 트럼프는 “멕시코산 제품에 35%의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든가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겠다”는 식의 과격한 발언으로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든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따져볼 틈도 없다. ‘야, 저건 좀 심한데?’라는 생각을 할 때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직설적이고 단순한 언어’로 자신의 주장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트럼프의 막말은 결과적으로 힐러리의 옳은 발언을 지루하고 식상할 뿐만 아니라 공허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어버린다. 트럼프의 수사법은 ‘누군가에게만’ 매력적인 막말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 강력한 주장을 적절히 섞어놓는 데 있다.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막말과 함께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로 의외의 해법을 제시하는 트럼프와 ‘깨시민’의 언어로 온건하고 올바른 원칙을 고수하는 힐러리 사이에는 그렇게 점차 뚜렷한 경계선이 그려지게 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이 ‘정알못’과 정치 전문가를 구분하는 선이 아니라, 아웃사이더와 기득권을 구분하는 선이라고 인식하게 만든 것이 트럼프의 성공 요인이었던 셈이다. 정치를 모르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 정치 엘리트들은 간과했다. 트럼프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Writer_송경호 연세대 정치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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